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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Oct 31. 2019

여행지에서 보는 모든 것이 내 하루에 있었다.

모든 것이 여행이었던 하루에 대한 일기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고 건물 2층에 위치한 한 카페의 바 테이블에 앉아 창 밖을 바라보며 모나카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그 창밖은 인사동 거리였고 평일 점심시간대에도 많은 외국인들이 다양한 모습으로 여행을 즐기고 있었다.

"여기를 왜 오지?"

"여긴 살 것도 없고 볼 것도 없는데."

"아마 제가 대만에서 야시장을 돌아다닐 때, 현지인들이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요? 저 사람들은 이런 걸 왜 먹지?"

인사동에 대한 관심이 예전 같지 않다고 하지만 여전히 외국인들은 종이 지도를 들고서 인사동 메인 거리를 오갔고 그 모습이 꽤 신기했다. 나에게는 직장 근처인 이곳이 저분들에게는 여행지란 말이야?




퇴근 후, 가벼운 운동화와 운동복 차림, 화장을 지우고 무색 립글로스를 바르고 집을 다시 나섰다. 집 근처 공원을 두 바퀴 산책하기 위함이었다. 편한 발과 헐렁한 차림이 마음에 드는 저녁을 걷다가 문득 올려다본 단풍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저저번 주만 해도 이제 물들기 시작한다 싶었는데. 그새 많이 물들었네'

그 '저저번 주'에 나는 단풍을 보러 여행을 갔었다. 그제야 초록색이 붉게 물들기 시작한 단풍 시즌의 초입이었다. 절정은 다음에 보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그 절정을 집 앞 산책 중에 보고 있었다. 비록 해가 지고 난 뒤라 본래 가지고 있는 색을 보지는 못했지만 가로등, 아파트에서 나오는 불빛에 의해 나무들이 붉다는 것을 충분히 인지할 수 있었다. 그 순간부터 내가 서 있는 곳이 여행지 같았다.

공원을 향해 걷는 내내 나는 여행지를 걷듯이 가볍고 기쁘게 가을의 절정을 맞이한 나무들 밑을 걸었다.




그러고 보면 집 밖을 나서면 모든 것이 여행지였다.

설악산을 가지 않아도 가을의 절정을 볼 수 있는 알록달록 나무들과 동네 뒷산.

야시장보다 진짜 맛집일 타율이 높은 핫도그 가게와 그 근처에 있는 하얀 김이 폴폴 나는 만두&찐빵 가게.

출근길에는 눈부신 햇살을, 퇴근길에는 눈부신 야경을 함께 보여주는 한강.

각자의 모습으로 각자의 무언가를 하며 시간을 채우는 사람들까지.

내가 외국인인 입장에서 타지에서 이런 풍경들을 봤다면 모든 것이 여행이었을 것이다. 열심히 셔터를 눌렀을 것이고 그림자 하나라도 눈에 담으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내가 살고 있고 매일 보는 것이라는 단 두 가지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모르고 있을 뿐. 여행지에서 보는 모든 것이 내 하루에 있었다.

'아마 '일상을 여행처럼-'이라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처음 생겨난 것이 아닐까.'

평소에는 반만 공감되었던 말이 처음으로 100% 공감된 하루였다.


내일 출근하면 주변을 여행자의 눈으로 바라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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