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마디 Sep 15. 2023

서랍

나의 원룸 3

*원망(“내가 너한테 뭘 그렇게 잘못했니”)


누군가를 마음 놓고 원망만 할 수 있다면 나를 좌절시킨 그가 망하기만을 바랄 것이다. 어떤 기회로 그가 손해 보고 상처 입었을 때 나는 내심 속이 시원할 것이다.

그러나 엄마를 향한 원망은 설명해야 했다. 엄마의 사랑을 생각하면 원망은 옳지 않았다. 그렇다고 엄마가 내게 상처 준 것이 정당하다고 하려니 속이 쓰려서 나는 앓아누웠다.




*애증 (“엄마랑 딸 사이가 다 그렇지”)


‘애증’이라는 단어를 풀이하자면 “엄마랑 딸 사이가 다 그렇지 뭐”이다. 그러나 애와 증 사이에서 나는 이제 혼란스러웠다. 둘 중 하나만 해야지 어떻게 극과 극 둘이 공존할 수 있냐? 말도 안 돼. 나는 엄마로 인해 기쁘고 괴로울 때마다 지구 북극에서 남극을 오가야 하는 팔자를 끝내기로 했다.


극지방에서 도망쳐 나와 가슴 시린 기후에서 엄마와 연락을 끊고 살기를 일 년, 이년. 좋다는 건 다 해봤다. 한의원에서 손바닥만 한 왕침을 위장에 수직으로 꽂아 넣으며 위염약을 지어먹고, 심리 상담도 반년 넘게 받고, 정신과도 가고, 요가, 수영, 등산, 명상, 감사 일기, 내면 아이 심리학, 마음 챙김, 철학 책도 읽고, 법륜 스님 즉문즉설과 김창옥 교수 강연, 조성진 연주까지 섭렵하며 난 이제 내 입장을 찾았다고 생각했다. 내 자리는 여기라고. 엄마 옆이 아니라. 그래서 두 번째 겨울부터는 엄마와 겨우 조금씩 왕래할 수 있었던 것이다.




상처 (“언제까지 그럴 거야”)


그렇게 12월 한겨울 어느 날, 엄마와 다시 한 집에서 살아볼까 얘기하던 밤, 알밤 까던 쟁반을 바닥에 뒤집어엎어버렸던 말싸움은 바로 내가 사춘기 시절 심하게 맞았던 날에 대한 사과를 요구한 것이었다. 나는 그 일로 매우 큰 상처를 입었고 아직도 괴로우니 엄마의 잘못을 사과해라 요구하고 엄마는 그때 네가 잘못해서 훈육한 건데 그게 무슨 사과할 일이냐 물러나지 않았다. 결국 나는 그때 그 시절처럼 엉엉 울다가 털북숭이 밤 껍데기를 바닥에 내팽개치고 한밤중에 급히 가방을 싸서 서울 내 방으로 올라왔다.


중 3 겨울, 단 하루의 일이었지만 크게 보면 엄마와 사춘기 나 사이의 팽팽한 줄다리기가 늘 어떻게 결정 나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힘겨루기에서 언제나 나보다 우위임을 보여주고 싶어 하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두려움을 느낄수록 이러다 버림받을까 봐 애정을 갈구할 수밖에 없던 딸이 엄마를 향한 애와 증을 동시에 키워나가기 시작한 결정적인 사건이었던 것이다.


집을 떠나와 4평 작은 원룸에서 홀로 산을 넘고 강을 헤엄쳐 가시밭 수풀을 딱 빠져나왔을 때, 엄마와 나 사이엔 건널 수 없는 거대한 낭떠러지가 있음을 알게 된 12월. 그 겨울부터 봄까지. 지난 일은 잊으라는 엄마에게 나는 끈질기게 사과를 요구하며 입씨름 한 번에 매번 사나흘을 시체처럼 누워 흘려보냈다.


“난 그러지 않았다. 부모가 어떻게 자식을 미워하겠니. 어느 부모가 자식에게 그렇게 심하게 대할 수 있겠니” 물론 훈육을 학대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것을 안다.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이제 와서 아동학대나 하는 부모 취급한다는 것이 억울한 것을 안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부모도 자녀를 미워할 수 있다. 자신을 위해 자녀의 바람을 좌절시키는 판단을 내릴 수 있다. 나는 혈육을 미워하는 마음을 잘 안다. 나도 부모를 확실히 미워할 때가 있었으니까.


부모라고 언제까지고 자녀에게 조건 없는 사랑과 희생을 베풀어야 할까. 내 얼굴에 침을 뱉는 자녀를 어떻게 끌어안고 사랑한다고 말해줄 수 있을까. 치욕이 허락해 준다면 다만 어른으로서 이해해 보려고 겨우 시도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용기 (“미안해”)


==

2022. 2. 19. 오후 4:37, 마디 :

엄마를 미워한다는 사실에 진짜 죽고 싶어.

미워할 수도 있다 그럴 수도 있다  계속 나한테 그렇게 이해시켜 줘야 돼 죽고 싶지 않으려면.

근데 미워하는 걸 인정해도

인정 못해도

다 죽고 싶을 뿐이야


==

2022년 2월 24일 목요일 2022. 2. 24. 오후 2:24, 어마마마 :

딸아 지금 우크라이나 사태를 보면서 네 말이 생각났어 어떤 이유로도 폭격을 하면서 평화를 유지할 수는 없다는 걸 네  말대로 폭력이  정당화되는 경우는 없다는 걸 미안해  정말

배움이 적어서 미련한 짓을 했나 보다 미안해


==

2022년 2월 27일 일요일 2022. 2. 27. 오후 12:20, 어마마마 :

사람은 가까이 지내는 사람을 닮는다는데 흑과 가까우면  닮는다 하듯이

그런데   엄마조차 가깝게 할 수 없었으니 네가 얼마나 외로웠을까   생각해

그래도 난 네가 그냥 용감한 사람이다 이렇게 생각했었어.

이런 것이 감정을 풀어야   하는 문제인 줄 몰랐어

미안해 진작에 깨달았어야 하지만 내가 구체적으로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없었어

오늘 시간에 배웠어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를 유지하려면 형제의... 마음의  상처… 를 치유해 주려는   목표를  가져야  한다구 그건 누가 옳은지  그른지보다 더 중요한 것이래

미리 마음으로  용서할 준비를 해야 한다구. 노력할게

좋고 꼭 필요한  내용을 알게 돼서 내 마음을 전하기로 했어 잘 지내라  사랑한다


==

2022. 3. 31. 오후 11:39, 어마마마 :

지나는 말이고 네가 준 그 책  요즘  심도 있게  읽고 있는데 어떻게 그 귀한 책을 찾았니  

많은 사람들이 엄마를 그렇게 불편한 관계로  살고 있는 줄을 정말 몰랐다

 엄마는 훌륭하고 싶어도 맘 같지 않은가 봐

좀 더 잘 읽을게 많이 미안해


==

엄마가 미안하다고 하니까  이상 미워할 이유가 없어져 혼란스러웠다.(미안-미워. 비슷한 소리네). 마침 3  내가 코로나에 걸리고, 잇달아 엄마가 코로나에 걸리면서 매일 안부를 묻게 되었고 죽음의 공포 앞에서 서로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보살피게 되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에 엄마는 새로운 집으로 이사를 했고, 막 더워지는 초여름에 나도 투룸으로 이사를 해냈다. 터져 나올까 처박아 넣기에만 급급했던 기억이 이삿짐과 함께 정리가 되었다.


가장 깊숙이 자리 잡은 마음은 맨 아래칸에.

자주 꺼내 입는 마음은 맨 위칸에.





이전 14화 불면증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