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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묘슬 Dec 26. 2023

자살드론 #1

연재소설

선화는 거울 앞에 앉아있었다. 거울 속으로 보이는 침실의 전경은 이사 올 때부터 특별히 신경을 썼던 부분이었다. 화이트톤이었지만 잔잔한 벚꽃무늬가 들어가도록 특별제작한 실크벽지와 침구세트 또한 화이트색상으로 은은하게 반짝거렸다. 가장 마음에 드는 부분은 역시 거울이었다. 벽전체를 가득 메운 에스닉무늬의 테두리가 보랏빛으로 반짝반짝 빛났다. 거울 속 선화의 표정은 상기되어 있었다. 오늘은 FW시즌 마지막 화보 촬영날이었다. 포토그래퍼와 코디네이터들의 회식자리에 잠시 얼굴을 비춘 후 집으로 돌아온 지 30 분도채 되지 않아 정성 들인 헤어와 꼼꼼한 피부화장이 만족스러웠다. 거울에 비친 모습이 아름답다고 잠시 생각했다.


'역시, 조명은 탁월한 선택이었어'

'아까 촬영장은 반사판이 맘에 들지 않았어'

 여기저기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는 상상을 했다. 3년 전 마지막으로 밟았던 레드카펫에 섰을 때처럼 고개를 45도로 꺾어보았다. 엷게 펴 바른 새도우의 펄이 보일 듯 말 듯 반짝였다. 아찔하게 올라간 속눈썹을 한번 더 보기 위해 좌우를 번갈아가며 눈을 살짝 감았다 떴다.


내년봄 시즌부터는 27살 모델 박화선으로 내정되었다고 했다. 15년이었다. 29살부터 시작한 우리나라 최고 고급 화장품 모델이 된 지. 국내 화장품 최장수 모델 기록이었고 CF의 여왕이었다. 어릴 적부터 선화에게 향하는 시선은 당연한 일이었다. 170cm 큰 키에 야리야리한 몸매, 빛나는 피부로 혜성같이 등장한 광고계의 샛별. 정신없는 전성기를 보내고 9편의 영화와 11편의 드라마를 찍을 동안 인식을 하고 나이가 들 때까지 선화의 미모는 탑이었다.


그러나 1년 전 한껏 꾸미고 참여한 연말파티에서 선화는 이상한 점을 느꼈다. 3시간이 넘는 시간 동안 파티장에 있었고 40명이 넘는 사람을 만났지만 한 번도 듣지 못했다. 평생 들어왔던 그 말. 단 한 번도. 오늘도 촬영을 마친 후 걸어 나오는 선화의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번건 편집하는데 시간 좀 걸리겠는데"

2년 전부터 불거져 나온 것은 오선화가 늙었다는 소문이었다. 대한민국 최고 피부미인을 자랑하던 선화의 피부가 조명을 받지 않으면 자글자글 하더라는 소문은 어떤 기자가 찍은 사진이 시작이었다. 필터링 없이 순간포착된 굴욕사진은 선화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었다. 까내리기로 작정한 사람들이 여기저기 퍼 나르기 시작한 사진은 걷잡을 수 없었다.


"그래서 내가 시술받자고 했잖아."

한대표는 선화를 다그쳤다. 아무리 타고난 피부라 하더라도 바쁜 일정에 쫓기다 보면 잠도 부족할 것이고 술자리도 잦아져 피부가 망가진다며 일주일에 한 번은 영양주사와 피부관리를 받기를 종용했다. 40살이 넘고부터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생각과 같지 않게 얼굴은 나날이 생기를 잃어갔다.

'괜찮아. 인성과 연기력으로 커버하면 돼'

선화를 조롱하듯 그 계획은 얼마 되지 않아 불발되었다. 언젠가부터 영화와 드라마는 공개되자마자 줄줄이 망했고 광고는 하나둘 계약종료를 통보했다. 이제 의리로 붙잡고 있었던 화장품모델일마저 끝났다.


'15년 만에 새 모델로 체인지된 오화'

'드디어 새로운 모델로 변화 맞이한 오화 화장품'

몇 달 전 공개된 기사가 중심이 된 영상에는 선화의 목주름과 이마나 팔자주름을 조롱하는 짤이 함께 돌아다녔다.

'늙었네. 훅갔어. 목주름 생겼으면 끝난 거지'

'언제 적 오선화야 ㅋㅋ 세월엔 장사 없지'


거울에 비친 시계가 밤 10시 4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뭔가 생각난 선화는 침대 협탁 서랍에서 작은 약통을 꺼냈다. 어제 새로 처방받은 영양제였다.  피부과 장원장은 자기도 먹고 있다며 적극 추천했다. 피부영양제이지만 ​기존의 다이어트보조제와 신경안정제의 단점을 모두 보완한 획기적인 신약이라 했다. 식이를 섭취하지 않아도 영양제만으로 충분한 미모를 유지할 수 있을 거라 했다. 밥 안 먹어도 배부르고 안정제를 먹지 않아도 잘 수 있고 따로 관리를 받지 않아도 빛나는 피부를 갖게 되는 약이라니.


우울증 약에 다이어트약까지 섭취하던 선화는 벼랑 끝까지 내몰린 기분이었지만 뭐든 해야만 했다. 중독까지는 아니었지만 알코올섭취가 늘어나자 우울증도 심해져 자살충동을 종종 느끼기도 했으니까. 아직은 아무것도 포기할 수 없었다.

'결혼실패를 겪고 한물간 여배우의 자살은 너무 비참하잖아'

약통에서 약을 한알 꺼내 물과 함께 삼켰다. 헤어와 화장을 그대로 둔 채 침대에 누웠다.


30대 후반 잠깐 결혼생활을 했었다. 5살 연상 사업가를 소개받은 지 6개월 만에 언론에 떠밀려 화려한 결혼식을 하고 신혼생활부터 일거수일투족이 인터넷에 까발려졌다. 행복한 얼굴로 SNS에 사진을 올리지 않으면 불화설이 나돌았다. 사기결혼이라는 기사가 나고 이혼설이 나오자 인터넷은 이제 선화가 남편에게 버림받는 사주라며 떠들어댔다.

'도대체 뭐가 잘못된 걸까, 언제부터 이렇게 된 걸까'

중얼거리던 선화의 눈이 스르르 감겼다.


한 달이 지난 후 선화는 쇄골라인을 한껏 드러낸 새하얀 드레스를 입고 포토존 앞에 서있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이어지고 기자들이 연신 플래시를 터뜨려댔다. 선화는 익숙한 듯 자연스럽게 양쪽손을 번갈아가며 들고는 좌우로 흔들며 카메라를 향해 웃어 보였다. 여기저기서 감탄이 쏟아졌다.

"우와 도대체 얼굴에 뭘 한 거야?"

"타임머신 타고 온 거 같아요!"

"너무 예뻐요. 완전 여신이야!"


'웅웅'

작은 드론 한대가 선화를 향해 조용히 날아왔다. 잠시 그녀를 바라보는가 싶더니 다시 위로 솟구쳤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곳에 있었지만 후광이 비치는듯한 선화의 얼굴이 너무 눈부셔 드론은 아무도 보지 못하는 듯했다. 다음날 싸늘한 시신이 된 선화를 발견하기 전까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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