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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향 Jun 07. 2023

[5] 뭐든,  나는..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게 좋아.

스키 시즌이 끝나고 나니 자전거 시즌이 돌아왔다. 난 여전히 짐을 챙긴다

상치를 씻고, 삼겹살을 먹기 좋게 소분해서 지퍼백에 눌러 담는다. 아침에 끓여 마실 커피는 적당한 굵기로 그라인딩 하여 밀폐 용기에 담고, 국거리에 쓰일 파와 마늘도 냄새가 밖으로 나오지 않는 nalgene통에 꽁꽁 싸매어 챙긴다. 다녀온 후에 깨끗이 씻어 말려 정리해 놓은 코펠은 기본이고, 맥주 한잔이라도 마실 때 폼생 폼사 또는 감성이 묻어나야 한다는 내 지론은 결국 내 발등 찍기 인 셈이다.


누가 시키는 것도 아니고 가끔 빼먹고 왔다고 혼내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니건만, 이쑤시개 하나라도 빠트리면 절대로 안된다는 병적인 준비성은 울 엄마덕이다, 아니 돌아가신 울 아버지와 남동생 표현에 의하면, 박 씨 집안 여자들의 불필요한 극성이라고 한다. 


그래, 수시로 내 발등을 찍으며 나들이 후엔  몸살을 앓고, 그 극성덕에 보부상 닮은 짐보따리로 픽업하러 온 J를 여전히 깜놀하게 하는 나이지만, 체력이 남아나는 한  고쳐지지 않을 성격인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바이다.

늘 함께 떠나는 J와의 아웃도어에서의 시간들. 체력이 못 따라가고 시간에 쫓겨서 허덕대는 스케줄이라도 일단 집밖으로 나서면 기운이 펄펄 나는 나는 명령이 떨어지기만 하면 순식간에 짐을 챙기는 게 일상이다. 발등이 남아나지 않기는 하다만.ㅎㅎㅎ.

캠핑의 꽃은 해질녘..랜턴을 밝히기 시작하는 시간

11월 추수감사절이 시작되기 전부터 쏟아지기 시작했던 눈폭풍덕에 다른 해에 비해 한 달이나 일찍 시작한 스키 시즌이 5월 마지막 주로 드디어 막을 내렸다. 올해도 만약 11월부터 스키 시즌이 시작된다면, 햇빛 쨍쨍한 캘리포니아에서 일 년의 반을 스키 시즌에 올인하게 되는 셈. 그런데 스키 시즌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자전거 시즌이 돌아왔다.


자전거 시즌의 시작은  내게는 외로움과의 싸움이 시작되는 알람이 된다. 한 주일에 화, 목 이틀을 저녁에 자전거를 탄 후, 일요일 오전에 자전거를 타는 J는, 매일 회사 생활에 시달리다 저녁 7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내가 따라잡을 수 없는 황새의 삶이다.


자영업으로 시간 조절이 가능한 이들에게나 가능한 저녁 5~6시경의 자전거 라이드. 거기에 열정과 체력이라면 뒤지지 않는 J의 조건은 나의 외로움의 원천.

남자들 모임으로 J가 자전거를 타는 탓에 달리 내가 어울릴 수 있는 지인이나 함께 운동할 수 있는 누군가가 없는 나는, 저녁 식사 후 늦은 시각 밤 9시가 넘어서 동네를 한 시간 걷는 것으로 마음을 달랠 뿐이다. 


어쩌다  오버나잇이 포함된 캠핑을 동반한 자전거 라이딩이 있어야 그나마  동행의 기회가 된다. 비록 여자이지만, 공식 군수 지원 사령관의 자격으로 참석이 가능해지는 것이다.ㅎㅎ.

그렇지만 그런 기회는 어쩌다 한번이지, 대부분은 남자들끼리 자전거를 몰고 사방으로 돌아치며 운동을 하고 함께 식사를 하고 차를 마시는 모임이 되곤 한다.

395번 선상에서 만나는 Eastern Sierra

" 나도 자전거 같이 탈까??"

" 그러려면 여자 모임을 따로 만들어야겠지?"

" 자전거 말고 뭐 나랑 같이 하는 하이킹이나 그런 건 이젠 별로야?..."

"..... 내가, 허리가 예전 같지 않잖아, 암벽 하다 떨어진 이후로 허리가 안 좋아진 게 분명해... 그리고 난, 위로 올라가는 것보다 요즘엔 앞으로 쭉 쭉 나가는 운동이 더 흥미가 있어졌어."

"........................ 알겠어..."


몇 주간 자전거 라이딩에 몰두하는 J탓에 주둥이가 반쯤 나와 있던 내게 J가 말했다.

" 이번 주말에, 동네에서 San Diego까지 라이딩을 당일치기로 할고야.!!

너는 내가 떠나고 난다음에 오후 늦게 우리 캠퍼밴을 몰고 샌디에이고에서 우리 팀을 픽업하면 될 거고."


" ??????????????    ...!!! "


이번에는, 같이 가는 게 아니라, 차를 몰로 따라와서 남정네들을 픽업하라는 지령.

" 그럼 나한테는 무슨 이득이나 리워드가 있지??"

"... 음.... 지금 롱비치 항이 바빠서 보물실은 배가 못 들어오고 있자녀...그 배만 들어오면 넌 죽었어. 보물에 깔리고 말 테니까.!!! ㅋㅋㅋㅋ"


백만 번도 더 들었던 그 유치한 농담을 또다시 하며 J는 키득거렸다.

지난 십 수년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배알이 빠져나갔거나 발등이 없어졌거나 한 게 분명하다. 

보석은 필요 없다...  야생에서 만난 이런 들꽃이 훨씬 더 아름답다.  Big Pine, CA

'나도 앞으로든, 위로든.... 어디든 같이 나가고 싶단 말이야.'라고 속으로 되뇌며 나는 짐을 챙기고 있다.

그가 좋아하는 맛난 커피가 떨어졌네... 쯧쯧, 주말 전에 가게에 들러야겠군.

짐을 챙기러 창고로 향하다 발밑을 내려다본다. 

' 헛!!!!   내 발등이 엄쏘...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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