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길 바쁜 에너지 전환과 전기요금
지구 평균 온도 상승폭을 1.5℃ 이내로 억제하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가장 집중하고 있는 것이 바로 '에너지 전환'이다.
지금의 경제적 풍요로움과 산업구조를 만드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 화석연료 대신 태양광이나 풍력 등 재생에너지로 바꾸는 것이 에너지 전환의 핵심이다.
우리나라 역시 에너지 전환을 위해 '재생에너지 3020', '수소경제 로드맵', '그린 뉴딜' 등 다양한 정책을 발표했다. 하지만 대부분 양적인 확장과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한 방안이 주로 담겼을 뿐, 에너지 전환으로 인한 국민들이 겪어야 할 일들에 대한 대비나 정보공개 등을 부실한 편이었다.
가장 손쉽게 찾아볼 수 있는 비용의 예는 '전기요금'.
이상기후로 폭염과 폭우 등 기상 이변이 빈번히 일어나면서 매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기사가 바로 '전기요금 폭탄'에 대한 것이다.
극심한 더위에 에어컨 사용이 급증하고, 습한 날씨로 인해 제습기 등의 사용이 늘면서 전기요금 폭탄이 떨어질 것이라는 내용과 함께, 값싼 원전을 이용하지 않고 무리하게 값비싼 재생에너지를 확충해 전기요금 부담은 갈수록 더 커질 것이란 내용이 대부분이다.
이 같은 주장은 에너지 전환의 최대 약점으로 작용해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에 대하 과도할 정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에너지 전환의 필수적인 전기요금 인상 문제를 쉬쉬하게 만든 계기로 작용했다.
2019년 세계에너지협의회는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한 핵심 주제로 시장 설계와 전기화 등을 제시했다.
이와 함께 지원금 체계로는 에너지 전환 지속될 스 없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구조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바꿔 말하면 성공적인 에너지 전환을 위한 맞춤형 보상 체계, 즉 전기요금 개편이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 '에너지 전환 = 탈원전'으로 간주되는 경우가 많아, 에너지 전환은 탈원전 정책을 값싼 원전이 비싼 재생에너지로 대체되면서 전기요금이 상승할 것으로 귀결됐다.
여기에 탈원전이 정치와 연결되면서 에너지가 문제가 이념의 문제로 변질됐다.
에너지 전환은 기존의 에너지를 새로운 에너지로 바꾸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기득권을 가진 집단과 새롭게 주목받는 집단 간 이해충돌이 발생한다. 이에 따라 각각의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토론하고, 상호 간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의견 차이를 좁히고, 국민적 동의를 구하는 과정이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여기에는 반드시 정치적인 합의도 필요하다.
하지만 우리의 경우에는 상호 간 토론과 설득은 공청회란 명목으로 짧은 기간 동안 형식상 진행됐고, 정치적인 합의는 정쟁의 도구로 바뀌어 협의 대신 논쟁 거리로 사용되고 있다.
갈길 바쁜 에너지 전환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기본적인 논의도 이런 수준인데 민감하게 작용하는 비용 문제인 전기요금 논의는 엄두도 못 내고 있는 상황.
결국 대한민국 에너지 전환은 이념 논쟁을 하다 필수적인 비용 문제에 대한 고민을 충분히 하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온실가스를 막기 위한 조치 중 하나로 IPCC 등 여러 기관들이 추천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전기화'.
화석연료 중심의 1차 에너지를 직접 이용하다 보면 아무래도 온실가스 발생이 뒤따르지만, 2차 에너지인 전기는 1차 에너지가 활용되는 상황 대부분을 대체할 수 있고, 전기는 다양한 경로로 생산할 수 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온실가스를 줄이기 용이하기 때문이다.
특히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가장 좋은 방안인 재생에너지는 대량 전기 생산에 적합하지 않아 아무래도 비용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에너지 전환의 골자가 재생에너지 비중 확대인 만큼 전기요금 인상은 사실상 불가피하다.
이 같은 상황을 우리나라에서는 '전기요금 정상화'란 말로 표현하는데 사실상 '전기요금 인상'이다.
어차피 올릴 수밖에 없다면 '전기요금 인상'을 공식화하고 하루빨리 투명한 정보 공개와 이해관계자 간 토론과 논의를 진행해야 할 필요성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논의는 대체로 국민적 공감을 잘 얻지 못하고 있다.
그 이유로는 우선 전기요금 정상화가 사실상 '한국전력의 이익보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인식이 강하고, 전기요금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보다는 기존 체계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격이 강하게 비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에 산업용과 가정용과 차이점, 가정용에만 있는 누진제와 같은 공정하지 않다고 인식되고 있는 우리나라 전기요금 체계에 대한 불신도 한몫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전기요금은 어떤 방향으로 개편되어야 할까?
일단 현재의 전기요금 체계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논란이 뚜렷한 만큼 전반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현재 논의되고 있는 전기요금 개편은 크게 2가지 방향을 가지고 있다.
전기를 생산하는 필요한 연료비가 전기요금에 정확히 반영시키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하고, 친환경에너지로의 전환에 필요한 정책 비용과 기존 에너지에 대한 환경 비용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부과 형태는 전기요금과 정책 비용과 환경비용을 따로 부과하는 형태와 전기요금에 전부 반영하는 형태가 논의 중이다.
아무래도 관심이 집중되는 건 전기요금 인상폭.
전문가들은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이 반영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이행되면 2030년 전기요금이 2017년 대비 최대 29.2%까지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
정부는 인상폭이 30%가 아닌 10.9%로 밝힌 바 있는데, 실제 에너지 전환율이 가장 높은 독일과 덴마크 등 유럽 사례를 통해 유추해보면 인상폭은 30%보다 더 클 가능성도 있다.
독일과 덴마크의 경우, 우리와 전력판매 구조가 다르기 때문에 우리 상황에 그대로 적용하기는 힘들지만 전기요금 인상이란 민감한 문제를 다루기 위해선 다양한 사례들을 알려야 할 필요성이 있을 것이다.
실제 독일의 경우, 전기요금을 살펴보면 독일 한 가정당 전기요금 지출은 평균 9~10만 원 정도로 높다. 흥미로운 건 독일의 높은 전기요금이 아닌 독일의 전기요금 구조.
독일의 전기요금을 살퍄보면 전기 구입 바용 22.8% 송배전 비용을 24.4%를 차지한다. 나머지 52.8%는 전부 세금이다. 우리의 기름값과 비슷하게 순수 전기요금보다 세금 비중이 높은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세금은 어떻게 구성됐을까?
재생에너지 부담금이 약 27%, 나머진 기타 세금이다. 전체 전기요금 가운데 30%가 재생에너지 관련 기술 발전 등에 사용되는 재생에너지 부과금으로 책정됐다.
보조금에 의존하지 않고서도 재생에너지로 전환할 수 있는 체계를 만든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전기요금 구조를 만들기 위해 독일은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가 위해 10여 년을 소비했다.
재생에너지 비중이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 덴마크 역시 사회적 합의를 이끌기 위해 30년을 투자했으며, 에너지 전환 중 전기요금이 3배가량이 높아지기도 했다.
에너지 전환은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 일상의 패턴도 변화시키는 중요한 정책이다. 그리고 국민들이 직접 지불해야 할 비용 규모도 작지 않다.
변화에는 반드시 비용이 수반된다. 그 비용은 새로운 인프라를 구축하고, 새로운 방식의 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필요한 예산만 들어가는 것은 아니다. 비용을 어떻게 감내할 것인지에 따른 논의와 고통분담도 필요하다. 실제 기후변화란 대명제 달성을 위해서는 그에 수반될 고통분담도 정확히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유럽의 경우, 사회적 합의에만 최소 10여 년이 소요된 것이다. 아직까지 에너지 전환과 관련 비용에 대한 진지한 사회적 고민과 합의가 없는 우리나라는 갈 길이 아직 멀어 보인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은 상태일 확률이 높다. 하지만 늦게라도 시작하지 않는다면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방안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