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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Nov 12. 2021

흔들리는 버스안에서 너의 땀냄새가 느껴진거야

예봉산, 적갑산, 운길산 2021년 9월 25일

애인과 헤어졌거나 새로운 곳으로 이직을 했거나 스트레스 해소 상사 욕 후배 욕 사회문화 정치 이슈 등 각자의 에피소드를 가지고 테이블에 커피나 맥주를 두고 한참 열을 올리다가 피로해져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가끔 쓸쓸하다.


H건축 동료였던 백씨와 조씨를 새벽 5시 30분에 차에 태워 팔당역에서 출발하여 예봉산에 오르기 시작한다.

3개의 봉우리, 13킬로를 오르내렸다.

그동안 우리가 주로 나눈 이야기는

-너 엄지발꼬락 아파?

-난 아직 괜찮은데

-화장실 갔다 올걸

-좀 더 참을 수 있겠지

-조금만 더 있으면 옷에 쌀 예정

-살면서 한 번쯤 바지에 똥 싸 봐야 한다.

이런 1차원적인 대화를 간간히 나누고 서로의 상태와 거리를 확인하며 함께 산을 오르고 집에 돌아오는 길은 쓸쓸하지 않다.


우리는 이렇게 천천히 산을 오르며 머리를 거치지 않고 몸으로부터 나오는 대화를 하는 가까움이 그리웠던 걸까.

산을 오르면서 가까움을 느낀다.


세명 모두 10킬로가 넘는 거리에 대한 감이 없이 무턱대고 시작한 산행이다.

7시간이 넘도록 경관도 없는 능선을 걷고 3개의 봉우리를 지나며 힘들게 이어졌다.

예상보다 과한 운동량에 점점 지쳐오고 지쳐가는 내 몸이 감당 안될 때쯤

욱하며 입에서 짜증의 말이 나오는 찰나 앞서가던 백씨가

-이렇게 힘들어도 우리는 짜증을 안 내니 같이 다니나 봐.

시간차로 짜증을 블로킹 당해 헛웃음을 웃었다.


내 배낭에는 육포, 초코파이, 에너지바, 젤리 등이 있었다.

7시간을 걸으면서 다 없어졌다.

라면 국물 조금만 먹었으면…

아니다 오뎅국물

아니지 감자탕

아니면 만둣국

이런 것들을 계속 열망하고 떠올리며 걸었다.


운길산 봉우리를 거쳐 하산한 뒤 걸레가 된 두 다리를 끌고 운길산역 주변에 띄엄띄엄 있는 쌈밥집까지 걸어가서 제육쌈밥과 맥주를 마셨다.

제육을 기다리는 동안 향긋한 미나리전은 밑반찬 해치우듯 없애버렸다.


아이스 아메리카노까지 마신 뒤 배가 부르고 버스를 타고 집에 오는 길

주변에 여러 식당 간판들이 보였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다는 생각과 갑자기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은 등산의 삶이 아닌 일상의 삶은 사는 거 자체가 낭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열망하는 것이 하나도 없다니.


산속에서 무언가를 끊임없이 열망하는 삶 만이 진짜 삶 같다.

흔들리는 버스에서 다음 등산 약속을 또 잡는다.


이런 예쁜길이 잠깐나온다
이런 험한길이 자주나온다
이런 사다리도 나온다
진짜 욕하기 일보직전이었는데…
이런 정상석을 세개나 만남. 이건 오바였다
순식간에 해치운 미나리전
공기밥리필을 부른 제육쌈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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