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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 Mar 22. 2023

삼치솥밥을 위하여, 스타우브 라이스꼬꼬떼

예전에는 그릇 욕심이 생기면 결혼할 때가 된거라는 말이 있었다. 요즘 세상에는 ‘결혼할 때’보다는 ‘내 살림을 꾸릴 때’라는 말이 더 적절하겠지만. 내 그릇 욕심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그 계기가 뭐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결혼과 상관이 있었던 듯도 없었던 듯도 한데 이제 와서 그걸 명쾌하게 되짚는 것 크게 의미 있는 행동 같지 않다.

 

그릇 욕심이라 해도 다 같은 게 아니다. 그릇 욕심에도 여러 단계가 있다. 사람마다 차이는 있지만 대개는 컵으로 시작해서 디저트용 그릇과 커트러리, 식기로 발전한다. 최종 종착지는 냄비와 팬이라고 알고 있다. 냄비나 팬 같은 경우는 일단 하나하나의 크기가 크기 때문에 여기까지 욕망이 닿으면 어떤 집이든 주방이 순식간에 가득찬다. 다행히 내 욕심은 아직까지는 거기까지 닿지는 않았고 티타임에 주로 쓰이는 것들 그 수준에 머물러있다. 그릇에 있어 나는 여전히 초급자, 소꿉놀이 수준이다.

 

그 와중에 내가 욕심 부려서 구입한 냄비가 딱 하나 있다. 정확히 분류하자면 냄비가 아니라 무쇠솥이다. 그것도 무려 밥을 짓는데 특화된 무쇠솥인 스타우브의 라이스 꼬꼬떼다. 나는 건강상의 이유로 평소에도 “밥” 위주의 식사를 하지는 못하는 사람이라 이게 왠 낭비인가 싶기도 한데 그럼에도 이 솥을 들인 이유는 명확하다. 솥밥그 중에서도 삼치 솥밥을 해먹기 위해서다.

 

한 번은 이게 삼치라고? 상어 아냐?” 하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의 커다란 삼치 한 마리를 특송으로 선물 받았. 아무리 구워먹어도 줄어들지를 않아 결국은 토막을 쳐서 냉동실에 방치해두고 있었는데 불현듯 아예 밥에 넣어버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하게됐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삼치 솥밥이라는 메뉴가 있어 집에 있던 뚝배기를 활용, 그대로 따라해봤는데 장엄하게 실패하고 말았다. 물조절이 문제인지 불조절이 문제인지 뚝배기의 문제인지 전부 다 문제였는지 모르겠지만 말 그대로 망해버렸다. 냉동실을 떡하니 차지한 상어를 째려보면서 “‘뚝배기밥’이 아니라 ‘솥밥’이니까 역시 솥이 있어야겠어!”를 외치며 그 즉시 진지한 자세로 솥 검색에 임했다. 세상에는 돌솥도 있고 스테인레스솥도 있고 무쇠솥도 있고.. 모양만 무쇠솥이고 실제로는 전기로 작동되는 애도 있. 그 제각각의 경우에 또 브랜드도 다양하고 사이즈도 다양하고 색상도 다양하다. 문자 그대로 솥들의 홍수. 그 와중에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있는 스타우브의 라이스꼬꼬떼였다. 사이즈 2~3인용의 작은 사이즈, 색상은 회색으로 골랐다. 검색을 통해서, 그리고 내가 아닌 남의 경험에 미루어 알 수 있는 것들은 대개 얄팍한 수준의 내용들이라 알면 알수록 더 헷갈린다. 내 촉을 믿고 최대한 빠르게 결정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이롭다. 촉이라는 것은 나의 지난 인생을 거치며 꼬박꼬박 성실하게 축적해온 나만의 빅데이터에 기반하는 것이라 그 누구의 의견보다 정확할 때가 많다특히 왜 슬픈 예감은 틀린 적이 없나’ 하는 유행가 가사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특유의 쎄한 느낌은 대개 잘 들어 맞는다의외지만 정말 그렇다나는 이번에도 내 촉을 믿어보기로 했다.

 

깜찍한 비주얼을 한 엄청난 무게의 무쇠솥을 전달 받자마자 기름으로 가볍게 시즈닝을 한 후 바로 재도전을 해봤다. 솥에 불린 쌀과 다진 표고 버섯을 넣고 물 양을 맞춘 뒤 뚜껑을 열고 된장과 맛술로 만든 소스를 가볍게 바른 삼치를 올려 센 불로 끓인다. 보글보글 하기 시작하면 뚜껑을 닫고 5분 더 끓인 후 약불로 줄여 10분. 뚜껑이 달그락거리다 못해 들썩거렸던 뚝배기와 달리 이쪽은 무척 고요해서 내내 불안하기 짝이 없었는데 의외로 한 번에 성공했다. 일반 냄비에 비해 본체의 높이가 높아 밥 물이 끓어 넘치지 않는데다가 끔찍할 정도로 무거운 뚜껑이 위에서 꾹 누르고 버텨주니 왠지 든든하다. 버튼만 누르면 알아서 다 해주는 전기밥솥과 달리 무쇠솥은 중간중간 불조절을 해줘야 해 쉬이 그 앞을 떠나기가 어렵지만 손이 더 가는 만큼 ‘정말로 내가 한 밥’이라는 느낌이 든다.

 

버튼 하나로 쉬이 되는 밥을 먹는 날도, 혹은 그것조차 힘들 때는 전자레인지로 뚝딱 돌리는 즉석밥을 먹는 날도 모두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밥 자체에 힘을 주는 것도 좋다. 냉동실을 차지한 상어가 사라지는 그날까지, 라이스꼬꼬떼야 힘을 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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