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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냥하자 Aug 20. 2021

소설 쓰기 #5 _ 이게 없다면 소설도 영화도 망한다

얼마 전 TV에서 충격적인 뉴스를 봤다. 일본의 어느 고등학생이 집단 따돌림(이지메)을 열 명으로부터 수년간 당했고 자살했다는 것이다. 그녀의 시신은 공원에서 발견되었고 남긴 일기장과 문자에서 집단 따돌림을 당한 흔적을 확인했다.


그런데 그 학교 교감이 이지메를 한 열 명의 미래가 중요하다고 했다. 충격이었다.  뭐 이런 인간이 다 있지? 그러고도 교단에 서서 학생을 교육해? 어이가 없었다. 영화에서나 보던 나쁜 인간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이 바로 이 지점이다. 이것이 만약 소설이었다면 교감의 저런 발언은 독자들에게 어떻게 작용했을까?


가능성이 현저히 떨어지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였을까? 아니면 교감을 아주 나쁘게 그려낼 수 있는 장치로서 훌륭한 소스가 되는 것일까? 물론 읽는 이에 따라 그럴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지만 소설을 쓸 때는 항상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개연성이 없는 이야기는 욕과 하품을 동시에 유발한다


소설이든 영화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거나 보게 되면 몰입하고 있다는 증거이다. 공상 과학 영화든 스릴러든 만화든 다 같은 것이다. 최초 만들어 둔 세계관 안에서 개연성이 부족하게 되면 몰입을 방해하게 된다. 배우의 연기, 또는 작가의 필력과는 또 다른 문제인 것이다.


나는 영화를 좋아한다. 아! 저 영화를 꼭 봐야지 하면서 가진 않는다. 그냥 영화관으로 가서 도착한 시간과 맞아떨어지는 영화를 본다. 그래서인지  '개연성 부족으로 인한 몰입도 박살'로 영화관에서 나와버린 적이 꽤나 있다. 그 이유는 간단하다. 개연성이 떨어져 몰입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영화를 그만 보는 것과 읽던 소설을 덮어 버리는 것은 같은 이치다. 다음 페이지가 궁금한 소설이 되기 위해서는 개연성을 끌고 가야 하는 것. 그저 입 아픈 얘기다.


실제 영화 제목을 이 자리에서 거론해도 되나? 그럼 재미있게 봤다는 사람들은 날 싫어하겠지? 그런데 취향이 다른 것은 어쩔 수 없지 않은가. 미안한 마음으로 한 영화를 공개한다.


바로 영화 '결백'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정말 찰졌다. 배종옥, 허준호, 신혜선... 그들의 연기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개연성이 떨어지는 한 지점을 통과한 후로 나는 집중하지 못했고 영화관을 빠져나왔다. 어떤 살인을 저지르는 과정에서 그냥 헛웃음이 나와 버렸다. 뭐야? 저렇게 죽였다고? 농촌에서? 정말 웃겼다. 궁금하시면 한 번 보시라.


참 괜찮은 시나리오였다고 생각하는데 그 한 지점이 영화를 다 망쳤다고 나는 생각한다. 아니 흥행에는 성공하지 못했더라도 연기력과 탄탄한 시나리오라는 찬사 받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장면 하나에 모든 흐름이 깨져버렸다. 안드로메다로 보낸 개연성 탓에 그 다음 얘기가 궁금하지 않았다.


소설도 마찬가지다. 세계관(마법사 마을, 장애인 학교, 폭력 서클, 우주 대 전쟁 등)이 정해 졌다면 최소한 그 안에서의 개연성은 필수다. 작가 자신의 독단적인 '그럴 수도 있다'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면 남들은 전혀 호응해 주지 않는 나만의 이야기가 될 뿐이다.

내 인생 최고의 시나리오, 최고의 공포물, 몰입도 백 프로의 영화는 기생충이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겠다. 


"짜파구리 끓여 놓으세요"라는 한마디를 듣자마자 함께 보던 친구에게 영화관을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재미가 없었던 것이 아니라 너무나 무서웠기 때문이다.


개연성이 찰질수록 몰입도는 커지고 뒷 장이 궁금해지는 소설을 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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