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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향 Jul 22. 2023

[8]함께하는 운동만이 답일까?..

함께 하지 않아도 그리움만으로 행복해지기

겨울엔 스키, 눈이 녹는 여름엔 자전거..

어떻게든 몸을 움직이고 열심히 운동을 해야, 나이 들고 힘없어질 때를 대비할 수 있다는 J.

백번 천 번 동감하는 바이지만, 말이 쉽지 그게 어디 지키기가 쉬우냐 말이다.


화요일, 목요일 저녁과 일요일 아침, 일주일에 정기 3회의 자전거 운동모임을 갖는 J. 하지만 그에게 일주일에 세 번은 적은 횟수. 정기 모임이 있지 않은 요일에도 J는 일을 끝내고 들어오면 특별한  저녁 스케줄이 없는 한 자전거를 싣고 20여분 거리의 트레일로 향한다.

쉬지 않고 꼬박 달려야 1시간이 걸리는 코스를, 어떤 때는 심지어 하루에 두 번을 타기도 혹은 10일을 하루도 쉬지 않고 타기도 한다.

열심히 운동을 하는 게 나쁜 것은 아니나, 보통 사람들이라면 운동도 하고 느긋하게 TV도 보고, 하다 못해 저녁 먹고 산책을 하기도 하는데, 속도가 나지 않고 땀이 흐르지 않는 움직임에 만족하지 못하는 운동은 J에겐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는가 보다.


그에 비해 나는 그와 함께 멋진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고 싶고, 영화관을 가거나,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부른다.  나도 물론, 하이킹을 좋아하고 자연을 벗 삼아 캠핑을 하는 등, 아웃 도어 활동을 누구보다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에게 여름은 모든 일정이 자전거 스케쥴에 맞추어지는 게 다반사이다.  일 년에 딱 한번 내 생일에 내가 고르고 내가 예약한 레스토랑에서 저녁을 먹는 일이 유일하게 내 취향을 인정해주고 감성 코드를 맞춰 주는 날.


한두달전, 샌디에이고 트립을 끝내고 나서 자신감이 붙은 J는 7월 마지막주에 Solvang에서부터 70여마일 거리의 Oxnard로의 트립이 예정되어 있다. 9월에는 Lake Tahoe, 그리고 10월에는 유타주의 Moab으로의 바이크 트립 일정이 또 기다리고 있다. 몇 번의 bike trip이 끝나고 나면 날이 선선해지고 눈발이 날리는 11월이 머지않게 되고 곧바로 스키 시즌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하느냐고?... 7시가 넘어야 귀가하는 집에서 종종걸음으로 저녁을 지어먹고 나면 밤 9시 정도 되고, 그때부터 나는 '달밤의 체조'를 하곤 한다. 함께 사는 막내아들이 유일한 나의 산책 버디. 그나마 체형이 작아 오래 걷기 어려운 작은 아들은 30분 정도 걸은 후에 집으로 들어가고 나는 그때부터 이어폰을 낀 채 30분 정도를 더 걷게 된다.


그렇게 해야 하루에 간신히 12000보에서 13000보 정도를 걷게 되지만, 그나마의 운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건강을 지키는 게 어렵게 될 것이란 믿음에 거르지 않고 걸으려 노력하는 편이다.

땀에 흠뻑 젖는 운동은 아니지만, 한 시간을 빠르게 걷고 나서 집에 돌아와 설거지를 하고 내일 도시락을 준비하다 보면, 등뒤로 땀이 배어 나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간신히 혈당 조절도 하고 체중도 유지하는 편임에도 J와 함께 운동하지 않아 갖게 되는 아쉬움은 여전히 남아 있다.

그렇다고 남자들끼리의 모임에 내가 낑낑 대고 자전거를 끌고 나갈 수도 없는 입장이니, 그는 그대로 나는 나대로 각자 건강 챙기기를 하고 있는 셈이다.


날 좋은 날을 잡아 야생화 만발한 호젓한 산길이나 너덜한 바윗길 산행을 함께 하면서 함께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눈다. 가끔 만나는 나무밑 그늘에 털썩 앉아 땀으로 흠뻑 젖은 재킷을 벗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한줄기 바람에 몸을 내맡긴 채, 챙겨간 Peanut butter & Jam 샌드위치를 나눠 먹다 보면 자잘한 행복감이 충만해진다. 한여름 샌드위치와  과즙이 넘치는 복숭아라도 함께 먹는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는 무아지경의 순간이다.

J와 오래전 열심히 산행을 하던 순간들을 늘 이러했다. 며칠을 씻지도 못해 눈곱이 더덕더덕 낀 채로 히히덕거리며 걷는 것은 다반사였다. 앞서 줄을 걸며 선등을 하는 J의 엉덩이에서 깜놀할 만큼의 커다란 굉음과 함께 스컹크 닮은 독가스가 그대로 내 얼굴에 뿜어지는 참사가 일어나기도 했었다. 가끔은 깎아지른 절벽 위에서 온몸에 소름이 돋아날 큼 무서움에 떨기도 했었고, 누군가에 대한 뒷담을 하느라 수십 미터 공중 하강이 하나도 무섭지 않기도 했었다.


그 모든 순간에 J가 있었고, 그날들의 기억은 하나도 바래지지 않았다.

하지만, 언제 부터인가 허리 통증이 심해진 J가 걷는 대신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고, 사실상 나와 J의 산행은 일 년에 몇 번 정도 아주 가끔 하게 되는 이벤트가 되었다. 


다들 문을 걸어 잠그고 거실의 불을 끄기 시작하는 늦은 밤에 동네를 걷다 보면 호젓하고 조용하기는 하지만 외롭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실상 그 시간은 내게 아주 유용한 시간이다. 하루 종일 재택으로 혼자 집에서 지내는 막내아들과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면서 하루 동안 일어났던 일을 서로 얘기하는 시간이 되곤 한다. 그리고 아들이 집으로 들어가고 난 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걷는 동안, 나는 오롯이 혼자만의 조용한 시간을 만끽할 수 있다.


사랑하는 사람, 아끼는 사람과 매 순간을 함께 하는 즐거움은 당연히 행복을 가져오고 관계의 돈독함을 가져오는 결과를 선물 받게 된다. 하지만, 매일의 일상이 고되고 정신없는 하루의 스케줄로 채워져 있는 상황에서는 깨어 있는  어느 순간동안, 나만의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 또한 매우 의미 있는 순간임을 나는 알고 있다.


그래서, 혼자 걷는 밤길이 쓸쓸하기는 하나 머리는 맑아지고, 혼자 걸어 외롭기는 하나 J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슴은 따스하게 된다.

내가 살고 있는 동네에 저녁이면 해무가 밀려오듯, 혼자 걷는 밤중엔 J를 향한 그리움으로 꽉찬 가슴이 서늘해진다. 하지만, 내 삶의 밸런스를 잘 지켜내고 건강을 유지하는것이  그와 오래 오래 잘지내는 방법이라는것을 나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열심히 그리고 건강해지자고 오늘도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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