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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마디 Sep 25. 2023

불면증

나의 원룸 2

회기동 좁은 원룸에 이사와 틈새마다 짐을 욱여넣고는 수면장애를 심하게 앓았다. 한 달 꼬박 잠을 못 잤다. 잠 못 자는 괴로움을 불면증 대신 나는 수면장애라는 병명으로 부르고 싶다. 의지 하나만으로는 이겨낼 수 없는 지독한 병이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종일 다른 데에 자진반납해서 혹사시킨 다음에 새벽 한 두시쯤 녹초가 된 몸을 자리에 눕힌다. 핸드폰을 저 멀리 둔 채 눈을 감고 머릿속을 하얀 도화지로 자꾸자꾸 밀어내지만.. 밀려난 생각은 까만 방 안을 가득 채운다. 숨 쉬는 생물이라고는 나뿐인 깜깜한 방에서 어떤 날은 숨을 들이쉴 때마다 진짜 나 혼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다가, 어떤 날은 내 숨을 떠난 이산화탄소에 질식되어 생사를 헤맨다. 무색무취의 불안들. 중독이 되는 줄도 모르고 밤새 들이마신다.


뇌에 산소가 부족해질 때쯤, 창문이 밝아오는 게 느껴진다. 새벽 5시쯤 검은색에서 짙은 남색으로 바뀔 때가 가장 극적이다. 그때는 눈을 감고도 바로 알아차린다. 누적된 패배감에 욕을 한 마디 내지르고 진이 빠져 잠이 든다. 그렇게 만신창이가 되어서라도 잠에 빠지면 다행이다. 9-10시쯤 완전히 환해졌을 때 눈이 부셔서 깬다. 그러나 질끈 감은 눈으로 밤새 사투해 기진맥진한 몸과 정신은 일어나지 못한다. 모로 누워서 몇 시간 동안 멍하니 유튜브만 보다가 속이 쓰릴 때 몸을 일으킨다. 오전이 훌쩍 흘러가버린다.


잠이란 게 뭘까. 현실의 모든 것을 일단은 내일로 미루고 그래 그래. 오늘의 일이 정리가 됐든 안 됐든 일단은 눈을 감자. 지금쯤 분절을 한 번 해주어야 오늘과 내일이 나뉘고, 한편으로 아침에 눈 뜨면 ‘오늘도 이어지는구나’ 하는 건데. 시간이 잠으로 끊어지지 않으면 끝없는 오늘을 살게 된다. 이해되지 않던 일도 깜깜한 무의식의 영역에서 여러 번 끓다 식다 해야 소화가 되는데 그 상처를 깡으로만 이해하려니 비슷한 상처를 찾아 과거로 과거로 간다. 며칠 전에 받은 상처가 지난날이 되지 않고 여전히 오늘의 일처럼 생생하다. 그리고 10년 전 20년 전 상처까지 오늘과 연결되어 영원히 내일은 없을 것만 같다.


일생동안 부모가 준 기억이 소화되지 않고 뒤섞여 쌓여 있다가 서른이 넘어서 역류했다. 사랑을 못 받았다는 의구심이 평생 애정결핍을 감추고 살아가야 할 거라는 불안에 밤새 불을 댕겼고 부모가 나를 미워한 순간을 샅샅이 찾아다니느라 잠이 올 틈이 없었다. 아닌데, 사람들은 나더러 사랑 많은 사람이라고 했는데. 그 사랑도 다 엄마에게 배운 거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니야’ 반사적으로 고개를 저었다. 어떻게든 나는 아이적에 사랑을 못 받은 사람이 되어야지만 친구들은 벌써 엄마가 되어있는 나이에 아이적 외로움을 설명할 수 있으니까 나는 꼭 원인을 찾아야 했다. 뒤섞인 마음을 헤쳐서 분류하는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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