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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차피 죽을 텐데 도대체 왜 살아야 하는가'
허무주의에 빠졌던 때가 있었다.
그 끝은 깊은 우울과
자살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우문이기에 현답을 찾을 수 없었다.
우연히 세상에 던져진 현존재는
실존이 본질에 앞서므로,
애초에 '왜' 라는 물음이
성립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즉, 살아야 할 이유 따위는 없었다.
그러나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는 명제로부터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이유가 직접적으로 도출되지는 않는다.
살아야 할 이유와 마찬가지로
굳이 죽어야 할 이유도
딱히 없기 때문이다.
옳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어차피 죽을 텐데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누군가는 행복에서,
누군가는 의미에서,
누군가는 사랑에서,
누군가는 가치에서,
정답을 찾는다.
그리고 실존주의자는
'아이러니'에서 해답을 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