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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묘슬 Dec 31. 2024

잃어버린 아이와 백개의 방 #7

[단편소설]

2"나이가 들면 매일 죽을 준비를 해야 되는거야."

여진은 불편한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매일 깔끔하게 주변을 정리하고 단정한 옷을 입고는 습관처럼 말했다. 아침마다 걸려 오는 박경위의 전화도 놓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부터 유난히 몸을 떨며 불안한 표정을 하고 있던 여진이 전화를 받자마자 갑자기 눈빛이 바뀌더니 얼굴이 일그러지며 울부짖기 시작했다.

"제가 다 잘못했어요. 동생 꼭 찾아야되요. 엄마랑 약속했어요. 찾아야되요. 우리 영호 제발 찾아주세요."

여진의 돌발행동에 당황한 정희가 전화기를 손에서 뺏어 들었다. 전화기를 뺏긴 여진은 더 크게 울부짖었다.

"이제 전화 그만하셔도 됩니다."

상대방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정희는 전화를 끊었다.


여진은 섬망증세를 보이며 허공을 향해 발작하듯이 몸을 떨기 시작했다. 그녀의 바지가 뜨끈한 오줌 자국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정희는 여진의 작은 어깨를 꼭 끌어안고 토닥이며 말했다.

"이제 그만해도 돼요. 할 만큼 하셨어요. 아니, 넘치게 하셨죠. 수십 년이었잖아요. 이젠 놓아주세요."

"안 돼요. 엄마가 나 때문에 죽었단 말이에요. 나 때문에…."

여진은 흐느끼며 절규했다.

"너 때문 아니야 여진아. 니 잘못이 아니야"

오랜 시간 고통에 노출된 사람은 현실감각을 잃어간다. 여진은 시간을 되돌렸다. 수천수만 번 그날로 되돌아갔다.


파란 대문집이 눈앞에 선명하게 그려졌다. 문을 열자 알록달록한 내복 차림의 아기가 활짝 웃으며 안겼다. 그토록 안고 싶었던 동생을 두팔로 힘껏 끌어안았다. 이제 됐다고. 이제 다 괜찮다고. 되뇌며 그 아이의 체온을 느꼈다.

꿈은 늘 그렇게 끝났다. 수만 번 되돌아갔는데 어째서 한 번도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단 한 번도.

수천수만 번 반복하다 보면 어떤 날은 정말 과거로 갈 수가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이렇게 미쳐버리는구나 했다. 간절히 소망하면 온 우주가 도와준다는 말은 거짓이다. 소원이 간절할수록 온 우주는 그 간절함을 비웃었다.


"파킨슨병 치매입니다. 이대로라면 요양시설 입소 고려하셔야 하고요. 치료를 위해서는 최대한 빨리 보호자분과 함께 오셔야 합니다. 일단 오늘은 약 조절 해서 다시 처방해 드릴게요."

여진의 경미했던 치매 증상이 빠르게 악화되고 있었다. 발작 이후로 매일 걸려오던 전화는 더이상 오지 않았지만, 여진은 멍하니 앉아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정희는 센터방문을 꺼리는 여진을 위해 재활 운동 시간을 늘리고 인지 활동을 병행하며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약을 바꾼 후로 발작 같은 증상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정희는 전화가 오던 그 시간이 되면 여진에게 더 많은 말을 걸며 일부러 산책을 유도했다.


그러던 어느날 이었다. 정희의 휴대전화로 전화가 걸려왔다.

"이영호군 아니 이영호씨를 찾은 것 같습니다."

상기된 목소리의 박경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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