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과 푸른 식물의 다른 충만감
그들은 분명 지금 이 공간에 함께 숨쉬고 있다.
꽃을 사는 것은 유한한 순간들을 아끼는 마음
카페에 들어섰다. 테이블마다 올려져 있는 깨끗한 유리병이 눈에 띈다. 유리병에는 꽃이 꽂혀있고 그 밑에 떨어진 꽃잎까지 의도된 듯 자연스럽다. 꽃을 자신 있게 카페의 인테리어 요소로 둔 다는 것은 그 꽃의 유한한 아름다움을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에게 전달하는 것과도 같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꽃을 꽂아두는 카페나 공간을 방문하면 카페 사장님의 센스가 부러워진다.
꽃은 계속 피고 있는 것도 아니고, 피는 순간은 잠깐일 뿐 이내 시들고 만다. 그렇기 때문에 꽃을 좋아한다는 것은 유한한 것을 바라볼 줄 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나에게 꽃을 사는 사는 사람들의 마음은 유한한 순간순간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처럼 느껴진다. 꽃의 잠깐의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은 얼마나 순간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은 사람일까.
그래서 나는 꽃을 사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작은 사치가 아닐까 생각이 든다. 책과 같은 것들은 사고 나면 그 자리에 물건으로 남지만, 꽃은 프리저브드 플라워(말려 보존하는 꽃) 같 같은 형태가 아닌 이상 절대 오래 볼 수가 없거든.
또한 꽃은 온도에 예민해서 꽃은 손으로 오래 쥐고 있거나 방 안의 온도가 너무 따듯해도, 또는 담가둔 물이 너무 미지근해도 잘 시들고 만다. 이러한 아쉬운 점들 때문에 꽃은 오래 보지 못해도, 오래 보지 못하는 점들이 바로 그 꽃을 더욱 소중하고 아름답게 대하게 한다.
푸르른 식물은 반면, 매일매일 한결같은 그 푸르름에 기분 좋아진다.
반면 푸르른 식물들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이런 푸르름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식물을 나름 열심히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그리고 식물을 관리하는 사람은 얼마나 때론 멀리서 때론 자세히 들여다봐주고 있을까. 감정이 드러나지 않는 것이 식물일지라도, 식물은 매번 컨디션에 따라 자신의 변화를 드러낸다. 잘 자라기도 하고, 잎이 시들기도 하며, 모르는 사이에 눈에 띌 만큼 아주 크게 자라기도 한다.
꽃이 유한한 순간들에 대한 애정을 보여주는 것이라면, 푸른 식물들은 내 손길로 그 푸르름을 유지하는 과정 같다고 생각한다. 내가 관리하는 만큼 물을 듬뿍 마시고 성장하는 것 같은 푸른 식물만이 주는 뿌듯함이 있다.
만약 내가 하는 것들이 때로는 하찮거나 조금은 의미가 없어 보일 때, 식물이나 꽃을 입양해서 방 한 구석을 내어주는 것은 어떨까. 감정을 직접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지라도 그들은 분명 살아있고 한 공간을 함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