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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묘슬 Jan 02. 2024

자살드론 #2

연재소설

드론이 선화의 주변에 나타난 것이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 아무도 몰랐다. 언제부턴가 주변을 맴돌았고 그녀가 처음으로 발견을 했을 때는 마지막 촬영스케줄이 끝난 지 2주 후였다. 집에서 칩거하다시피 하다가 2주 만에 처음으로 베란다 커튼을 열었을 때 드론의 빨간 불빛과 눈이 마주쳤다.

'꺅!!'

잠옷차림의 선화가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며 커튼을 닫고 몸을 숙였다.


'뭐지 저거. 말로만 듣던 불법촬영 드론인가'

커튼을 살짝 열고 주변을 살펴보았다.  방금 나타났던 드론이 그새 사라지고 없었다.

선화가 사는 곳은 총 3동 9층으로 된 고급빌라였다. 상류층 전문직과 재벌들의 세컨드하우스로 이용하는 단지로 알려져 길고양이까지 출입을 차단하는 철저한 사생활보호와 삼엄한 경비를 자랑했다. 드론이 선화의 집 베란다 바로 앞에 있다는 건 입주민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문제였다.

"여기 A동 9층인데요. 이상한 드론이 돌아다니는 것 같아요. 빨리 좀 확인해 주세요"

잠시 후 경비실로부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고 연락이 왔고 경비에 더욱 신경을 쓰겠다는 사과를 듣고 나서야 조금 마음이 놓였다

두근거리는 심장을 진정시키기 위해 약을 찾았다


이제는 뭐가 어떤 약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약통만 해도 수십 개에 자잘한 약들은 구분조차 어려웠다.

'약으로 사는 거네. 나'

이혼을 준비할 즈음부터 5년 넘게 복용하던 약들은 보기만 해도 지긋지긋했다. 

씁쓸한 표정으로 한숨을 쉬며 수많은 약들을 바라보던 선화가 한 약통을 집어 들었다. 다른 약들은 필요치 않았다.

'이것만 있으면 돼'

딸깍하고 열어본 약통 안에는 몇 알의 약이 들어있었다.

'한 달 치 약을 벌써 다 먹었네'

약을 삼킨 후 다시 소파에 누웠다.


'잘못 본 건가. 분명히 드론이었는데'

최근 잠을 심하게 많이 자고 이상한 꿈을 많이 꾼다고 생각하긴 했다.  이리저리 뒤엉킨 복잡한 꿈을 쉴 새 없이 꾸다 잠에서 깨면 머리가 깨질 듯 아팠다. 그러다 구토를 하기도 했고 다시 깨질 듯 아프고의 반복이었다. 만성두통과 위장장애는 평소에도 있었기에 무심코 넘어갔는데 신기하게도 몸은 시간이 지날수록 가뿐해졌고 젊어지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단점은 잠이 많이 쏟아진다는 거 하나였다.

선화는 외출준비를 했다. 마스크와 모자도 챙겼다. 장 원장을 만나 정확히 어떤 부분에서 어떤 약효가 있는지 더 자세히 물어보고 약을 더 많이 받아올 생각이었다.


"장원장님은 휴가를 내셨어요"

"네? 언제 오시나요?"

"두 달 후에 오십니다"

애써 찾아간 병원에서 장원장을 만날 수 없다고 하자 기가 막혔다. 아무리 전화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전화기가 꺼있어......'

휴가철도 아닌데 갑자기 두 달 동안 휴가라니 신경질적으로 휴대폰의 버튼을 눌러 전화를 끊었다.

그렇다고 다른 의사에게 처방을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약통에는 이름도 없었을뿐더러 장원장에게 직접 받은 약이라 다른 병원을 가도 소용이 없을 게 뻔했다.


'두 달 동안 약을 못 먹는다고?'

갑자기 견딜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약을 가져와서 약사에게 보여주면 이름을 알 수 있을 거야'

 서둘러 집에 도착하자마자 경비실로부터 퀵배달이 왔다는 연락을 받고 받아온 박스에는 작은 상자가 들어있었다.

선화가 찾던 바로 그 약이었다.


시끄러운 초인종 소리에 눈을 떴다. 며칠 동안 잠을 잔 걸까.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문을 열고 보니 집으로 찾아온 사람은 대표와 매니저였다.

"왜 이렇게 연락이 안 된 거야??  너 오늘 시상식에 가야 돼. 빨리 나와. 드레스도 봐야 하고 머리도 해야 돼. 시간이 없어!"

갑자기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선화를 현대표가 끌고 간 곳은 단골 헤어메이크업샵이었다.

"무슨 일이야? 내가 시상식에 왜가?"

"시상자가 배탈이 나서 참석이 취소됐어"

"시상자가 배탈이 났는데 내가 왜......"

샵에 있던 직원들과 여기저기서 사람들의 힐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오선화 맞아?" 

"진짜 오선화야?"

"딴 사람인 줄 알았잖아"


화장을 마친 후 시상식장으로 갈 때까지 선화는 거울을 놓지 못했다. 언제부턴가 잠을 많이 자서 그런 걸까. 피부가 20대로 돌아간 것 같았다.

선화의 드레스는 엷은 핑크빛이 도는 오프숄더의 하얀색 드레스였다. 굵은 컬이 들어간 까만 머릿결과 연보라색 루. 액세서리를 제외했는데도 피부가 보석같이 빛났다.

시상식 레드카펫에서는 데뷔 이후 처음 느껴보는 것 같은 열렬한 환호성에 정신이 아찔했다. 이렇게 과분한 관심을 받아본 게 얼마만인지 기억조차 희미했다.

심장이 두근거려 터질 것 같았다. 선화의 아름다운 몸매와 얼굴은 사진과 영상으로 온 나라에 퍼졌고 여러 매체에서 국민들에게 전해졌다. 

'리즈시절 미모 되찾은 오선화'

'여신 돋는 굴욕 없는 피부'

'압도하는 미모로 레드카펫에 선 원조여신'


시상식이 끝나고 인터뷰 요청들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온 선화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집에 오자마자 거울 앞으로 달려갔다.

참았던 눈물이 가슴 깊은 곳에서 올라왔다. 그렇게 참고 참았는데 이 순간을 위해 차곡차곡 모아 온 듯 묵고 묵은 눈물이 온몸에서 솟구쳐 나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죽고 싶었던 순간들과 굴욕의 세월들 보상받는 기분은 그 어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달콤했다. 고개를 들지도 못하고 꺼억꺼억 한참 울던 선화가 거울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


얼굴이 거울에 닿을 듯 말듯한 거리였다. 도자기피부, 깐 달걀피부. 말로만 듣던 완벽 그 자체였다. 피부뿐 아니라 생기가 도는 얼굴빛은 스스로 믿기지 않을 만큼 비현실적이었다.

모공 하나하나, 속눈썹 한 올 한 올, 살아 움직이는 듯한 신비로운 자신의 모습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눈물이 계속 흘렀다.

주름이 있던 자리는 흔적도 없었고 풍성한 머릿결 또한 근래 만져본 적 없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원래도 까만 눈동자가 매력이었지만 오늘따라 더욱 까맣고 깊은 눈동자를 빠져들 것처럼 한참을 바라보는데 눈동자가 순간 '꿈틀'거렸다.

'쿵'

화들짝 놀라 뒤로 어진 선화가 충격으로 잠시 주춤하다가 다시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 속 자신이 타인의 모습처럼 낯설게 보였다. 


'정신 차리자'

100번도 넘게 본듯한 시상식 영상을 다시 플레이했다. 

수많은 댓글들 사이로 선화의 미모를 찬양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그녀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그러나 잠시 후 공포로 일그러졌다.

영상 속 자신의 머리 위에 잠시 나타났다 화면밖으로 사라진 그것은 분명히 드론이었다. 목구멍에서 비명을 가까스로 눌러 삼켰다.

태블릿을 던져 놓고 베란다로 달려갔다.  창문을 통해 주변을 살펴보았다.


어두워진 바깥은 고요했고 달빛만 빛나고 있었다.

'내가 예민한 건가. 그냥 드론일 뿐이잖아'

베란다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갔다. 시원한 가을바람이 목을 스치자 다시금 기분이 좋아졌다. 눈을 감고 바람을 온몸으로 느끼며 변된 자신을 만끽했다.

"제2의 인생을 이제부터 시작하는 거야"

다시 눈을 떴을 때 선화는 피가 거꾸로 솟는 걸 느꼈다. 그녀의 눈앞에는 징그러울 정도로 까만 드론이 붉은빛을 반짝이며 날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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