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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미 May 20. 2022

슬기로운 돌봄 생활 3 : 휴식의 기술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누리자!


요 며칠 엄마의 목소리가 수상하다. 전화벨이 울려도 한참 있다 받는다. 다급한 호흡으로 말을 하고 목소리를 낮춰 대화를 이어가며 쫓기듯 전화를 끊으려 한다. 집에 혼자 있다면 나올 수 없는 분위기를 풍긴다. 둘 중 하나다. 누군가 집에 있거나, 엄마가 집에 없거나!


돈을 쓰는 소비 패턴도 미묘하게 달라졌다. 엄마는 검소함과 알뜰함이 평생 몸에 배어 있어 밥 외에 간식을 사 먹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런데 냉장고를 열었더니 과일과 자양강장제, 지나가다 먹고 싶어서 샀다는 빵이 들어있다. 아무리 봐도 신변에 변화가 생긴 것이 분명하다.


결정적인 증거는 엄마가 자식들에게 건네는 질문에 있다. 얼마 전 이사한 동생에게 계속 필요한 것이 없냐고 묻는다. 이미 인테리어 비용에 엄마로서는 거액의 축하금을 보탠 후다. 내가 선풍기와 이불이 낡아 바꿔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가 사줄까?”란다.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아무래도 안 되겠다.  탐정 놀이를 시작할 때가 왔다.


엄마에 대한 수사는 언제나처럼 싱겁게 끝이 났다. 내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엄마, 요즘 좀 이상한데? 무슨 일 있죠?”라고 물으며 절대 화를 내지 않을 것처럼 인자한 태도를 취했더니 “사실은 그게”라며 술술 자백을 했다.  


엄마는 나 몰래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매일 하루 한 시간씩, 노인복지회관에 가서 설거지를 하고 온다고 했다. 설거지가 끝나면 선 자리에서 바로 만원의 시간 수당을 주는데, 그 돈을 쓰지 않고 지폐 그대로 모았더니 60만 원이 넘었단다. 대충 짐작은 했지만 그 기간이 이미 두 달을 훌쩍 넘었다는 사실에 놀라긴 했다. 어느덧 우리 모녀의 관계도 단계적 일상 회복의 끝자락에 와있다는 말인가! 적어도 지난 두 달 간은 서로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지 않고 각자 자립적인 생활을 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하루 한 시간 정도의 아르바이트라면 괜찮을지 몰랐다. 그냥 계속하라고 할까 하다 마음을 다잡았다. 엄마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엄마는 게으름은 수치이고, 부지런함이 미덕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남의 돈을 받는 일일수록 더 책임감을 갖고 성실히 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근면, 자조, 협동의 정신을 강조하던 ‘새마을 운동’을 온몸으로 실천한 세대가 아닌가. 처음에는 60분의 노동 시간을 약속했지만 결국 30분 먼저 출근하고 30분 후에 퇴근하며 두 시간은 넘게 일을 하게 되었다. 담당자가 설거지만 해주면 된다고 말했지만 위생과 청결이 중요한 엄마는 설거지 후 선반 정리, 주방 청소까지 마쳐야 속이 시원했다고 한다. 평생 장사를 해온 솜씨이니 손이 워낙 빨라 어느덧 제일 가성비 좋은 주방 보조가 되어 있었다.


엄마가 흥이 올라 일에 몰입할 때 찬물을 끼얹어 냉정을 찾게 하는 것이 내가 할 일 중 하나다. 일 잘한다는 칭찬에 취해 정작 본인은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두 달의 육체노동으로 이미 무릎과 허리가 삐거덕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선풍기도 없는 주방에서 일을 하니 피부 곳곳에 땀띠도 솟아올랐다. 스스로 돈을 버는 기쁨에 들떠있는 엄마에게는 미안하지만 일을 그만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엄마도 알다시피, 체력이 예전만큼 받쳐주지 못하고 관절은 한번 손상되면 돌이키기 어렵다며 설득했다. 원래 일주일만 도와달라던 부탁을 거절 못해 시작한 일인데, 더 하면 몸이 상할 것 같다며 엄마도 수긍했다. 평화롭게 엄마의 아르바이트를 끝맺음했다.


엄마랑 함께 살던 결혼 전에는 종종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일주일 중 하루도 쉬지 않고 일을 하는 엄마를 보며 아침잠 많고 휴일이면 씻기도 싫어하는 내가 친딸이 맞나 싶었다. 왜 엄마의 부지런한 성품을 닮지 못해 ‘아침형 인간’은 꿈꿀 수도 없는 것인지, 침대에 뒹굴며 죄의식을 가졌다. 그러다 19세기 프랑스 사회주의 운동가인 폴 라파르그가 쓴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읽었다. 폴 라파르그는 프롤레타리아는 자연의 본능으로 돌아가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선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루에 세 시간만 일하고 나머지 낮과 밤 시간은 한가로움과 축제를 위해 남겨두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래, 내가 이상하고 나태한 사람이 아니었어! 적게 일하고 많이 벌기를 원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가 아닌 자연의 본능이라고 말하고 있지 않은가. 그 책을 읽었을 때 엄마에게도 ’ 게으를 수 있는 권리’를 알려줬어야 했는데, 타이밍을 놓쳐 버렸다.


노인이 된 엄마는 여전히 쉬는 법을 모른다. 노동을 사랑하고 일에 대한 열정을 지금까지 품고 산다. 일 하지 않은 시간들이 어색하고, 휴식기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니 “심심하다”는 말을 자주 한다. 노동을 통해 사회에 쓰임새가 있음을 확인해야 비로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한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제 와서 엄마에게 일 못지않게 휴식도 중요하다고 말해도 엄마는 “가만히 있으면 뭐하니?”라며 집안일이라도 찾아 하려 한다.   


엄마의 노년기는 이제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엄마에게 노동하지 않는 지금이 권태롭고 지루한 시간이 아니라, 가만히 멈추어 자신을 보살피고 배려할 기회라고 이제는 말해주어야겠다. 일하는 법을 몸으로 터득하고 마음에 길들였듯이, 잘 쉬는 법을 익힐 수 있도록 도우려 한다. 첫 출근을 하던 나에게 엄마는 성실하게 직장 생활을 하고 타인과 어울려 일하는 법을 가르쳐줬다. 이제는  내가 엄마에게 자기를 돌보는 기술들을 하나씩 알려줘야 한다. 고요함 속에서 명상에 잠기기, 몸과 마음을 풀어주는 목욕 즐기기, 좋아하는 음악에 흠뻑 빠져보기 등등. 그중 최고급 기술인 ‘아무것도 하지 않기’라는 처방을 엄마가 받아들이는 날이 온다면 모녀가 함께 진정한 휴식의 맛을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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