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우붓언니 Jul 30. 2018

9년차의 번아웃,  대책없던 퇴사

그리고, 무작정 발리 우붓행

플랜 a,b,c,d 를 고려하여 의사결정을 하던 내가

좋은 동료, 너무나 좋아하던 일, 감사하던 보상, 월요병 따윈 없던 조직 생활,

그 모든 걸 대책없이 내려놓고, 아무 계획도 없이, 퇴사를 선택했었다.


그게 작년 늦봄과 여름 즈음, 약 1년전 이야기이다.

왜 그런 선택을 하게 하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면, 크게 2가지였던 것 같다.



하나는, 9년간 이틀이상 휴가를 내고 쉬어 본 적이 없었다.

운좋게도 빠르게 성장하던 두 곳의 기업에서 마케팅으로 시작해서 신규 서비스 기획, 제휴, 데이터 분석, 콘텐츠 제작과 운영, 수많고 수많던 페이퍼 작업, 그리고 조직의 분사와 셋업에 기반이 되는 모든 법무/행정/회계 업무 그리고 기업 문화 메뉴얼 작성까지.


소위 말해서 넓은 의미의 product manager 가 할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을 경험하며, 소위 generalist 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에 놓여져있었다.

그렇게 질릴틈없던 다양한 업무가 매번 신기하고 재밌었다. 그땐 소진되고 있다는 걸 모른채 마냥 달렸던 것 같다.




다른 하나는, 그러다가 문득 숨 쉴 틈이 왔을 때, 길을 잃어버렸다.

닥치는대로 달리다보니,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잘하는 사람인지 스스로 규정하질 못했었다.

회사는 돈을 받기 위해 다닌다기보다, 자아실현의 수단이라고 생각했었다. 행복하려고 다니는 곳이라고 생각했었다. 보상은 그 결과일 뿐이라고 생각했었다.


당시 조직에서는 내가 쉬면서,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는 충분한 시간과 격려를 주었다.

게다가 나는 회복력이 매우 빠른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에너지가 저 땅 속 끝까지 빨려들어가는 경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어느 날 문득 팝콘같은 꽃잎이 하늘에 날아다니는 것을 보고,

대책없는 퇴사를 결심했다.


엄청 맥락없는 결정이지만, 퇴사 51%! 에 방점을 찍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 전화기를 꺼내, 케이윌을 좋아하는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케이윌의 노래인 '팝콘같은 꽃잎이 저 높이 날아요~' 를 읖조리며, "그래서 나 더이상 회사를 못다니겠어" 라고 말을 했었다.


그렇게 겁많은 나였지만, 아마도 불확실성이라는 두려움을 다른 감정이 이겨냈던 것 같다.





그렇게 퇴사를 하고, 무작정 발리의 우붓으로 떠났다. 요가복 달랑 3벌, 시원한 슬리퍼, 그리고 매트 하나 딱 들고.


우붓은 IT 성지와 같은 곳이라 들었기에 IT인으로 한 번쯤은 가봐야 한다는 막연한 생각이 있었고,

또 나의 유일한 취미인 요가, 그리고 명상의 지역이며,

그리고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의 줄리아로버츠가 모든 걸 내려놓고 온 지역이기도 했다.


나는 IT 업계 9년차였고,

꾸준히 수련하지는 않지만, 요가를 시작한지 7~8년 정도 되었고, 나름의 노력으로 certification 이라는 글자가 찍혀있는 종이를 9개 정도 가지고 있었으며,

모든 걸 내려놓은 줄리아로버츠와 비슷하다는 프래임에 나를 껴 맞추어보니, 꼭 우붓에 가야만 할 것 같았다.

(실제로 우붓에는 그렇게 퇴사하고 온 각국의 친구들이 너무나 많았다. 눈만 마주쳐도 눈물을 그렁그렁 거리며, 서로 안아주곤 했다. 그 감사하던 백수 시절의 요가 수련 경험들, 이건 차차 하나하나의 여행 일기로 기록해보려고 한다.)






우붓 수련을 통해 다시 중심을 잡은 나는 그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지치지 않고 오래가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그리고 그 중심을 더욱 잘 잡으며, 일할 수 있는 곳을 찾아 다시 예전처럼 또 다시 신나게 일하고 있다.

어떻게 찾고, 입사하게 되었는지는 다음 글에서 상세히 풀어보도록 해야겠다. 뚜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