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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향 May 12. 2023

[2] 뭐니 뭐니 해도 , 따뜻한 국물.

- 어묵탕,   겨울 스포츠에서 빼놓을 수 없는 그 영원한 메뉴

오늘도 집에서 출발해 꼬박 6시간을 달린다. 맘 같아서야 주말이 시작되는 금요일 아침부터 일찌감치 떠나면 좋으련만, 목구멍 포도청이 내 맘보다 앞서 먼저 불호령을 한다. 오후 3-4시, 어느 정도 업무가 정리되고 난 뒤 퇴근을 하면 이미 시간을 맞추어 놓은 따끈한 밥이 준비되어 있다.


밥냄새 가득한 집안에 들어서자마자 밥솥을 열어 용기에 담은 후,  물주전자의 스위치를 켜고, 커피를 올린다. 그 사이, 냉장고에 준비해 놓은 음식을 꺼내 가방 가득히 담고 운전하면서 먹을 간식거리는 따로 담아 준비한다. 커피가 끓으려면 20분쯤 걸리는데 그 사이 끓어오른 물로 non-caffein 티백을 우려 텀블러에 담아 준비한다.

그리고는 안방으로 가서 화장을 지우고 세안을 한 뒤 옷을 갈아입고 어깨에 메는 백을 두르고 부엌으로 나오면 커피가 끓고 있다.

마지막으로 끓어오른 커피를 텀블러에 담아 준비를 끝내면 현관문 밖으로 부릉소리를 내며 도착한 J가 문을 열고 들어온다.

일 년 12개월 중  빠르면 11월에 시작에 늦으면 5월까지 주말의 루틴이다. 전날 모두 준비하고 출근을 하지만, 당일 준비해야 하는 이 모든 것을 하는 데는 집에 도착한 지 1시간 남짓 걸린다.


물건들을 실어내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순식간에 짐을 싣고 떠나 1-2시간은 퇴근길로 장사진을 이룬 프리웨이를 빠져나가야 하지만, 일주일 만에 만난 J와 나는 밀린 이야기를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곤 한다. 하루 종일 일하느라 시간이 없는 내가 퇴근길 마켓의 매대에서 구매한 김밥은 이 시간 동안 중요한 한 끼 음식이 된다. 준비해 온 커피와 카페인에 민감한 날 위해 준비한 카모마일티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그에게 먹여주는 김밥으로 우리의 주말 출정은 시작된다.

어둠이 깃들어오는 하이웨이를 달린다.. Van Nuys,  California  USA

일 년 12개월 중 4-5개월은 스키를 타야 인생의 정도를 걷는다라고 생각하는 J는 스키를 빼면 같이 할 이야기가 거의 없다. 추수감사절이 다가오고 싸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스키장에 내릴 첫눈을 님 기다리듯 눈이 빠지게 기다리는 J. 운이 좋으면 추수감사절 연휴부터 스키를 탈 수 있는데, 30년 만의 폭설이 내린 이번 시즌은 11월 첫 주부터 시작해 지금 4월 셋째 주까지 한두 주를 제외하고 빠짐없이 주말 출정을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올 시즌은 아마도 7월까지 스키가 가능하다고 하니, 아직도 1-2달은 스키트립을 갈 것이 분명한 상황.

올 시즌은 폭설, 폭설, 폭설이다.  Mammoth Lake, CA

처음 몇 해는 나도 함께 스키를 탔었다. 하지만, 저질 체력인 내가 J와 함께 스키를 타면, 최상급 레벨인 이분은 나를 위해 매번 추위에 달달 떨면서 내가 도착하기를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거듭되다 보니, 나도 힘들고 J도 늘 심심한 스키트립이 되고 말곤 했었다. 그러기를 몇 해 하고 나니 나 자신이 J에게 짐만 되는 것 같고, 나 또한 일주일 내내 회사에서 시달리다가 스키를 탄답시고 트립을 다녀오면 에너지가 고갈되어 한주가 한 달같이 힘들게 느껴졌었다. 


함께 하이킹이나 하면 되지, 뭐 죽을 일 있다고 따라다닐 거냐.. 열심히 스키 타는 J를 위해 캠퍼밴 안에서 따스한 국물거리를 준비하고 마실티를 준비하거나, 한주동안의 피로를 영화감상이나 독서를 하면서 스트레스 할 수 있으면 오히려 내게 득이 되려니라는 생각으로  나는 스키를 접었다.


대신 스키를 타고 내려오면 먹을 수 있도록 따스한 국물요리를 준비하고 떨어진 기운을 보충하라고 한차를 끓여 준비하곤 한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6시간 정도 걸리는 장거리 운전은 늘 나의 몫이다. 돌아가신 친정아버지를 닮아 운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J를 위해 해주는 최고의 서비스인 셈이다.

얼었던 몸이 훈훈해지면 저녁식사 전에 시~원한 맥주 한잔으로 몸의 긴장을 풀어준다.

오늘도 따끈한 어묵국을 끓여 그가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놓는다. 두껍게 썰은 무 몇 조각과 함께 시판하는 어묵을 적당히 썰어 끓이는데 기본 2시간 정도는 끓여야 뽀얀 국물이 우러나오고,  너덜너덜할 정도로 물러진 어묵이 먹을만하게 익는다. 작은 냄비에 계란을 삶아 반으로 썰어 준비하고 한쪽에는 파를 썰어 준비해 놓는다.  오후 2시가 넘어 점심도 거른 채 내려온 J에게 어묵국물 한 그릇을 내어놓으면 게눈 감추듯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곤 한다. 그리고 한차를 연거푸 마시면 곱았던 손도 녹고 얼었던 몸도 다시 온기를 찾게 된다.

한참 끓는 중인 어묵국..ㅎㅎ

어릴 적 스케이트장에서 얼음을 지치다 보면, 구수한 냄새와 함께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어묵국에서 뿜어져 나오는 김. 몸의 밸런스 잡는 것이 어려워 스케이트는 포기했지만, 그 유혹적인 따스한 맛과 공기는 잊을 수 없다. 

미국생활 삼십 년이 넘은 세월이지만, 타국에 나가면 애국자가 되는 것이라기 보단, 향토음식 전도사가 되는가 보다.


오지 캠핑장에서 두부김치를 만들어 먹고, 살이 바짝 오르는 2-3월이면 주꾸미 볶음을 하고, 한겨울엔 뭐니 뭐니 해도 어묵탕이 제격이다. 그것도 온몸이 얼어붙을만치 추운 스키장에서 먹는 어묵탕은, 생각만 해도 온몸이 따스해진다.


한국음식 만세라도 부를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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