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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19. 2022

자꾸 떠나는 이유 (상)

애초에 오래 살 집이 아니었기 때문

이사라는 건 너무너무 큰 일이다. 시간과 에너지가 끝을 모르고 투입된다. 이사 오는 날을 5월 말로 덜컥 계약해버리고 그다음에 이사 나가는 날 조율을 하려니까 현 집주인 미래 집주인 은행까지 다 난리가 났다. 셋 다 말발이 세니까 나는 이쪽저쪽 스케줄에 기분에 맞춰주느라 시간과 에너지를 끝을 모르고 쓴다. 이사라는 게 원래 이런 거지, 그런 거지?


30년 동안 18번 이사를 다녔다는 오빠의 등본. 엄마는 오빠가 결혼할 때쯤에 그 등본을 떼어 보고는 기가 차서 슬펐다고 했는데, 그 이후로 10년이 지났으니 그 사이에 아마 대여섯 번은 더 갔을 것이다. 맙소사, 그런데 나 역시. 지금 꼽아보니 나도 서른셋에 18번 정도는 채운 것 같다.


남친도 집도 내가 자꾸 떠나는 이유는 뭘까? 그땐 뭐가 맘에 들어서 함께하기로 해놓고, 이젠  떠나기로 마음먹었나?


6년 전에, 내가 이거 전세 사기당한 거구나 깨닫고 나서 하루는 밤을 새워서 내 지난날을 쭉 톺아봤다. 내 인생에서 나 스스로 내렸던 중요한 결정들. 그때 무슨 일이 있었고, 어떤 두 가지 갈림길이 있었고, 나는 어느 쪽을 선택했는지 가로로 일직선을 쭉 그어 시간순으로 썼다. 그 이유까지 쭉 파헤쳐보고는 오랫동안 속이 쓰렸다. 어거지로 회사에 다니며 결국엔 불법 전전대까지 온 것이 다 ‘혹시 잘못될까 봐’하는 ‘불안’이 자초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날 밤에 온 것 같다. 6년 동안 일어난 일이 많아서 일직선이 훨씬 길어질 것 같은데 이번 일도 그 선 위에 점 하나로 찍었다.


오은영 선생님이 ‘성장’에 대해서 ‘점점 나아지는 방향, 같은 실수는 안 하는 방향으로 결정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나 역시 누구보다 실패를 자주 복기하고 다 잘될 거야 주문을 외며 살아왔는데 왜 계속 떠나는 결정을 하는 걸까?



[1] 애초에 오래 살 집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1. 부모님 집

엄마와 아빠는 함께 오래 살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 그리고 나도 엄마나 아빠와 한집에서 잘 지낼 수 있는 사람이 못된다. 왜냐면 아빠는 즉흥적인 사람이고 엄마는 통제하려는 사람이고 난 반항아로 자랐기 때문이다. 우리 다 문제가 많다고 생각했는데, 이제와 보니 내가 부모와 부딪혔던 것은 당연한 순리였던 것 같다. 사람이 경제적 심리적으로 성장해서 나만의 세상을 키워나가면 부모의 울타리가 좁게 느껴질 것이고 그것은 이소(둥지를 떠남)할 때가 되었다는 뜻이다.


이 나이가 되면 보편적으로 자식이 취직이나 결혼을 이유로 부모에게서 떨어져 나와 따로 산다. 이게 보편적인 일인 줄 진작에 알았다면 서로 상처를 덜 주고받았을 텐데. ‘엄마는 나를 괴롭혀’ ‘난 뭐가 문제지’하며 자책을 너무 많이 했다. 그리고 내게 트라우마가 있어서 괴로운 거란 사실을 알았더라면 엄마에게서 도망치는 게 아니라 차근차근 준비해서 위에서 말한 보편적이고 평화로운 방법으로 나왔을 것이다. 그러나 집을 나오고 1년 후, 2년 후에야 각각 알았다. 그래, 어차피 그때는 알 수 있는 게 아니었던 거야.



2. 불법전대 집

그 집을 보러 갔을 때 원 세입자는 다들 이렇게 알음알음 산다고 했지만 그 말은 들켜서 쫓겨날 확률도 50%라는 말이었다. 원 세입자가 비협조적이면 들통날 확률이 높아지지. 황지홍처럼. 그가 연락을 잘 안 받을 때 그때 바로 실주소지로 쫓아가 담판을 냈어야 했다. 협조를 하던가 보증금을 돌려주도록. 그리고 결국엔 쫓겨났을 때, 강제철거라는 말에 겁먹지 말고 바로 법률 사무소에 물어봤으면 집에 내 물건을 놔두고 와야 나중에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도 알았을 텐데. 그땐 덜컥 겁을 먹어서 불법전대 고발을 안 당하려면 일단 나가야 되는 줄 알았다. 나가버리면 내 전세금을 순순히 돌려주지 않을 거라는 걸 예상하지 못했다.


겁먹고 도망치고 싶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 내가 지킬 것이 무엇인지 차분하게 생각해서 정리해봐야 한다. 이건 금전적인 문제뿐 아니라 이제는 내 커리어도 해당된다. 서른이 넘어서 새로운 전공을 공부하려니 마음이 쪼들린다. 내 친구들은 옛날부터 “너의 꿈을 응원할게!” “꿈이 너를 힘들게 할 때는 잠시 쉬어가도 좋아”하며 나를 응원해준다. 그런데 더 이상 그림작가의 삶을 꿈이라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꿈이라고 하면 저 하늘 닿지 않는 곳에 있는 것 같잖아. 이미 이 세계에 발을 들였어. 내 커리어는 시작된 것이다. 매일 출근해서 일하던 때처럼, 지금도 단순하게 매일 일찍 일어나서 현실에서 매일 쓰고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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