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프로젝트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상상을 했다.
최후 심판의 날에 위대한 정복자, 법률가, 정치가들이 보답을 받으려고 신 앞에 왔을 때, 그들 사이에서 책을 옆구리에 끼고 들어오는 나를 보시며 신은 사도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 사람에게는 보답이 필요 없어. 저에게 줄 것은 아무것도 없지. 저 사람은 책 읽는 걸 좋아하니까.”
책 읽는 즐거움이 그 어떤 것보다 크다는 말이다. 그 즐거움을 나도 누리고 싶다. 정년은 아직 멀었지만 정년퇴직을 한다면 미룬 책을 실컷 보겠다. 직장 출근할 때와 마찬가지로 9시 전에 집을 나서서 도서관에 갔다가 퇴근 무렵 집으로 돌아가련다.
직장 퇴직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산을 즐겨 찾는다. 산을 오르며 무료를 달래고 건강을 챙긴다. 앉은뱅이처럼 집에 틀어박혀 있는 것보다는 얼마나 건전한가! 산은 늘 가까이에 있고, 매일 찾아도 마다하지 않는다. 산엔 풀과 나무가 자라기에 늘 새롭고 또한 신선하다.
산은 무성한 나무숲이고 도서관은 다양한 지식숲이다. 도서관에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이야기가 층층이 쌓여있고 켜켜이 쟁여있다. 소크라테스와 뉴턴, 링컨과 테레사 수녀도 오며 가며 만날 수 있다. 책시렁 사이를 거니는 것은 오솔길 산책하듯 가쁜한 걸음걸이다.
도서관의 책을 다 보겠다는 도전은 에베레스트를 오르겠다는 것과 같은 무모함이다. 산을 좋아하면 히말라야는 못 가도 설봉산은 오를 수 있다. 하지만 산을 좋아하지 않으면 설봉호수 아래뜸에 살아도 등산을 내키지 않는다. 마실 삼아 집을 나설 때 설봉산이 코앞이어도 발길은 먼발치의 관고시장으로 향할 것이다.
맘이 없으면 몸도 따르지 않는 법. 맘을 못 돌리면 습관도 못 바꾼다. 마음을 이끌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옆구리 가볍게 찔러 살살 꼬드겨야 한다. 가볍게 산자락을 거닐거나 벚꽃 흐드러질 때 꽃놀이하며 산을 소개해야 한다. 부담 없이 편하게 산을 만나야 한다. 만나보니 괜찮다면 또 만날 것이다. 정 싫다면야 자주 만나도 어쩔 수 없지. 하지만 그 만남은 기억상자 한 편에 낙서되어 불현듯 떠오를 수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에게 산을 권하려거든 이런저런 핑계로라도 산을 만나게 해야 한다.
나는 책읽기를 좋아하지만 남도 나처럼 다 책읽기를 좋아하는 건 아니다. 멋진 풍경을 보거나 맛있는 음식을 대하면 그 좋은 느낌을 주변 사람과 나누고 싶은 생각이 인다. 책읽기를 권하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까? 앞서 산과 친해지게 하는 방법이 여럿 있듯이, 책과 가깝게 하는 방법도 서넛 있다. 나 나름의 방법들을 소개한다.
친척 아이들에게 이따금 책을 사줬다. 내가 읽은 책 중에 좋았던 책을 사주곤 했다. 그들도 나처럼 공감하길 바라며. 그러나 내 공감 수용체와 그들의 공감 수용체가 꼭 같은 것만은 아니기에 그들은 감염되지 않고 무덤덤했다. 내가 사 준 책이 책상 위에서 펼쳐지지 못하고 책장 칸에 꽂혀만 있는 것을 볼 때, 아쉽고 서운한 건 사실이다. 그리하여 조카들에게 제안했다. 너희가 보고 싶은 책이 있거든 내게 연락해라. 뭐든지 다 사 줄게 라고. 마음 한편으론 너도나도 마구 요구하면 감당할 수 있을까나 생각했는데 괜한 염려였다. 연락이 거의 없다. 내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는 맘가짐일지도 모르지만, 그건 아닌 것 같다. 정말 책에 관심이 없는 게 맞다.
이리저리 궁리하다가 구상한 게 ‘독서 알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책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 돈을 주는 제도다. 대학생들이 용돈을 보태기 위해 공부하기에도 빠듯한 시간에 시급 7,000원의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이 안타까웠다. 청년의 한 시간은 만원도 인정되지 못했다. 그 시간에 공부하거나 책 보길 바랐다.
독서 알바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아이들에게는 시간당 만원 상당을 보상했다. 매달 내가 선정한 책을 읽은 후 독후감을 내면 5만 원을 지급했다. 난 책 한 권 읽고 감상문 쓰는 데에 5시간이 걸린다고 봤다. 시간당 만원의 알바비인 셈이다. 열 명 이내의 아이들을 데리고 2017년 1월부터 2019년 12월까지 만 삼 년을 진행했다.
처음부터 아이들이 내 기대 수준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한두 번 빼먹기도 하고 도중에 그만둔 아이들도 있다. 하지만 달이 가고 해가 가며 하나둘 아이들이 책맛을 알아갔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새는 줄 모른다고, 걔 중에는 도서관을 제 집 드나들듯 하는 얘도 생겼다. 그 전에는 소 닭 보듯 도서관에 관심 없던 아이였는데.
책읽기 마중물은 이제 멈추었다. 성과 없는 물 붓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헛펌프질이 되지 않음이 감사하다. 그들이 스스로 땅속 물을 끌어올리는 수준에 이름을, 기꺼운 맘으로 흐뭇이 바라본다. 그 아이들을 통해 내 젊은 시절을 보상받았으니 나로서는 흡족할 따름이다. 타임머신이 없는 한 나는 젊은이로 돌아갈 수 없다. 반면에 다른 젊은이를 내 아바타 삼아 젊은 시절의 내 바람을 이룬다. 내 젊은이는 책을 보지 못했지만, 또 다른 내 젊은이는 책을 보고 있다. 서진, 수민, 예은, 혜빈, 나연, 예준, 하은, 미주, 린은 내 젊은 아바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