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모없는 날들이 가르쳐준 것들

허송세월 — 김훈

by 기빙트리

문득 그런 날이 있다.
눈을 떴는데,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아니, 할 수 없는 날.
뜨거운 물을 끓이는 것도, 양말을 고르는 일조차 버겁게 느껴지는 그런 아침.

그럴 땐, 창을 열고 먼 산을 본다.
산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그대로고,
그 아래에서 들리는

바람과 사람 소리는
아직 내가 이 삶 안에 있다는 걸 알려준다.


김훈 작가는 『허송세월』에서 ‘글을 쓰는 인간’의 고독을 말한다.
때로는 아무 쓸모 없이 흘러가는 나날들을 ‘허송’이라 부른다.
하지만 그 허송의 나날 속에야말로
삶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눈이 담겨 있다.

그는 텅 빈 뜰에 앉아 바람을 맞는 사람처럼,
세월의 지나감을 억지로 붙잡지 않고 흘려보낸다.
글은 쓸쓸하지만 결코 비극적이지 않고,
무심하지만 그 안에 묵직한 사랑이 있다.

고요한 감정의 저편에서,
우리는 누군가의 슬픔에 가만히.. 손을 얹는 작가를 본다.
크게 말하지 않아도, 오래 마음에 남는 문장들.
그런 글을 읽고 나면, 잠시 침묵을 지키게 된다.

책 속엔 특별한 사건이 없다.
슬픔도, 기쁨도, 문장으로 꾸며지지 않는다.
그저 나이 든 한 사람이 오래 앉아,
흘러가는 세월을 지켜보는 장면이 반복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 무심한 서술은 가슴을 친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 속에서
우리는 진짜 ‘사는 일’을 배우게 되기 때문일까.

『허송세월』은 그런 책이다.
당신이 열심히 살아내느라 잃어버린 감각을
다시 꺼내주는 책.
“그렇게 살아도 된다”는 말을,
어떤 당위도 없이 건네는 책.

평범한 아침.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에 눌린 당신에게
이 조용한 문장들을 권하고 싶다.
아무 일도 없었던 하루가
가장 깊은 위로가 되어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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