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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디울 Sep 04. 2024

소설_ 03. 애꿎은 등나무를 베다

나중에야 아주 나중에야 엄마의 죽음에 대해 단서가 될 만한 기억들이 생각났다. 아홉 살 아이라고 흘려듣겠지 싶어 나를 옆에 두고 한 어른들끼리의 말이 스며들어왔던 것과, 그 시절 보았던 이러저러한 것들이 내 의식의 밑바닥 깊숙한 곳에 가라앉았다가 불현듯 떠오르는 부유물처럼 갑자기 드문드문 터져 나온 것이다.


기억들이 대충 자리만 맞추어 놓아 둔 퍼즐처럼 얼추 맞아 들어가기 시작한 것은 20대 후반이 다 되어서였다. 늦되어도 이리 늦될 수 있을까?


요즘 아이들 같지 않아서 인지, 아니면 원체 아홉 살이란 나이가 그런 정도인지 알 수 없지만 그때에 어린 나는 돌이킬 수 없는 죽음에 대해서는 대충의 인지를 하고는 있어도 진짜 부모를 잃은 슬픔을 모르는 애매한 구석이 있었다.


아빠가 큰아버지에게 기대어 무너져 내리듯 울고 있고, 비보를 듣고 달려온 할머니는 마루에 앉아 그런 비통에 잠긴  아들을 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구경꾼이 된 동네 이웃들이 담 너머로 가득했는데 나는 그 와중에 절정으로 치닫는 연극의 정점에 나타난 아역 배우처럼 주목을 받았다.


부지불식간 초상집이 되어 버린 큰 무대 같은 그곳에 들어서는 순간 나는 무언가 그들의 기대에 부합하는 연기를 해야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할머니가 울고 아빠도 통곡하고 있는 이 분위기에 엄마가 죽었다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는 바보 같은 아이처럼 보이지 않기 위해 어깨에 둘러맨 책가방과 신발주머니를 던져 놓고 할머니 옆에서 마룻바닥을 치며 목놓아 울었다. 그 순간만큼은 아주 또렷이 기억하건대 눈물을 흘리며 애써 슬피 울었지만 분명 그것은 일종의 내 첫 연기였다.


“어머 애가 저렇게 우는 것 봐! 아이고 쯧쯧쯧”


이날 내 연기는 지켜보기만 해도 모성이 찢기는 듯, 같이 눈물을 훔치는 아줌마들도 있었다. 어쩌면 딱 아이다운 것이었는지 아니면 덜떨어진 것이었는지 모를 이날의 나는, 이렇듯 훌륭한 눈물 연기에 눈물로 보답받았다. 

엄마가 이제 다시 보지 못할 존재가 되었다는 건 알지만, 어미 잃은 제 처지가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는 안타까운 아이가 바로 나였다.


 나는 엄마가 죽었다는 현상과, 노심초사 사랑으로 낳고 기르던 존재가 가련하게 죽었다는 슬픈 감정을 진실로 모를뿐더러 이 둘을 함께 연결하지도 못하는 때에 엄마를 잃었고, 엄마는 그런 자식을 남겨두고 꽃보다 짧은 생을 등지고 떠났다. 지금의 나보다 젊은 나이에 결혼을 하고 아이 둘을 두었던 여자는 많은 의문을 남기고 그렇게 우리 곁을 모질게 떠나 버린 것이다.





아빠가 엄마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집으로 돌아와 한 일은 줄 톱을 찾아 등나무를 베어 버린 것이다. 서너 겹의 두꺼운 밑동이 서로 엉겨 올라와 힘차게 뻗은 줄기를 처마처럼 드리우고 커다란 구식 탁구대 한편을 다 가릴 만큼의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 주던 우리 집의 표식과 같았던 나무. 싱그럽게 푸르른 널따란 잎사귀 사이로 포도송이 같은 보라 빛 꽃송이를 늘어뜨리면 작은 마당이 운치를 더해 그 옆 모란이 피는 작은 화단과 얼마나 잘 어우러졌었던가! 


나는 그런 등나무를 베어 버리겠다고 톱을 들고 작은 앉은뱅이 의자까지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 아빠를 말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의 슬픔은 분노로 바뀐 듯 다스릴 수 없는 감정이 울그락불그락, 처음 보는 무서운 표정으로 바뀌어 말도 붙여 볼 수 없었다. 기운 좋은 마흔의 남자가 울분의 톱질을 시작했지만 등나무를 쓰러뜨리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대낮에 시작한 톱질을 그칠 줄 모르고 이어갔지만 등나무가 모조리 베어진 건 오후가 되어서였던 것 같다.


애통하고 비통한 심정이 어떤 것인지 그날의 아버지의 몸짓을 보며 이해하게 되었다. 쓰러져 우는 때보다, 아름다운 나무를 파괴하고 있는 아빠의 모습이 더 슬퍼 보였다고 해야 할까? 정작 그날부터 점차로 내게 엄마는 잊혀 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애꿎은 등나무를 베고 있는 아빠는 눈물인지 땀인지 모를 진을 빼고 말했다.


“이게 다 이 배배 꼬인 등나무 때문이야. 이 재수 없는 나무 때문에!”


그때도 나는 한편으로 모든 일을 나무 탓으로 돌리는 자체는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집안이 이지경에 이르자 훌륭하게만 보이던 나무가 문자 그대로 갈등을 조장하고 집안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흉한 요물이 되고 말았다.


아빠 말처럼 모든 발단은 그 등나무 때문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몇 해전 그런 등나무가 있는 집으로 이사 온 시기를 탓해야겠고 결국은 운명일 뿐이란 결과로만 돌아갈 수밖에!

어쩌면 모든 것의 발단은 그 등나무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다시 떠오른 내 기억에 의하면 유일하게 죄가 없는 것은 그 등나무였다.


등나무마저 베어져 버린 마당은 더욱 휑해지고 아빠는 한 동안 정말 어쩔 줄을 몰라했다.



글 반디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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