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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향 May 12. 2023

 [1]맘모스로 시작해 샤모니로 이어지는 원정 훈련

- '신성한 훈련'이라 쓰고,  '놀이'라 읽는다.

집에서 제아무리 빨리 달려간다해도 6시간 이내에는  도착할 수 없는, 그야말로  가까이 하기엔 너무먼 당신,  그곳은 겨울왕국 맘모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겨울 스포츠를 즐기는이라면 누구라 할것 없이, 눈쌓이는 겨울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웹사이트를 들여다보고 웹캠을 눈이 빠지게 지켜보면서 마음이 설레이곤 한다. 오랜 가뭄끝에 끝도 없이 쏟아지는 함박눈 덕분에 지난 시즌 도합 10번이상 스키장을 다녀온 J는  추수감사절이 시작도 되기 전부터 스키장 오픈이 언제인지 몇개 리프트가 오픈되었는지 노래를 부른다.  

시즌티켓을 이미 산터라, 100불이 훌쩍 넘은 리프트 티켓값을 걱정할일도, 오가는 길에 든든한 기사가 있는터라 졸음운전을 걱정할일도 없으시다.  심지어는 훌륭한 요리사 내지는 향단이를 두신터라 먹거리 걱정조차 필요없는 이분,  맘모스를 향해 달려갈 날자를 꼽느라 몹시 바쁘신듯 했다.

그에 비해, 몇년전 발목을 다친 이후로 여전히 스키타기를 주저하는 겁쟁이 그리고 훌쩍 약해진 체력탓에  6시간 운전에 웬지 부담감이 늘어나기만한 나는, J의  이런저런 흥에겨운 유혹에 별다른 흥미를 느끼지는 못하는게 실상이다.

함께 하는 자전거 운동버디님이 일이 있어 집에서 봉사하여야 하니 자전거 출정이 어렵단 슬픈 소식이,  J에게는 오히려 자전거 운동대신 맘모스를 갈수 있다는 일종의 명분,  그래서 결국 기쁜 소식이 되고 만다는것인가?. 급조된 스키트립을 위해 몇년째 애지중지 키우고있는 수제자 멤버를 한명 추가하여 토요일 오후 출발했다. 얼마나 오매불망 기다리시던 시즌 첫출정인지, 서비스 콜도 웬만한것 다 밀쳐둔채 점심시간 지나 오후 2시 30분, 회사원인 내게는 그랴말로  듣보잡한  출발시각인셈.

그나마 오랜만에 교외로 빠져나가니 잔뜩 힘들어갔던 어깨도 풀리는듯 하고, 혼미했던 정신줄도 멤버들과의 수다로  회복이 되는 느낌이었다. 중간에 햄버거 하나씩으로 늦은 점심을 먹고 열심히 달려 비숍에 도착한 시간이 8시. 어둠이 깔린 비숍은 벌써 연말분위기가 한층 올라있고, 거리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더한 가게들이 눈에띈다. 영하의 날씨인데도 거리엔 인파가 북적이니 더욱더 연말분위기가 살아나는듯하였다.

맘모스를 향해 가는 길-  가로등 하나 없는 어둠은 깊지만, 두렵지 않은 익숙한 395 번 하이웨이


맘모스에 8시30에 도착해 서둘러 숙박업소에 check in을 하고 바리바리 싸가지고온 설렁탕과 보쌈을 풀어 출출한 배를 달래며 캬! 하고 소주 한잔씩을 입안에 털어넣는다. 바로 이맛이 어디론가 떠나는 우리를 늘 설레게 하고, 몸으로는 힘들고 고단한 일이지만,  운전을 해서 밖으로 나가고 어디든 쏘다니게 하는 것일게다. 올시즌내내 건강히 안전하게 눈을 즐기고 열심히 운동할 수 있게해달라고 서로가 잔을 들어 건배 그리고 또 건배.. !!

일찍 도착해 저녁까지 먹고 났는데도 아직도 이른시각. 집에서도 생전 보지않던 TV를 켜고 영화까지 한편 보고 잠자리에 들었다.

이른새벽에 눈을 떠보니 밖이 온통 눈덮인 세상.
밤부터 내리기 시작한 싸락눈이 바람에 흣날리고 있다.

날이 밝아오면서 조금씩 강도가 높아져가는 바람세기에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조금 시간을 갖고 기다리기로 했다. 눈이 오는것도 날씨가 혹한인것도 괜찮지만 리프트는 바람이 많이 불면 아예 운행을 하지 않기에 화씨 10도가 간신히 넘는 이 날씨에 주차장에서 떨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느긋하게 호텔에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TV를 보며 설렁대는동안 눈이 그친 오전 10:30분경.  바람도 함께 잠잠해지는듯했다. 
차를 몰고 Main Lodge로 향하는 길. 햇빛은 났지만 도로는 완전히 꽁꽁 얼어붙었고 눈발도 여전히 날리기에 속도를 내기 어려웠다. 거북이 수준으로 4마일여 달려 Mill's Cafe 에 일행을 내려주고 호텔에 돌아와 짐을 정리하고 몸을 씻고 드라마 한편을 때리려는 찰나 때르릉 전화가 울렸다.

" 데리러 와야지 않되겠어. 바람이 너무 불어서..."
"????????...........넹"


오마이갓.. 아침에 내려드릴때 불던 바람은 명함도 못내밀만했다. 어찌나 바람이 부는지 차문을 열수가 없을 정도. 하늘에는 시커멓게 구름이 몰려와있고, 어느 누구나 할것없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만치 바라클라바와 헬멧 그리고 고글까지 뒤집어쓴터라 내 동행들을 찾는데도 한참 애를 먹었다.

자켓도 신발도,  대충 눈을 털지도 못하고 차에 넣은뒤 서둘러 동네로 내려왔다. 햇빛나고 눈이 녹아 처벅대는 동네의 한 커피샵에 앉아 언몸을 녹이는동안 살펴보니,  얼마나 추위에 개떨듯 했었는지 J와 일행의 얼굴들은  에스키모인들같이 온통 핑크색.

첫번 출정을 고작 2시간만에 접어야하는 일행의 얼굴에는 섭섭함이 가득했지만 그래도 이런 날씨에 2시간여를 즐길수 있었슴을 감사하기로 하고, 돌아오는길 비숍에서 따뜻한 중국 요리를 몇가지 시켜 올시즌 안전한 출정을 위해 서로를 응원했다.  

고작, 올시즌 첫 출정을 단 2시간 했을뿐인데, 올해에 덴버의 아스펜이나 유타의 파크시티로 스키 원정을 한번 가고 내년쯤에는 캐나다의 휘슬러를 원정가고, 그리고 은퇴하고나면 샤모니로 스키를 타러 가시겠다는 이분의 원대한 꿈을 식사를 하면서 경청했다.

일부는 눈에서 보드를 타고 스키를 타고 하는 것을 아니, 대부분의 아웃도어 액티버티를 '논다'라고 표현한다.'논다' 라는 표현에 질겁하시는 이분 J. 사실,  말 그대로 논다라는 것은 놀이이다.  그러나 자칫 가벼이 치부될 수 있는 놀이에도 엄연히 노는법이 필요하고 노는 수준이 있는터. 노는 사람의 품격과 마음 자세에 따라 놀이의 수준 또한 클래스 있어지거나 아니면 동네 뒷골목에서 껌씹는 수준이 되거나,  더 낮아지면 면도칼 씹는  수준마저 되거나 할것있음 자명한 일. 
그러려면,  함께 노는 사람도 가려야하고, 놀러 갈 대상지도 잘 골라야 하고, 놀이의 종류또한 엄격히 가려야 할일.  

나름 소시적부터 노는것에는 내나름의 내공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분같이 몇십년후 은퇴후 70-80  나이먹어서까지 놀 궁리 또는 꿍꿍이를 이토록 대대적으로 거하게 하시는 분앞에서는 나는 완전 깨갱이 수준일 뿐이다.

그나저나 아직도 부실한 발목 아픈 손목아지 상태때문에 클루코사민이나 퓌시오일을 먹어야 하는 걱정이나 하는 나는 이거,  제대로 놀고 있기나 하는 것일까나. . 

쫓아하다가 가랑이나 찢어지지 않으면 다행일것이다, 아마도. ㅎㅎㅎ.

" 담주 놀러가는건 몇시에 떠나나요?" - 낭만캘리가 묻는다.

" 놀러??...무슨 그런 허접한 대사여?...논다니....엄연한 운동이고 신성한 훈련의 시간이지...!!"-한결같은 J의 대답이다.

"..........아, 네, 담주 훈련은 몇시에 떠날 예정이신가요?"

ㅎㅎㅎ


바람이 제대로 부는 맘모스 스키장, Mills Cafe, Mammoth Lake, CA



스키고수도 훈련병도 바람앞에선 똑같이 겁쟁이 쫄보가 될수 밖에 없다.. Mammoth Lake, 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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