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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14. 2022

응봉동, 반지하라는데 2층, 6000, 투룸

가족이 사는 집


1. 반지하인데 2층이라고?

네이버 부동산에서 내 예산에 맞는 금액의 집을 찾으면 일단 별표를 다 눌러서 즐겨찾기 리스트를 만들어놓는다. 그중에 ‘전세대출 불가’ 쓰여있는 건 골라내고, ‘가능’이 쓰여있거나 안 쓰여 있는 매물의 부동산에 전화해서 한번 더 확인한다. 한 집은 이미 나갔다고 해서 즐겨찾기를 해제했는데 며칠 뒤 그 부동산에서 문자가 왔다. B동에 6000만 원 투룸이 나왔는데 등기상 반지하이지만 밖에서는 2층이라고. 도배장판 싱크대까지 새로 했으니 와서 보라고. 경사로에 있는 집은 이쪽에선 1층이 저쪽에선 반지하라 실질적으로는 계단 몇 개 올라가는 1.5층이지만 반지하로 등록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1층이 아니라 2층이라고? 혹시 네이버 부동산 매물에 있을까 싶어서 해당 동의 전세 반지하 6000을 선택했더니 부동산이 말하는 집이 나왔다.


로드뷰를 보니까 왜 2층이 반지하로 되어있는지 알겠다. 이 집은 언덕 가장 위에 있는데, 2층에 아주 가파른 도로가 붙어있어서 반지하가 되어버린 것이다. 높은 언덕을 올라가는 집이지만 차도 맞은편에 마을버스가 서고 이 동네를 크게 보면 꼬불꼬불 언덕길의 초입이라 골목길 들어갈 필요가 없다. 이 집을 기점으로 언덕 내리막이 시작되어 내리막길 끝에서야 아파트 단지가 시작되기 때문에 2층에서는 한강까지도 내려다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전철역에서 마을버스 타고 집 앞까지 10분이면 가는데 너무 괜찮지 않을까? 가격은 왜 이렇게 싸지?


보러 가겠다고 전화를 하고 저녁 6시로 약속을 잡았다. 집을 보러 다니면 하루가 너무 빨리 가버린다. 4월은 그래도 해가 길어져 퇴근길에도 아직 환해서 저녁의 동네를 볼 겸 종일 할 일을 하고 퇴근길 전철을 타고 왕십리역에 내려 마을버스를 탔다.  


1. 반지하인데 2층이라고..

그런데 이번 집도 역시나 눈에 보이는 게 다가 아니었지. 매물 사진을 직접 찍지 않고 로드뷰로 대충 외관만 찍어 올린 집은 로드뷰 안에서 줌 인을 하고 또 해서 숨겨진 문을 찾아내야 한다. 너무 깊은 골목길은 로드뷰 마티즈가 안 들어가 주기 때문에 최대한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로드뷰에서 ‘어? 괜찮은데?’ 했던, 가릴 것 없는 정면의 창문은 옆집이었고 이번 집은 그 옆에서 골목을 바라보는 집이었다. 내부는 10평 남짓의 평범한 구조. 한쪽엔 방, 한쪽엔 부엌과 화장실. 방 2개가 나란히 앞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겨울에 언덕에 부는 바람이 매섭겠지만, 창문에 새로 설치한 3 중창 샷시로 좀 막을 수 있겠다. 그러나 창은 도로에서 살짝 등을 돌려서 창문 밖을 내다봐도 탁 트인 밖은 안 보였다. 옆집은 드넓은 한강 조망을 통째로 들여왔는데 난 훔쳐보지도 못한다니!


이 건물은 한 층에 앞 집 하나와 그 뒤에 양옆으로 하나씩 총 3개, 집이 4층까지 있다. 어떻게 저쩧게 현관 계단길을 집마다 따로 올린 모양이 마치 태풍 돌아가는 아이콘처럼 생겼다. 아침엔 서울 각지로 일하러 떠났던 사람들이 밤이 되면 서울 중앙의 이 동네로 모여서 각자의 집으로 한 명 한 명 올라가는 모양을 생각을 하니까 꼭 그 아이콘 같았다.    


부동산 아저씨와 집을 보고 나오는데 맞은편 빌라에 외국인 배달기사가 음식을 들고 들어가는 게 보였다. “사장님, 여기 혹시 외국인 많이 사나요?” “네, 좀 살죠” 여기 응봉동과 옆 금호동은 성동구에서 가장 싼 동네라고 했다. 그래서 이렇게 투룸에 6000만 원 집이 나온 거라면서 집 앞에 마을버스도 서고 위치도 괜찮으니 생각해 보라며 헤어졌다. 길에는 벌써 가로등 빛이 어른어른한다. 금세 저녁이 되었네. 나는 매일 밤에 들어올 텐데 이 동네의 저녁은 어떨까? 기왕 시간이 이렇게 된 거 동네를 한 바퀴 돌아보았다.


네이버 부동산을 보니까 근방에 투룸 전세가 더 싼 가격으로 있길래 대체 어떤 집일까 하고 계단을 올라가 보았다. 한 사람 다닐 좁은 계단길을 몇 발짝 걷고 꺾고 또 몇 발짝 걷고 꺾어서 꺾인 틈마다 빌라를 올렸다. 조금씩 각도를 틀어서 길 하나를 공유하는 빌라들. 꼬불꼬불한 이 길이 리본처럼 동 하나를 잇고 있다. 네이버에는 이 동네가 서울의 마지막 달동네라고 나온다. 길을 헷갈리는 사이 금세 까무룩 밤이 되어서 더 이상 찾아 올라가지 않고 돌아 나왔다.


집이 이렇게 빈틈없이 꽉 차 있는데도 동네는 조용하고 어둡다. 건물 1층에 편의점이나 치킨집처럼 밤늦게까지 문 여는 가게가 없어서 듬성듬성 세워진 가로등에 의지해야 했다. 가로등 아래 조용한 길을 걷는데 어느 빌라 반지하 반절짜리 창문에서 밝은 전등 빛과 함께 모녀 셋이 깔깔대고 웃는 소리가 쏟아져 나온다.


맞다. 집은 가족이 사는 거지. 나야 혼자서 이렇게 혼자 살 집을 보러 다니지만 어떤 사람들은 가족이 모여 살 집을 찾아다닐 것이다. 여자 혼자 산다고 나는 1순위로 뺀 반지하지만 이 가족은 이 동네에 무언가 마음에 들어서 반지하라도 이사를 온 거겠지. 그리고 저녁밥을 지으며 이렇게 즐겁게 웃는다. 그 앞을 지나는 내 옷에 몇 초간 빛이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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