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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넥스트 커리어 코치 Oct 20. 2022

미안해, 아빠

2015년


할머니 장례식장이 있는 역에 도착했다. 개찰구를 빠져나오는 순간 집에 올 때마다 나를 기다리던 아빠 생각이 났다. 딸이 보고 싶어 기차역까지 데리러 나온 아빠 마음도 모르고, 아빠가 나를 크게 부를 때면, 숨고 싶었다. 어린애도 아닌데 나를 굳이 데리러 나온 아빠의 마음이 고맙지 않았다.


그때 아빠 마음은 어땠을까? 몇 달간 보지 못했던 딸을 데리러 오는 마음이 얼마나 즐거웠을까? 그런 마음도 몰라주고 철이 없던 딸은 고마워할 줄도, 반가워할 줄도 몰랐다. 한 번쯤은


"아빠, 보고 싶었어~"


라고 부르며 달려가 따뜻하게 안아 주었더라면 아빠가 정말 좋아했을 텐데 말이다. 아빠를 생각하니 미안해서 눈이 빨갛게 익어갔다.

20년간 우울한 아버지를 보며 자라온 나였기에, 나는 절대 우울증 따위 모르고 살 거라고 굳게 믿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는 사이, 이미 우울의 늪에 깊이 빠져 있었다. 우울에서 벗어나기 위해 명상을 했다. 명상을 통해 내 모습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면서 가장 괴로웠던 건 20년 이상 우울하게 살다 간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아프고 불쌍한 인간이야


언제부터인가 상처받기 싫어 만나는 모든 이들을 향해 고슴도치처럼 있는 힘껏 가시를 세우며 살았다. 내가 세우고 있던 가시에 가족을 비롯해 주변의 많은 이들이 찔리고 아파하고 있는 줄 몰랐다. 스스로를 가엾게 여길 때마다 가시는 늘어났다. 그리고 그 가시들은 나를 가장 병들게 만들었다.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기 시작하자 가시는 거짓말처럼 사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마음이 조금씩 편해졌다. 하지만 가시들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다. 아버지와 비슷한 상황과 감정들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그때 아빠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나는 왜 아무 도움도 되지 못했을까. 아빠에 대한 미운 마음을 접고,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갔더라면..’


비로소 아빠를 이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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