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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골뜨기 Jul 19. 2020

거울과 겨울

세밑 성찰

우린 매일 거울 앞에서 자기 몸을 살핀다. 얼굴을 화장하고 머리를 매만지고 옷차림을 치장한다. 몸씨를 살피느라 적잖은 시간을 들이지만 맘씨를 다지기 위해선 얼마나 정성을 쏟는가?

나이 들을수록 세월은 가속도 붙어 주위을 살필 여유 없이 앞만 보고 내달리게 된다. 중요한 일보다 급한 일을 우선하다보니 중심추 잃은 오뚝이처럼 이리저리 흔들리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연말은 잠시 숨을 고를 수 있어 좋다. 정신없이 달려온 한 해의 끄트머리에서 세월의 거울에 자신의 삶을 되돌아본다. 세초에 가진 대부분의 다짐이 비록 물거품이 되었을지라도 그것을 다시 추스르는 것은 막간의 다짐인 것이다.


돌이켜보면 아쉽고 안타까운 일들이 참 많다. 잊고 싶은 기억과 보기 싫은 모습들도 있지만 그것들도 내 삶의 나이테에 그려진 올해의 띠인 것이다. 풋풋한 봄도 지나고 쨍쨍 여름도 지나고 청청한 가을도 지나 이제 밋밋한 겨울이 되었다. 거울 앞에서 몸을 살피듯 겨울 앞에서 생을 살핀다. 


거울 앞에 선 내 몸이 솔직하듯 겨울 앞에서 그 해가 고스란히 비춰진다. 내 삶에 진솔하자. 비록 만족스런 삶이 아니더라도 최선을 다한 자신을 다독이며 박수 치자. 그리고 내년에 다시 열심히 살자고 용기를 북돋아주자. 아침마다 세수(洗手) 하듯 날마다 세심(洗心)하자고 다짐한다.


어수선한 세밑, 들뜬 분위기 속에서 물에 뜬 부레옥잠처럼 저도 모르게 휩쓸리기 쉬운 동짓달이다. 책 읽으며 교양 쌓고, 운동하며 건강 챙기고, 사람들과 교재하며 사회관계 유지하자. 학생이 예습과 복습 하듯, 좋은 인생을 위해 지난날을 돌이켜보고 앞날을 계획한다. 맑은 영혼으로 내 삶을 살피는 알찬 세밑과 세초 되자. 




거울과 겨울


거울 앞에 섰다.

거울 앞에 발가벗고 섰다.

수많은 생채기와 멍든 흔적들을 비쳐보며

그 상처에 얽힌 이야기를 떠올린다.


옷을 입는다.

보드라운 속옷과 어울림 좋은 겉옷 입고

거울 앞에서 면도 하고 머리 빗고

맵시 살피며 여러 표정 지어본다.


겨울 앞에 섰다.

세초에 줄기차게 달려오다가 이제 세말에 이르렀다.

많은 이야기를 품은 한해를 되돌아보며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에 울고 웃는다.


세월을 입는다.

풋풋함과 화려한 봄을 입고 

왕성함과 이글거리는 여름을 입고

원숙함과 다양한 가을을 입고

이제 눈부시게 새하얀 겨울을 입는다.


이 겨울에 올해의 많은 인연들을 떠올리며

책상 앞에 앉아 수첩을 정리한다.

수첩 속에 박혀있는 사람과 연락도 하고

뭔가를 끼적거리기도 한다.

그리고 다가올 내년을 설렘과 희망을 가지고 채비를 한다.


겨울은 거울 같은 것,

거울 앞에서 몸 살피듯 겨울 앞에서 해 돌이킨다.

겨울에 거울 앞에서 거울 속의 겨울 사내 바라본다.

그 모양은 어떠한가?


그림 박경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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