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향 Jul 25. 2023

예전엔 이랬다는..

아는 사람은 안다는 그 텐트바닥의 맛

미국에선, 잘 꾸며진 공원시설 내에 기울지도 않고 반듯한(텐트 치고 자는 사람에게, 이거 매우 중요하다.) 나무데크 위에 텐트를 치는 한국과는 실정이 많이 다르다. 아무리 시설 좋은 캠핑장이라 하더라도 텐트를 치는 곳 대부분 사이트는 흙바닥이다. 가끔 RV들이 쓸 수 있도록 시멘트로 된 paved site라는 곳이 있기는 하지만, 거의 모든 텐트 사이트는 흙바닥이라고 보면 된다.

운 좋으면 바닥이 평평하고 모래가 많아 잠잘 때 문제가 없을 수도 있지만, 가끔 급조된 캠핑을 가게 되거나 하면 좋고 나쁜 자리를 가릴 형편이 못된다. 그럴 때면, 밤새 자면서 몸을 위로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되거나, 튀어나온 돌멩이가 등짝을 끊임없이 괴롭히는 수난을 당하기가 일쑤다.

Paved site인 RV용 캠핑장에는 웃돈을 내면 쓸 수 있는 전기가 있어, 한겨울에는 난로를 켜기도 하고 전기장판을 가지고 가서 틀기도 하지만, 이른바 고수님들 또는 자연인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그저 흙바닥에 foot print라고 부르는 방수 나일론 포대기를 깔고 그 위에 텐트를 치게 된다. 그리고 그 위에 뽀글이라고 부르는 매트를 갈거나 밤새 뿌직 거리는 소리를 내는 에어매트를 깔기도 한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의 캠핑은  일반적인 가족들일 경우엔 대부분 5월 말에서 9월 말 정도, 휴가철에 이루어지는 것이 일상이다. 하지만, 워낙 국립공원을 포함해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캘리포니아에는 캠핑 마니아들도 많고, 전문 바윗꾼들을 포함해 아웃도어에 진심인 이들이 많다. 그리고 그들에게 캠핑 시즌은 따로 정해져 있는 게 없다. 일 년 사시사철, 텐트칠 공간만 주어지고 불법으로 딱지를 떼는 것만 아니라면, 어디든 텐트하나와 침낭하나로 하룻밤을 지내기엔 충분해지는 것이다.

나와 J도 그런 부류 중의 하나였다. 남가주 지역에서 북한산 같은 Mt. Baldy도,  캘리포니아에서 가장 높은 San Gorgonio도, 미대륙 가장 높은 봉우리 Mt. Whitney를 오를 때에도, 심지어 시애틀에 있는 Mt. Rainer를 오를 적에도 텐트와 침낭 하나에 몸을 맡긴 채, 영하 몇십도 추위가 무섭지는 않았으니까.


물론 텐트가 4계절용이어야 하고 침낭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전문 바윗꾼이 J를 따라다니기 위해 필요한 아이템 중에서  영하 30도를 견딜 수 있는 오리털 침낭이 단연코 1위 필수 항목이었다.


텐트를 치고 잘 때 가장 좋은 점은, 바닥에서 올라오는 흙냄새를 맡으며 잠을 잘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오래 사용해서 편리하게 사용했던 텐트에서는,  한겨울 추위를 피해 텐트 안에서 구워 먹었던  삼겹살냄새나 텐트를 보관하려고 넣어둔 집안 창고의 나무바닥에서 밴 냄새 그리고 이전에  비에 젖었던 내음들이 모두 합친 것들과 흙내음이 조합된 꿉꿉한 독특한 냄새가 나곤 했다. 그 곰팡이 닮은 냄새는 비가 오는 날에는 유독 강한 내음을 뿜어낸다. 스산한 가을의 낙엽이 뒹구는 캠핑장에서 쌓인 낙엽을 휘리릭 정리하고 텐트를 치고 차는 날에는, 밤새 나뭇잎이 뿜어내는 향에 취할 수 있다. 한겨울이 끝나고 봄이 오는 계절엔, 텐트 한 겹 바깥으로부터 따스한 기운과 함께 새로이 솟아오르는 가느다란 나무순 냄새도 맡을 수 있다.

그래서, 한 겹 텐트는 세상과 얇은 천으로 사생활을 보호하는 장막이 되고, 꿀잠을 잘 수 있게 하는 보호막도 되는 한편, 텐트 밖의 세상과 소통하고 연결하기 쉬운 작고 앙증맞은 담장 정도랄까?

그 텐트 안에서 흙내음을 맡으며 J와 나는 모든 캠핑장의 불 꺼진 까만  하늘 위에 보석처럼 나타났다 사라지는 별들을 수도 없이 세곤 했었다. 아이들같이, 일요일 저녁이면 돌아가서 월요일 지옥같이 힘든 일상으로 돌아갈 일이 없는 사람들처럼, 철없이 늘어지게 늦잠을 자기도 했고, 묵언의 약속된 게으름으로 일관하기도 했었다.

가끔 고된 산행에서 돌아오는 길, 하산길이 너무 힘들기에, 깊은 산속 어느 캠핑장 남들이 쳐놓은 텐트구석 자리를 비집고 매트만 깔고 난장을 하였었는데, 다음날 아침에 눈을 뜨니 쓰레기통 옆이더라는.. 그래도 마냥 즐거웁고 매 순간 신이 났었다. 새로운 길을 가고, 힘들지만 트레일을 걷다 만나는 신비로운 자연을 구경할 기회가 주어진 것만으로도 감격했었다. 그 길을 앞장서는 J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시간들이었다.

그래서 동행이 있는 여행은, 그리고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버디가 있는 길은, 두렵지 않을 수 있고 무조건 열린 마음이 될 수 있는 듯하다. 마음의 눈이 열려야 아름다운 것도 보이고, 이해하려는 가슴의 문이 열려야 사랑도 할 수 있을 듯.

나는, 마음의 눈도 가슴의 문도... 열렸던가??.. J에게 물어봐야겠다 어찌 생각하는지 후훗!


이전 09화 [8]함께하는 운동만이 답일까?..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