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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두미 May 21. 2019

박쥐야 안녕~

박쥐야 안녕~


어느 일요일이었다. 학교 운동장에서 놀던 현민이가 죽은 박쥐를 들고 왔다.

“엄마. 이것 보세요. 박쥐가 죽었어요.”

“아..... 그래? 빨리 갖다 버려. 죽은 박쥐는 세균도 많을 거야.”

“엄마. 그런데 죽은 박쥐 몸에 새끼 박쥐가 붙어 있어요.”

“그래? 새끼 박쥐라고?”

죽어서 굳은 엄마 박쥐의 배 위에는 아주 작은, 태어난 지 며칠 되지 않아 보이는 아기 박쥐가 붙어 있었다. 그리고 현민이의 말대로 새끼 박쥐는 아직 숨을 쉬고 있었다. 갑자기 죽은 엄마와 모여 있는 사람들 때문에 무서웠는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박쥐는 죽은 엄마 박쥐의 젖을 꼭 물고는 놓지 않았다. 현민이와 성민이가 말했다.

“엄마. 새끼 박쥐는 살아 있는데 어떻게 버려요? 집에 데려가게 해 주세요. 우리가 어떻게든 보살펴 볼게요.”

아이들의 간절한 눈망울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아니. 이 새끼 박쥐를 어떻게 키우려고......”

나는 차마 살아있는 새끼 박쥐는 희망이 없으니 어디 그냥 버리라고 말하는 현실적인 어른이 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박쥐가 우리 집에 왔다.


성민이는 그때부터 자칭 박쥐 아빠가 되었다. 성민이는 동물 구조대가 되는 것이 꿈이었기 때문에 냄새나는 박쥐도 아무렇지 않게 대했다. 신생아 분유를 사고 스포이트를 통해서 점 만 한 새끼 박쥐의 입에 우유를 넣어주었다. 성민이는 밤늦게도 아침에도 어김없이 시간을 맞춰놓고 박쥐에게 밥을 주었다. 처음에는 움직이지도 않을 것 같던 박쥐가 한 방울씩 떨어지는 우유를 삼키기 시작했고 어느덧 눈도 떴다.

며칠 전에는 우유를 주는 성민이의 손을 물기까지 했다. 모두가 지저분하고 냄새나는 박쥐라고 걱정을 하여도 성민이는 박쥐의 아빠가 된 것처럼 꿋꿋이 밥을 주었다.

“엄마. 아휴. 또 박쥐 우유 줘야 돼요. 자동으로 우유를 주는 기계 없나?”

나는 불평하는 성민이의 목소리에서도 박쥐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날은 성민이의 부탁으로 새벽 4시에 일어나 박쥐에게 우유를 주기 시작했다. 박쥐에게서 나는 특유한 냄새는 그리 좋지 않았다. 작은 박쥐를 손에 올려놓았다. 한 방울 입가에 떨어트려 주면 어느새 꼴깍하고 삼키는 그 손가락만 한 박쥐가 새삼 귀엽게 까지 느껴졌다. 성민이가 세워 놓은 뜨거운 물병이 식었는지 새끼 박쥐의 몸이 꽤나 차가웠다. 나는 양 손 사이에 새끼 박쥐를 넣고 내 온기를 전해 주었다. 조금씩 따뜻해지는 새끼 박쥐의 몸에서 작은 움직임이 느껴졌다. ‘쿵쾅쿵쾅’ 내 손에 전달되는 박쥐의 심장박동은 사람들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제야 나는 작은 박쥐를 버리지 않은 것이 잘한 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 작은 박쥐도 살아 있는 생명이구나.


아침이었다. 학교 갈 준비를 하면서 다시 박쥐에게 우유를 주던 성민이가 내게 말했다.

“엄마. 개미가 너무 많아요. 박쥐 몸에 개미들이 모였어요. 이 나쁜 개미들. 내가 가만 두나 봐라.”

성민이의 상기된 목소리가 내 귀에 들렸다.

나는 밥을 하다 말고 성민이에게 달려갔다.

검은 새끼 박쥐의 몸과 주위에 빨간 개미들이 붙어 있었다. 성민이는 빨간 개미들을 다 쫓아내고 박쥐에게 우유를 주기 시작했다.

잠시 후 다시 밥을 하는 내게 성민이의 힘없는 목소리가 어렵게 내가 있는 부엌에 도착했다.


“엄마. 박쥐가 죽은 것 같아요.”


나는 할 말을 잃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부쩍 자란 박쥐가 움직이고 있었고 성민이는 그런 박쥐를 보면서 잘 자라면 다시 숲 속으로 날려 보내 줄 거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런데 이 작은 빨간 개미 무리에게 공격을 당하다니.

아이는 아침도 먹지 못한 채 박쥐를 깨끗하게 닦아 주었다. 아주 작은 희망이라도 잡고 싶었던 성민이. 다시 힘을 얻기를 바라는 아이의 커다란 눈에 이미 눈물이 고여 있었다.


나는 아이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다. 괜찮다고. 너는 최선을 다했다고. 그날 죽을 수도 있던 박쥐에게 2주라는 시간을 더 살게 해 준거라고. 하지만 학교를 향하는 성민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나오려는 눈물을 참느라 뜨겁게 올라오는 무언가를 힘들게 삼키며 하고 싶은 말도 함께 삼켰다. 성민이가 얼마만큼 박쥐를 사랑하며 돌보았는지 알기에 더 말할 수 없었다. 나는 울음을 참고 학교로 향하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다.

오피스로 향하기 전 나는 다시 박쥐 집을 쳐다봤다. 죽어 있던 박쥐는 어느새 하얀 휴지로 곱게 감싸져 있었다. 성민이였다.

아픈 동물들을 많이 보살펴 본 아이는 어떻게 동물들을 보내야 하는지도 이미 알고 있는 듯했다. 성민이가 정성스레 감싸 놓은 박쥐를 보는데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그 작은 생명이 죽은 것이 내 마음을 아프게 한 것인지 아니면 그 작은 죽음에 마음 아파할 아이가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인지 알지도 못한 채 나는 울었다.


하얀 휴지로 감싸져 있는 새끼 박쥐의 모습이 다른 어느 때보다 따뜻해 보였다.


엄마를 그렇게 그리워하더니 이제 엄마 곁으로 가는구나.

잘 가. 박쥐야. 따뜻한 기억만 가지고 돌아가렴.

성민이 형도 너를 많이 그리워하겠구나. 한동안 너를 찍은 사진과 동영상들을 보면서 눈물을 흘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괜찮아. 내가 성민이 형을 위로할게. 너는 편하게 쉬거라.

잘 가. 박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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