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너도 알겠지만 아빠는 죽었어. 늦은 밤에 술에 잔뜩 취해서 횡단보도가 아닌 길을 가로질러 건너다가 달려오던 승용차에 치었어. 운전자는 칠십 대의 노인이었어. 그분은 차에서 내려 쓰러진 아빠를 바라보며 "이 늦은 밤에 어쩌려고 차도로 들어와! 이 사람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먼"라며 소리를 질렀대. 노인은 손을 덜덜 떨며 휴대폰을 꺼내 경찰에 신고했어. 그러나 병원으로 옮긴 아빠는 숨을 거두고 말았어. 영안실로 달려가 시신을 덮은 흰 천을 들춰본 엄마는 그 자리에서 기절했어.
아빠는 그날 저녁에 거실의 물건을 내던지며 엄마보고 돈 벌어오라고 소리를 질렀거든. 이미 집에서 술을 많이 마셨어. 엄마는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 같았어. 아빠의 폭력에 몸을 내맡기고 무기력하게 천장만 바라보았어. 아빠는 나에게도 소리를 질렀어. "이년아, 구경만 하고 있지 말고 너도 나가서 알바라도 해. 니 외갓집에 전화해서 사위가 사채를 쓰다가 죽게 생겼다고 말도 하고. 너는 네 엄마를 닮아서 얼굴만 반반했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어."라고 말했어.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 같았어. 아빠는 쾅 소리가 나게 현관문을 닫고 밖으로 나갔어. '나가서 알바라도 해'라는 말이 결국 나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됐지.
장례를 치른 엄마는 정신이 반쯤 나간 사람처럼 굴었어. 헛것이 보이는지 이상한 말을 하거나 갑자기 누가 왔다고 현관으로 달려가 문을 열어보곤 했어. 집은 이미 경매로 넘어갔고. 한 달 안에 집을 비워야 했어. 운전자의 보험회사에서 보상금이 나온다고 했어. 그런데 엄마가 그 돈을 받으면 아빠의 빚도 물려받아야 한다고 했어. 그게 훨씬 많은 돈이라고 했어. 결국 엄마는 상속을 포기했고 보상금은 빚쟁이들이 나누어 가졌다는 거야. 하루아침에 엄마와 난 거리에 나 앉았어. 엄마는 잠시 외가로 갔고, 나는 그때 지영이 너네 집에 일주일인가 머물렀었지. 너는 지수를 상헌이네 집으로 보냈어. 상헌이도 기꺼이 받아 주었지. 상헌 아빠는 식구가 늘었다고 하면서 셋이서 맛있게 식사를 했다고 했지.
엄마는 친정에 가서도 계속 헛것을 보았어. 잠을 못 자는 날이 늘었고, 얼굴은 창백하게 야위어 갔어. 외삼촌이 전학 처리를 도와줘서 나도 너네 집을 나와 부천으로 갔지. 여기까지가 너도 알았거나 내가 말해준 이야기일 거야. 졸지에 두 식구가 늘어난 외할머니 댁도 황당해했어. 할머니는 하루 종일 엄마를 보살피면서 혀를 찼어. "너를 그놈에게 시집보내는 게 아니었는데. 그놈은 말만 번드르르하고 도무지 책임감이 없는 놈이었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길래 다 늙어 딸년에 손주까지 맡아 이 고생인지 모르겠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어. 나중에는 내가 토씨 하나 안 틀리고 외울 정도가 됐지.
그 동네에서 병원을 들락거리던 엄마는 자기 몸에 손을 대기 시작했어. 그것도 아빠에게 맞은 자리만 골라 주먹으로 때리고 손가락으로 찌르면서 스스로 학대했어. "이년아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년아. 너는 남편이 사채를 써서 빚쟁이들에게서 장기를 팔라고 협박을 받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로구나. 뭐 이혼? 누구 맘대로. 나 죽으면 그 빚은 네년이 다 갚아야 하는 거야. 알아들어?" 이런 말을 반복했어. 결국 엄마는 도시 외곽에 있는 정신병원에 입원했어. 나는 병원에 면회를 가보려고 했지만 할머니가 말렸어. "가봐야 소용없다. 너를 알아보지도 못할 거고. 험한 꼴 봐야 너도 좋을 게 없어. 가지 마라."
사실 엄마는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에 묶여있었던 거야. 답답하다고 풀어달라고 몸부림치다가 손목에 상처가 나면 잠시 풀어 주었는데 그럴 때면 건장한 남자 간호사들 두 명이 옆에서 딱 지켜보고 있었대. 할머니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나도 미칠 것 같았어. 새로 전학 간 학교의 아이들도 처음에는 관심을 보이다가 이내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어. 내가 너무 우울한 표정인 데다 누구 하고도 말을 하지 않았거든. 새 담임은 이것저것 몇 번 물어보더니 고등학교에 가야 하니 일반고등학교에 갈 건지, 특성화고등학교에 갈 건지 생각해 오라고 했어. 성적은 중요하지 않고 내가 선택하는 대로 진학할 수 있을 것이라 했어. 난 그때 내 앞날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어. 나에게 미래는 없을 것 같았거든.
두 달인가 다녔던 그 학교는 건물이 무슨 색이었는지, 운동장은 어땠는지, 교실은 몇 층에 있었는지, 담임 얼굴도 생각이 나지 않아. 그땐 전혀 눈에 들어오지 않았거든. 새로 친구를 사귈 마음도 생기지 않았고, 아이들도 나를 투명인간 취급했어. 아무도 나에게 관심 주지 않는 게 처음엔 편했는데 겨울방학이 가까워지니까 점점 힘들어졌어. 내가 결석하는 날은 담임이 아침에 전화했어. 결석이 잦으니까 담임도 무엇을 꼬치꼬치 묻지 않았어. 아프다고 말하면 "그래, 알았다. 학교 나올 때 진단서나 약봉지 챙겨 와라." 딱 이 말만 했어. 여기 담임은 무엇이 그리 피곤한지 모든 것을 귀찮아했어. 뭐랄까. 그냥 내가 사고만 안 치면 다른 것은 관심이 없다는 느낌?
다른 교과 샘들도 나에겐 전혀 관심이 없었어. 수업시간에 내가 책상 위에 엎드려 있어도 누구도 나를 깨우지 않았어. 나 말고도 잠을 자는 애들이 꽤 있었어. 샘들도 깨우다 지쳤는지 그냥 내버려 두었어. 그 학교에선 샘들이나 아이들이나 나에게 말을 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어. 진짜 난 혼자였지. 너랑 가끔 통화했지만 그냥 잘 있다고만 했고, 너는 계속 만나자고 졸랐어. 그런데 만날 수 없었지. 너를 만나서 내 얘기를 들려주면 네가 너무 힘들 것 같았거든. 아니,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할만한 에너지가 남아 있지 않았던 것 같아. 할머니는 한숨이 늘어갔어. 언젠가부터 엄마 이야기를 하지 않았어. 나도 물어보지 않았어. 침대에 묶여 있었다는 말을 들은 후로 엄마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미칠 것 같았거든.
엄마 동생인 외삼촌은 마흔 살이 넘었는데 아직 미혼이었어. 직장에 다녔었는데 스스로 그만두고 집에만 있었어. 새로 직장을 구할 생각을 하지 않고 실업수당을 받아서 버티는 것 같았어. 누나가 정신병원에 있다는 사실이 힘들었는지 외삼촌은 나를 똑바로 쳐다보지 않았어. 나를 보면 자기 누나 생각이 나서 그랬을 거야. 할머니도 가끔 나를 보며 "너는 아주 네 에미를 빼다 박았구나."라고 말했거든. 할머니에게 그 말을 들으면 더 엄마 생각이 나서 우울해졌어.
외삼촌은 밤새도록 자기 방에서 게임을 했어. 자주 할머니와 다투었어. "뭐라도 하지 그러니. 그렇게 틀어박혀 게임만 하고 있으면 뭐가 나오니. 제발 좀 씻고, 옷도 갈아입어라. 아주 네 방에서 냄새가 진동한다. 내가 다 늙어서 이게 무슨 팔자람? 서방이란 것은 일찍 죽고, 기껏 공부시켜 놓았더니 딸년에, 아들에, 손주까지 걷어 먹이게 되다니... 내가 빨리 죽어야지." 하면서 그릇 부딪치는 소리를 내며 설거지를 했어. 외삼촌은 그런 이야기를 듣기 싫어했어. "아 좀 엔간히 해요. 누군 이러고 싶어 이러는 줄 알아요?"라면서 목소리를 높였어. 몸을 쓰는 일은 하기 싫고, 사무직을 찾는 것 같았으나 어디 오라는 데는 없고 외삼촌도 미칠 지경이었을 거야.
학교 끝나고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할머니가 시장에 가고 없는 날엔 외삼촌과 둘이 있어야 했어. 언젠가부터 외삼촌은 나를 흘깃거리며 보기 시작했어. 안 그런 척하면서 얼굴을 유심히 보기도 하고 가슴과 허리를 훑었어. 너무 징그럽고 무서웠어. 그때 난 할머니네 집에서 나가야 한다고 생각했어. 그러나 아무 데도 갈 곳이 없었지. 할머니가 시장에서 돌아올 때까지 집안의 공기는 어색하고 무거웠어. 그 집은 안방과 거실, 그리고 작은 방 두 개가 있는 구조였어. 내가 머물렀던 방과 외삼촌방은 현관에서 거실로 들어서는 입구에 서로 마주 보고 있었지.
거의 매일 밤새도록 컴퓨터 게임하는 소리가 났어. 하루종일 헤드폰을 쓰고 있자니 귀가 아픈지 그냥 소리가 들리는 상태로 게임을 했지. 매일 비슷한 소음이 반복되니 듣는 나도 괴로웠어.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어. 그렇다고 얹혀사는 주제에 내 의견을 말하기란 쉽지 않았어. 게임 중간중간 방 밖으로 나와서는 내 방 쪽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었어. 뭔가 싸한 기분이 느껴졌거든. 난 늘 방문을 닫고 있었지만 잠그진 않았어. 문까지 걸어 잠그면 할머니가 미워할 것 같았거든. 가끔 할머니나 외삼촌이 열어 봤어. 할머니가 없을 땐 외삼촌이 "소라야 뭐 먹을래, 배달시켜 먹을까?"하고 말을 걸었어.
그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갔을 때 할머니는 없었어. 내가 현관에 들어서자 운동복을 입고 거실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던 외삼촌이 나를 올려다봤어. 불쾌하고 징그러운 눈빛이었어. 지영아, 이 이야기는 정말 하기 싫어. 내가 너를 만난다면 언제나 그랬듯이 비밀은 하나도 없어야 하는데, 난 그럴 자신이 없어. 그렇지만 네가 너무 보고 싶은 것은 사실이야. 너도 지수도 지동이도 너무 보고 싶어. 가끔 상헌이와 함께 초원식당에서 삼겹살 먹던 생각을 해. 다시 옛날로 돌아갈 순 없겠지?
편지를 쓰던 소라는 저장 키를 누른 다음 철제 사다리를 타고 침대에서 내려왔다. 소라가 화장실에 들어가 소변을 보고 나왔을 때 거실 겸 사무실에 있던 쉼터 센터장이 소라를 불러 세웠다. 센터장은 안경 너머로 소라를 쳐다보며 "너 점심 안 먹었지? 남들 먹을 때 다 같이 먹어야지. 너도 혼자 먹는 것은 싫지? 저녁 때는 꼭 시간 맞추어 식당으로 와야 한다."라고 말했다. 소라에게는 이 말이 자신을 걱정해 주는 것으로 들리지 않았다. 그냥 습관적인 저녁 식사 안내로 들렸다. 학교에서도, 여기 쉼터에서도, 이곳을 안내해 준 복지사도, 소라가 만났던 경찰도 업무 처리의 대상으로만 보았다.
물론 따뜻한 위로의 말도 들었으나, 너무 판에 박힌 듯하여 소라의 마움을 움직이진 못했다. 그 말은 따뜻함을 가장한 형식적인 말이었고, 책임을 다 했다는 알리바이 같은 말이었다. 소라는 점점 마음의 문을 닫았다. 센터장이 했던 말은 하나도 나무랄 것이 없는 꼭 해야 할 말이었다. 듣기에 따라서는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말이기도 했다. 그러나 소라에겐 '난 내 역할은 다 했다. 나머진 네 몫이야."라는 말로 들렸다. 소라가 사고만 내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책임질 일만 만들지 않는다면, 서로에게 너무 쿨한 관계였다.
여기 직원들은 쉼터에 오는 여자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대해주었지만 선을 지켰다. 아이들 입장에서 그 선은 너무 견고하여 넘을 수 없었다. 그저 여기 있는 동안 주는 밥 먹고 사고 내지 않고 지내다가 '무사히' 퇴소하면 그들의 임무는 완성되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소라가 겪었던 어른들의 세계는 '무사고 안전빵 주의'였다. 누구도 모험하지 않았고, 업무 처리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소라는 저장했던 편지를 불러내어 다시 쓰기 시작했다.
- 지영아. 너무 보고 싶은 지영아. 지난 일 년 동안 나에게 어떤 일이 있었는지 너는 상상도 할 수 없을 거야. 우리가 만약 다시 만나지 않는다면 이런 이야기를 아는 사람은 나 하나밖에 없겠지. 나는 매일 고민해. 우리가 만약 만나지 않을 경우도 있으니까 이 편지에 모든 내용을 다 담아서 너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은지, 정말 하기 힘든 얘기들은 편지로 하지 않고 우리가 만났을 때 하는 것이 좋을지. 너와 나는 초등학교 때부터 꼭 붙어 지냈기 때문에 백퍼 알고, 또 이해하는 사이였어. 그러나 내가 하려는 얘기는 네가 이해를 못 할 수도 있어. 그래서 난 두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