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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은 나를 단단하게 만든다

사람은 누구나 고민 속에서 자란다.

by 컬러코드

본선 무대는 너무 짧게 느껴졌다.
앞사람들이 노래할 때마다, 정말 노래를 부르는 건지 음악을 틀어놓은 건지 구분이 안 될 정도였다.


손빈아, 미스김, 성민, 이부영, 김유라 같은 대가수들까지 함께하니, 폭우에도 불구하고 관객석은 꽉 찼다. 사람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득한 인파였다.

비가 온다고 하니 누구에게도 쉽게 말할 수 없었는데, 엄마와 이모들은 단합이라도 한 듯 꼭 오시겠다고 하셨다.


송도오션파크 야외무대였기 때문에 대기실 공기는 신선했다. 나를 보러 온 지인들이 대기실 앞까지 와서 인사를 해주고 응원과 격려를 해 주었다. 심지어 동영상이라며.. 찍어주시고~

그때까지도 전혀 별 생각이 없었지만 심장이 자꾸 빨리 뛰고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기실 안 풍경은 비바람이 치고 서로 사탕과 물을 챙겨주며 긴장감과 차분함이 섞여 있었다.

누군가는 가사를 계속 중얼거렸고, 누군가는 손을 덜덜 떨며 물만 들이켰다.

나는 예선과 너무 같은 모습으로 온 것 같아 부끄러웠지만,

또 다른 이는 괜히 농담을 던지며 긴장을 숨기려 했다.

그 모습을 보며 깨달았다.

"아.. 나만 두려운 게 아니구나."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아이와 함께 어쩔 수 없이 돌아간 학부모.

격한 응원을 해줄 거라고 디자이너도 아닌데 급하게 현수막을 만들었다며 웃어주는 지인까지

매 순간이 그렇게 감사할 수가 없었다.



15명 중 나는 14번 순서였다.

'내 차례가 오지 않았으면...' '빨리 내 차례가 왔으면' 하는 상반된 마음이 동시에 올라왔다.

그 순간만큼은 누구의 아내도, 누구의 엄마도, 회사 대표도, 학생을 가르치는 입장도 아닌 오로지 나였다.


무대 뒤에서 대기하는 동안 어느새 나도 그 자리를 즐기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처음부터 무대에 오를 것이라고 생각해보지도 못했지만 너무 막각한 실력들을 가진 분들과 함께 한다는 자체가 감사였다.

결과가 어떻더라도 즐겁게,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행복한가.

정말 이런 기회는 아무에게나 오는 게 아니지.


같은 지역 사람들이었지만, 처음 보는 얼굴들이 대부분이었다. 대기실에서는 모두 차분했는데, 막상 무대 위에 오르니 열정과 끼가 폭발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나만 최선을 다한 것도 아니었다. 모두가 자기만의 고민과 준비를 안고 올라온 것이 분명했다.


매번 새로운 무대매너로 함성과 조명이 사라진 뒤에도 가슴은 오래 두근거렸다.
“내가 정말 저 무대에 서다니…” 믿기지 않는 하루였다.

그러나 그날의 무대는 단순히 내 이야기만은 아니었다.


어떤 이는 은퇴 후 인생의 두 번째 시작을 꿈꾸며 노래를 했고,
어떤 이는 가족들에게 평생 남을 추억을 선물하고 싶다며 무대에 올랐다.
또 다른 이는 어린 시절 무산된 가수의 꿈을 다시 확인하러 나왔다.

체육협회 회장님의 따이따이 건강무대를 선보여주신 힘찬 무대

무릎 고관절을 꺾어가며 아슬아슬 넘어질 뻔한 명연기를 해주시며 걱정과 안도의 한숨을 주신 어르신의 무대.

갱년기라며 음악으로 치유하고 계신다는 엄마들의 선배.

외식조리학과 고3 꿈을 가진 멋진 학생들.

내일모레 군대를 가는 음악전공 대학생, 키 큰 남학생과 엄지공주 여학생의 기가 막힌 듀엣 무대.

우리 아이와 같은 나이의 5학년 친구의 열정적인 무대.

관내 잘생긴 경찰아저씨의 공무홍보 및 멋진 춤과 노래.
심지어 결혼을 앞둔 예비 신부도 있었다.

그들 모두가 내 모습 같았다.


“저 사람도, 나도 결국 무대를 향해 걷고 있구나.”

“왜 이렇게 다들 눈빛이 간절할까?”

“결국 무대는, 우리 모두의 고민을 불러내는 거구나.”


무대에 서기 전까지 나 역시 수없이 흔들렸고,
엄마의 칠순 잔치와 겹친 일정 앞에서 “포기해야 하나” 갈등했다.
그러나 그 고민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었다.
고민하지 않았다면 무대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고민 속에서 자란다.


고민은 나를 멈추게 하지만, 동시에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된다.
그리고 결국 우리를 단단하게 만든다.

이제 나는 안다.
무대는 찰나의 순간이지만,
그 무대를 가능하게 한 건 다름 아닌 매일의 고민들이었다는 것을.


<밤이면 밤마다> 외로운 느낌을 낮에 부르니 감정은 고사하고 웃긴 무대를 보여주려

노력한 나 자신에게 칭찬의 박수를 보낸다.


상을 받는 것보다 귀한 건,

이렇게 인생에서 단 한 번뿐일지 모를 무대를 경험했다는 사실이었다.




2025년 9월 28일 12:10분 KBS1TV 부산서구 편 전국노래자랑이 방송됩니다.
부끄럽지만 전국노래자랑에 나가기까지 <늘 도전하고 노래 부르는 디자이너>의 성장기를 주제로
브런치북을 쓰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정주행 해주세요~!
많은 시청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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