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_ 01. 실종
얼기설기 흰머리에 깊게 파인 주름이 선명한 우울한 낯빛의 여자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난 단박에 그 초로의 여자가 엄마임을 알 수 있었다. 갑자기 울분과 오열이 뒤섞인 짐승 같은 소리가 내 속에서 터져 나왔다. 살면서 한 번도 내뱉어 본 적 없는 크고 흉한 괴성이 낯설게 느껴지면서도 멈출 수가 없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죽은 게 아니었다는 걸 알았는데! 어디서 뭐 하다 이렇게 다 늙어서 나타난 거야? 엄마!
왜 그랬어? 그때 죽었다고 찾은 사람은 엄마가 아니었어. 난 알았거든! 다른 사람들 모두 그게 엄마라고 했어도 난 안 믿었다고! 아빠하고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아? 우리가 엄마 없이 여태 어떤 마음으로 살았는지 아냐고?”
그렇게 뿜어져 나온 내 한탄과 같은 절규는 늙어 돌아온 엄마에게 가혹한 것이었다. 죽었다 여기던 엄마가 살아 돌아온 것이었는데 먼저 꼭 안 아라도 줄걸.
스르르 흐르는 눈물과 함께 번쩍 눈을 뜨고 긴가민가 몇 번 끔벅이다 든 후회였다.
무거운 잠에서 깨어 잠시 침대에 걸어 앉았다. 그저 꿈이라 해도 그렇게 전력을 다해 사람을 몰아붙였으니 몸에 힘이 빠져 버린 것이다. 그래도 토해내 듯 뱉은 원망 속에 벅찬 마음이 섞여 있었다는 걸 엄마는 알 거다. 그렇게라도 그녀가 돌아와 준 것이 너무나 감격스러웠던 그 마음을. 나는 후로 헛헛함을 가시지 못하고 선명한 꿈의 잔상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지 계속 생각했다.
냉장고를 뒤적여 대충 밑반찬 몇 개를 꺼내고 전자레인지에 돌린 찬밥을 쟁반에 담아 거실 리프트 업 테이블에 놓고 몇 술 끄적이며 TV를 켰다.
“지난 일요일 새벽 한강공원에서 발견된 모습을 마지막으로 실종된 36세 이차은 씨가 사라진 지 엿새 째입니다. 실종된 이 씨의 행적은 한강 공원 근처의 CCTV에 잡힌 모습이 마지막으로, 경찰은 이씨가 마지막으로 목격된 한강을 주변으로 수중 수색을 시작하며 이차은 씨의 행방을 목격한 시민들의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최도환 기자가 보도합니다.”
“경찰은 오늘 엿새 전 5월 17일 한강에서 실종된 여성 A 씨의 신원을 36세 이차은 씨로 밝히며 공개수사에 들어갔습니다. 5월 12일 오전 12경 집을 나설 때 이차은 씨의 마지막 모습은 검은색 바지에 흰 셔츠 차림이었습니다.”
TV소리가 흘러나오는 와중에 밥 한술을 떠 넘기고 바로 급하게 문자를 확인하려 핸드폰을 집어 드는 순간, 마치 손에 잡혔던 미끈한 생선이 손에서 튕겨져 나가듯 작은 포물선을 그리며 모서리로 둔탁하게 ‘툭’하고 떨어져 버렸다.
화면에 실종자의 모습이 브리핑되면서 실종 전 여자의 행적이 빠르게 흘러갔지만 이때 난 핸드폰에 정신이 팔려 실종자가 엘리베이터 안에서 태연하게 거울을 보던 모습, 가방도 없이 단출한 차림으로 혼자 아파트 단지를 걸어 나가고 있는 흐릿한 모습까지도 통으로 놓쳐 버렸다.
“이차은 씨가 실종된 부근의 한강공원 근처엔 CCTV가 없어 그 이후의 실종자의 동선이 확보되지 못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실종된 이 씨의 휴대전화는 마지막 목격 장소인 한강주변에서 한 시간 뒤 끊겼습니다. 경찰은 단순 가출 등의 이유보다 이 씨가 근래 우울증 치료를 받아왔던 점을 미루어 한강 근처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으나 동시에 실족 등 여러 변수도 열어놓고 다각도로 수사를 벌이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가족들은 이 씨가 다시 돌아 올 희망을 놓지 않고 있으며 보상금을 걸며 애타게 제보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적극적인 제보를 부탁합니다. 다음은 국제뉴스입니다. 최근 아시아지역의……"
싱크대에 대충 그릇을 던져 놓고 음식 쓰레기를 들고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타는데 땡 하고 7층에서 문이 열리더니 익숙한 얼굴이 들어온다.
“안녕하세요”
“그래 어머나! 이게 얼마 만이야? 진짜 오랜만이다. 그동안 한참 얼굴 못 봤다 그렇지?”
“네”
“요즘 하도 안 보여서, 한마디 얘기도 없이 이사 갔나 했어. 요즘엔 누가 이사 들어오고 나가는지도 모르잖아. 그래도 우린 여긴 입주 동기인데 그렇게 이사 가면 섭하지 안 그래? 우리가 벌써 몇 년 째야?”
“아…네”
부드러우면서도 집요한 스캔을 당하고 있는 순간에, 손에 들고 있던 봉투에서 조금씩 새어 나오는 것 같은 냄새가 신경 쓰여 건조한 대답이 나올 뿐이었다. 목례를 하고 엘리베이터 문을 벗어나 아파트 현관을 걸어 나오면서 손에 든 봉지를 빙빙 돌려 이미 새어 나온 냄새를 괜스레 단도리 해 보지만 이미 꾸적 한 냄새를 흘리고 만 후에 덧없이 돌아가는 헛바퀴 같아 짜증이 났다. 이놈의 아파트는 시골 구석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할 것이 없는 동네다. 시시콜콜 아파트 구석구석 누가 들어가고 나가는지부터 이 7층 아줌마의 레이더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으니 말이다.
인사에 성의 있는 대꾸를 하면 이내 다음 날 바로 아랫층 할머니가 “아이고 그래 아가씨는 일도 없는데 아버지가 그렇게 편찮으셔서 어떻게 해?” 하고 말을 걸어온다. 밀도 높은 정과 질식할 것 같은 참견과 뭐라 꼬집어 말할 수 없는 확고한 스타일의 무례함이 뒤섞인 말이 이렇게 훅 들어오는 것이다.
빙빙 돌렸던 봉투를 다시 돌려 음식 쓰레기통에 털어버리고 돌아서는 길에 문자 한 통이 날아왔다.
‘안녕하세요 작가님. 연락을 늦게 드려 죄송합니다. 지난번 작업 문의 드렸던 일은
작가님과 진행이 어렵게 되었습니다. 다음번 또 다른 기회가 있다면 같이 협업할
기회가 있기를 바라며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문자 확인 후 슈퍼로 가는 방향에서 방향을 바꿔 터벅터벅 반대방향을 향해 걸었다.
편의점에 들러 생수 한 병을 사서 목표지점까지 걷는 동안 강변을 달리는 자전거들과 걷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마치 같은 필름을 반복하듯 일정 범주에서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대체로 비슷해, 요 며칠은 마치 하루처럼 꼭 같아 보였다. 하지만 그 풍경은 늘 그러하듯 강 비린내의 정도가 미세하게 다르고, 더해지는 풀꽃의 냄새도 다른 것이 매 순간이 또한 새로운 것이다.
특히나 그날의 바람은 시시 때때 시원하고, 달고 상쾌한 것이 홀리듯 더 좋았다. 통장 잔고는 비어가도 바람은 날 포근히 대하니 이래서 죽지 못하는 것이다. 자연이 우리를 이렇게 홀려 놓으면 사는 게 더 나은 것이려니 늘 바보스럽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등걸이 없는 벤치에 구부정하게 힘없이 앉아 강변을 멍하니 응시하다가 생수를 열어 한 모금 마셨다. 그러다 금세 해가 지고 가로등이 켜져 어두운 주변을 인식하게 되었다. 마치 노인처럼 ‘삐그덕’ 일어나려 하는데 갑자기 한 남자가 경찰 두 명을 대동하고 내 앞으로 빠르게 다가왔다. 사방이 뚫린 공간이었으나 내가 느끼기엔 마치 그들이 내게 들이닥치는 느낌이었다.
남자는 자신의 핸드폰과 나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확신에 찬 어조로,
“맞죠? 실종자 맞죠? 맞잖아요. 위에 입은 옷은 살짝 다르지만 얼굴이 딱인데”
“맞는 것 같은데요. 저도 그렇게 보이는데요”
같이 온 경찰이 옆에 있는 동료 경찰을 보며 맞장구를 친다.
“안녕하세요. 잠시 실례하겠습니다”
갑자기 다가오는 경찰과 남자의 말에 놀라 나도 모르게 뒷걸음을 치는데 경찰의 묵직한 손으로 이내 날 잡아 세웠다.
“그러니까 본인은 실종된 이차은 씨가 아니란 말씀이시죠? 신분증 있으세요? 박순경 이차은 씨 남편 분 조금 아까 이쪽으로 오는 중이라고 했지?
“네”
“아 지문이 잘 안 나와서…한 번만! 여기 물티슈로 닦고 한 번만 다시 해보시죠”
지문을 대조하기 전, 경찰이 전단지의 사진과 뉴스 동영상을 내 보일 때도 나는 굳이 증명할 필요 없이 싱겁게 끝날 이 일이 빨리 마무리되길 기다리고 있을 뿐이었다. 실종 제보에 걸린 포상금을 놓치게 될까 봐 좌불안석으로 보이는 제보자와 다르게 말이다.
하지만 제보자는 계속 옆에 서서 못 믿겠다는 듯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젊은 경찰도 그럴 리 없다는 듯이 내 얼굴과 전단지를 번갈아 보며 나이 든 경찰에게 재 확인을 종용하는 눈빛을 보냈다.
“지문 확인 대조 마치셨으니까 이제 가도 될까요?”
나는 최대한 예의 있게 그 자리를 벗어나려 했다. 자꾸 주변으로 사람들이 한 두 명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침에 TV에 보도되던 실종자의 모습을 제대로 봤어야 했다. 그러면 나와 닮았다는 그 실종자와 최대한 분위기라도 다르게 하고 집을 나섰을 텐데, 그러면 갑자기 벌어진 이런 난감한 이런 상황을 모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때 저 멀리서 안색이 하얗게 질린 남자가 이쪽으로 뛰듯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모여든 몇 명의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 올 때, 남자의 그 처연한 낯빛이 더 확연해졌다.
" 이분 아니시죠?"
경찰의 자신 없는 물음에 그는 대꾸가 없었지만 그의 절망적인 표정이 대답을 대신하고 있었다.
찰나의 시간처럼 반짝이다 사라진 벅찬 안도의 시선을 거두고 그는 제대로 인식해 버린 것이다. 그 앞에 서 있는 나라는 멀뚱한 피사체가 그가 그토록 찾아 헤매고 있는 그의 그녀가 아님을!
남자의 얼굴을 보니 그 자리에서 벗어나기 급급했던 내 가벼운 마음이 갑자기 죄스러워지고 말았다. 날 보자마자 사색이 되었던 얼굴이 불현듯 꿈처럼 밝아지다가 다시 그 자리에 쓰러질 것만 같은 절망적인 망연자실함으로 바뀌고 말았던 것을 보았다면 누구라도 그러했을 것이다. 난 그 자리에 서 있는 것만으로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마땅했다.
그가 가졌던 희망을 박살 내고 '너도 알다시피 네가 찾는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라는 무서운 예감으로 더욱 성큼 내달리게 만들고 있었으니.
글 · 그림 반디울
어른이 되지 않아저자출간작가. 매일의 생각을 그리고 씁니다. justina1502@naver.com 그림에세이, 웹툰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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