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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지원 Nov 23. 2021

큰형의 어깨를 오른다.

소백산 비로봉 2021년 11월 6일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일 같아 서랍에 보관만 하는 생각들이 있다.

한창의 연애 때에는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 싫어질 수 있다는 사실, 인생 계속 오르막길 걷는 중으로 알았는데 내리막길이었다는 것(예를 들면 이반일리치의 죽음), 환경파괴로 인한 지구의 종말, 황혼의 이혼, 자동차 사고 …  언젠가는, 아니면 불특정 다수에게 생기는 일이지만 어리석게도 그런 일을 들을 때 '나에게 그런 일이 일어날 리가 없지' 해버린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나에게 일어나지 않을 일 항목 중 하나는 ‘등산’이었는데.

내려올 산을 굳이 오른다고? (이런 진부한 농담을 써도 내 글 괜찮을지)

내가 그런 걸 할리가 없잖아. 라고 생각해버렸다

등산을 저렇게 강도 높은 불행 카테고리에 묶어 비교하는 것이 사뭇 어색하지만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아 서랍에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내가 중학생이던 90년대 중후반에는 전 국가적으로

고등학생은 공부를 시켜야 되고 중학생은 훈련을 시켜야 한다고 확실히 컨셉을 잡았다고 추측한다. 왜냐면 학창 시절 고등학교 때는 수학여행을, 중학교 때는 극기훈련을 갔었다. (교육부에서 그 정도 컨셉도 안 잡고 추진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닥 미화시켜 소환할 기억은 없는 중학교 시절 중 산에 관련된 것만 짧게 회상해 본다.

96년도 내가 중학교 3학년 때 2박 3일의 극기훈련을 갔었다. 어디로 가든 노는 행태는 비슷하고 서울아니면 다 시골이라 규정해 우리가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 지명 따위는 고려하지 않을 때였다.

그래도 주요 일정이 소백산 비로봉을 오르는 것이었던 것은 생생하고 지금 생각해도 자기가 제일 똑똑한 줄 안다고 생각해 늘 억울하고 할 말 많은 중학생 에게는 가혹하고 과도했다고 판단된다.


학교에서는 극기훈련 가기 며칠 전부터 가정통신문으로 편한 운동화나 등산화를 신고 오라는 공지를 전달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학교 3학년이었던 나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패션이고 그 와중에 자기주장이 강했던(지금도) 나는 구두를 신고 갔다. 산 따위 조금 오르는 척하다가 산 아래로 도망치면 그만이라는 아주 재치 있는 생각과 계획이었다.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나면 안아주고 싶거나 쓰다듬어주고 싶어 지는 생각이 들 때가 가끔 있기도 하지만 중학교 이 시점의 나를 만나면 등짝을 한대때려줘야겠다 싶을 정도로 나는 자주 한심한 장난을 하고 뺀질거렸다.)

막상 그 계획을 실현하는 것은 호락호락하지 않아서 무더기의 등산 행렬에서 백스텝으로 도망치다가 극기훈련 교관에게 제대로 걸렸다. 그 뒤로부터는 거의 1대 1로 감시를 받으며 동행을 당했다.

감시를 받으면서 억지로 산을 오르는 도중 내가 신은 새 구두의 밑창이 빠져버리는 바람에 체력의 문제로 얼굴이 하얗게 질려버린 낙오자들과 함께 중도 하산 그룹에 포함되어 하산을 했다.

어느 학교나 통계적으로 체력이 약하고 통제 안 되는 애들은 조금씩 있으니 우리를 끌고 내려가는 해당 교관에게는 준비된 하산이었다.

망가져버린 신발은 속상하지만 산 정상까지 올라가지 않을 목적은 달성 한셈치고 체력이 저하된 무리들 중 유일하게 생생한 얼굴인 나는 산 밑으로 내려와 숙소에서 애들을 꽤 오랜 시간 기다렸다.

몇 시간 뒤에 친구들과 선생님들의 지쳐 보이지만 밝은 얼굴들을 마주했다.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갔다 왔어?

내려온 친구들한테 깐죽대며 산 정상이 어땠냐고 물어본 것이 무안할 정도로 애들이나 선생님이나 하나같이

-정상에 융단이 펼쳐져 있었다.

-소백산 넌 감동이었어… (성시경이 우리학교 였나)

-아.. 너도 그건 꼭 봤어야 하는데…

라는 말들을 했다


산 위에 융단이라니…?

산은 삼각형인데? 내가 안 가봤다고 저것들이 속이는 건가 아니면 내가 꼬여서 뻥처럼 들리는 것인가 휴대폰 카메라 같은 것이 없던 시절이어서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 일은 그냥 그렇게 잊혀졌고 몇 년 뒤 인터넷 세상이 열리고 소백산 비로봉 정상의 계절마다 다른 특색을 (사진으로) 파악한 나는 소백산 비로봉 주변에 펼쳐진 융단이라 표현되는 이미지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렇게 한편에 접어둔 기억의 한 페이지,

간 것도 아니고 안 간 것도 아닌 소백산




이제 내일모레 마흔인 현시점으로 다시 와서 조금 여유 있게 소백산 등산에 대한 기억을 조금 적을 거다.

뺀질이 중학생은 어느덧 마흔을 앞둔 나이가 되었고 등산은 안 해- 라고 호언장담했던 시절과 달리 산에 맛들려서 본격적으로 주말마다 이산은 누구랑 가지 저산은 누구랑 가지 산을 먼저 정하고 적당한 페이스를 맞추며 함께하고 싶은 사람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낸다.

등산을 좋아하게 된 정도를 더 자세히 써보자면 토요일에 산을 다녀오고 이틀밖에 되지 않은 월요일 출근하자마자 속으로 생각한다.

-나 지금 산에 오르고 싶구나.

아침마다 30분 정도 이어지는 대표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내 머릿속 회의실에서

-너는 산에 오르기 위해 5일 동안 일을 하는 사람이다.

라고 등산복을 입은 ‘주말의 나’가 진지한 재킷을 입고 점잖떨고 앉아있는 ‘평일의 나’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한다.

그 프레젠테이션 내용 중에는 5일 동안 산을 오르기 위해 이틀만 일해도 되는 삶을 언젠가 살기 위해서 너는 지금 열심히 일을 하는 것이니 더욱 정신을 차리고 일을 열심히 해야 한다.라는 내용도 있고 주말에 산길을 걷기 위해 돌자갈밭 같은 출퇴근길을 걷고 있는 것이라며 계속 멋진 말들을 하고 있다.

등산복을 입고 등산화를 신고 등산스틱을 쥔 손으로 평일의 나에게 일타강사처럼 호령하는 ‘주말의 나’는 보면볼수록 너무 멋지다...

‘평일의 나’는 요즘 주로 일을 지시하고 관리하고 검토하는것으로 일상을 채운다.

거의 전화와 이메일 업무

자세히 말하면 주로 요청과 재촉.

조직은 나를 무서우리만큼 능동적이게 하지만 개인의 감성으로 생각해보면 정말 작은 사람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여러모로 ‘평일의 나’는 ‘주말의 나’와는 감성이 조금 안 맞는다.

아 안 되겠다. 빨리 산으로 가야 한다.

등산의 세계에서는 나도 아니다 싶은 일을 상대방에게 강요해야 될 때도 없고 강요받을 때가 생기지 않아 확실히 평일과 구별된다.

주말 등산의 세계에서 안전하려면 평일을 잘 살아둬야 하니 더 힘을 내야 한다고 ‘평일의 나’는 아득한 다른 생각에서 깨어나며 월요일 회의시간을 무사히 마친다.(이래서 현실 회의가 기억이…)


자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면 열심히 살았더니 거짓말처럼 금요일이 왔다.

금요일이 왔고 토요일 등산을 하기 위해 퇴근 후 소백산 인근의 캠핑장으로 내달려 자리를 잡았다.

불을 때기 시작한다.

나는 장작을 괴팍하게 지핀다.

가을이라 건조한데도 장작은 눅눅한지 불이 안 펴진다. 화로대 주변을 빙두르며 나무를 세워두고 불속에 들어가기 전 열기로 말린다. 그러다가 화로대 밖에 세워둔 장작 끄트머리에 불이 붙으면 그 장작은 간택되어 화로대 안으로 들어간다.


밤에 누우니 낙엽이 후드득 텐트 위로 떨어진다 번갯불이 번쩍한 뒤 천둥소리가 들리는 것처럼 바람이 휘잉 하고 분 다음 텐트에 낙엽이 후드득 떨어진다

이것 봐라? 내일 아름다운 산의 낙엽들을 실컷 볼 수 있겠군.!! 아름다운 소백산을 염원하며 잠이 들었다.


아침이 밝았고 일주일 내내 기다려온 소백산의 아침은 엉망이었다 . 텐트를 접는 시간은 너무 오래 걸려 새벽에 등산을 시작하겠다는 목표는 이뤄지지 않았고 막상 산에는 떨어진 낙엽들이 떡이 져있다. 이끼 낀 돌들만 가득한 습한 숲길을 연속해서 걸었다.

소백산 등산로는 완만한 천동 코스가 유명하지만 빠르게 올라갔다 내려와서 풍기 온천에 몸을 지지자는 목표가 또 하나 생겨서 짧은 코스로 가다 보니 무릎과 발바닥 아픈 돌길이 이어졌다.

그냥 묵묵히 걷기만을 반복하면서 생각보다 소백산 산행이 그다지 행복하지 않은 이유를 찾기 위해 애쓰다가 너무 많은 기대는 정신건강에 해롭다.로 인과관계를 확인. 그것을 칡뿌리 삼아 머릿속으로 곱씹으며 걸었다.

걸으면서 중학교 시절도 잠깐 회상한다.

중학교 때 이런 길로 갔으면 성실한 애들도 다 도망갔겠다. 구두굽은 초입에서 빠졌겠는데 .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걷다보니 갑자기 비로봉 능선이 서울갔다가 성공하고 돌아온 큰 형님처럼 방문을 발로차면거 나타났다. 큰기침을 하며 나를 맞아주며 본인의 어깨 위에 올라타 주변의 산들을 내려다보게도 해주었다.

아 이거였구나. 23년 전 못 만나 뵌 게 아쉬어서 왔습니다.

저 꼬리 흔드는 것 좀 봐주세엽.


정상은 넓고 장관..? 절경? 이었다. (주기자 톤)

내가 다른 것도 약하지만 자연경관에 대한 표현은 특히 약하다는 것을 산을 오르면서 느끼는데.

와.. 장관일세, 야... 멋진걸? 이러고 말아 버린다.

한때 유행했던 맛 표현 "햄들이 온천에서 육수를 흘리며 사우나를 하는 듯한 후끈한 맛 ", "면발들이 이탈리아 피렌체 크림색 잔디밭에서 미끄럼틀 타는 맛"(출처 비밀보장 191회)처럼 내가 만난 비로봉을 표현해보자면 "비로봉 형님의 어깨 위에 올라 내려다보는 세모난 병풍들..."이라고 (그만하자)


산에 올라가기 전 캠핑 철수하며 투닥투닥했던 남편과의 일, 일주일 내내 기대했던 산의 아침이 아름답지만은 않았던 것, 정상 융단에서 굴러다니려고 했는데 난간이 조성되어서 정해진 길로만 다녔던 것, 모든 것이 기대에 못 미쳤으나 웅장함이라는 형님은 이 무지렁이 동생의 옹졸한 생각들을 잊게 해 줬다. 정상에 머물다 내려오는길 종아리에 알이 베기지만 책상에 오래 앉아서 생기는 종아리 알과는 다른 쫀쫀한 느낌이고 점점 몸이 지쳐갈수록 머리는 잘 정수된 맑은 얼음물을 한 컵 마신 것처럼 개운해진다.


정신의 지배를 당해 산을 다니기 시작한 건지 육체의 에너지가 남아돌아 시작했는지 헛헛함으로 시작한 등산에 이런 모멘텀이 생긴 것이 기분좋은 상태로 원점으로 회귀했다.

내가 본업 외에 시작했다 쉽게 질리거나 놓아버린 것들처럼 삼각형 산과 나의 관계는 그렇게 되지 않길 바라는 마음을 품고 풍기 온천 냉탕 온탕을 번갈아 몸을 담근다.

온탕속에서 무거운 몸을 받치느라 올해 가장 고생하는 종아리를 주물주물 하며 급격한 온도 차이로 스타킹을 신은 이상한 느낌을 유지하려고 다시 또 냉탕으로.

그러고 보니 냉탕도 잘 못 들어갔는데 어느새 나는 좀 강해지고 있다.

그리고 나 등산 많이 좋아하네?



https://youtu.be/i--JNym-zh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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