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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켓잉 Feb 17. 2018

마케터가 읽은 '히틀러와 나치'

 히틀러는 '나치'라는 브랜드를 내세웠다.


 "대단한 친구야! 정말 멋지게 해냈군!" 

- 반대파를 확실하고 신속하게 제거한 히틀러 이야기를 듣게 된 스탈린曰


2차 세계대전에 그가 없었다면 인류 역사 최악의 전쟁은 피할 수 있지 않았을까.

전쟁사에서 발견하는 치명적인 마케팅 전략!


마케터 켓잉이 오늘 읽어드릴 내용 '히틀러와 나치' 

*주제와 관련된 여러책을 종합적으로 해석


전쟁은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되는 참혹한 비극이지만 전쟁과 마케팅은 닮았다고 누군가 그랬던가.

그러한 전쟁의 시발점이 된 히틀러가 어떻게 독일을 삼킬 수 있었는지 알아보자.


콜오브듀티 1,2를 해본 유저(?)거나, 전쟁사에 관심이 있거나, 마케터 군대로 차출(?)당하는 분들과 함께 나누고 싶은 글이다.




히틀러는 화가 지망생이였다. 그러나 실패하고 화가 많이 난 듯하다.(?)


1. 2차 세계대전 악의 주범 화가지망생 '히틀러'의 등장과 '나치당'의 집권


악의 주범이라고 생각하는 히틀러의 본래 꿈은 '화가'였다. 여러 차례 낙방 끝에 결국 화가는 포기하게 되고 1차 세계대전 독일군에 입대하게 된다. 1차 세계대전은 독일, 헝가리 등 동맹국의 패배로 독일은 혼란스러운 사회에 빠지게 되었고 이에 따른 민족주의 사상이 대두되기 시작했다. 히틀러는 군의 임무로 '민족주의 운동'에 대한 조사를 명령 받게 되고 이에 히틀러는 '독일 노동자당' 이라는 곳을 조사 중 오히려 당원으로 입당하게 된다.


뛰어난 연설실력으로 순식간에 당 내 인기스타가 된 히틀러

그리고 곧 '독일 노동자당'을 '국가 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당'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를 짧게 'Nazi'(나치)라고 부르게 된다. 이들의 목소리는 독일인들이 지지할 수 밖에 없는 강력하지만 달콤한 당 강령을 발표하게 되는데 핵심은 '우리끼리 뭉치고, 1차 세계대전 배상 꺼져' 한 줄로 설명이 가능할 듯 하다.  특히 1차 세계대전 주범국가 가 '독일'로 몰리면서 안그래도 전쟁으로 인한 피해도 큰데 배상금까지 물어주니 독일 경제는 초인플레이션까지 이어지니 지폐를 벽지로 쓰는 게 더 이득이였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힘든 건 우리 탓 아님! 남 탓임!' 외치니 인기가 좋을 수 밖에 없었다.


뮌헨에서 폭동을 일으킨 히틀러와 나치당원 어쩌면 최고의 광고전략이지 않았을까

1922년 이탈리아에서 일어난 '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을 보고 히틀러 역시 뮌헨에서 쿠데타를 일으키게 된다. 이는 곧 소탕되고 히틀러는 5년형을 선고 받게되지만 오히려 독일의 경제파탄과 사회적인 혼란 속에서 히틀러와 나치의 행동은 독일 국민들 머릿 속에 확실하게 인지하게 된다.


경제대공황이 그의 인기를 인플레이션하다.

세계적인 경제대공황으로 인하여 독일의 혼란이 끊임없이 이어지나 독일 사회는 점점 극단적인 성향을 보이는 '공산당' '나치당'으로 갈리기 시작한다. 1932년 나치당은 37.3% 득표하며 나치당의 힘을 보여주었으며 대통령 힌덴부르크는 1933년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하게 된다. 히틀러는 일당독재를 위해 총선 다시 준비하였는데 선거를 일주일 앞두고 공산주의자가 독일의사당에 불을 지르는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이를 놓치지 않고 공산주의의 잔인함을 알리고 대표적인 공산주의자들을 체포하며 공산당을 몰락시키게 된다. 합법적인 나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전권 위임법'을 발의하는데 이는 한마디로 "국가가 위기이니 헌법이고 뭐고 일단 나치 정권한테 대들면 다 죽는다^^ 대신 우리가 지켜줄께~"  해석할 수 있다.


나치 돌격대가 지키는 한 발의는 문제없어

당연히 반대파 독일 정치인들이 멍청이도 아니고 이를 가만둘리 없었지만 나치가 이들을 역으로 가문두지 않았다. 일단 반대파는 참석도 못하게하거나 체포를 하였고 이들은 기권표로 간주하여 '전권 위임법'을 성공적으로 획득한 히틀러는 그 즉시 나치를 제외한 모든 정당을 해산시킨다. 이후 합법적인 독재가 가능하게 된 히틀러와 나치는 내부적으로 뜻이 엇갈린 나치돌격대 대장 '륌'을 비롯한 유력 인사를 제거하고 나치돌격대 자리에는 '나치친위대'가 대체하게 되었고 이 과정 속에서 독일의 정치가, 지식인들은 숨죽여 살거나 나치에게 충성을 맹세하였으며 히틀러는 대통령과 총리를 겸한 '총통'의 자리에 오르게 된다. 이 과정을 지켜본 스탈린은 히틀러에게 박수를 친다. 그렇게 독일을 접수한 히틀러의 야심은 실패한 화가지망생이 얼마나 무서운지 끔찍한 전쟁의 서막으로 이어지게 된다.



2. 나치당의 인기와 5A 고객 행동 마케팅론

마켓 4.0에서 필립코틀러는 고객은 브랜드를 5A 단계에 따라 행동한다고 말한다.


마케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첫 시작점인 '인지'다. 고객 경로를 묘사하는 전통적인 마케팅 행동론은 4A를 사용했다. 소위 AIDA 라고 불리우는 것인데 주의-관심-욕구-행동 으로 결국 '주의=인지'로 시작하게 된다. 이를 발전시켜 필립코틀러는 인지-호감-질문-행동-옹호 5A로 발전시키게 된다.


사실 나치는 아주 작은 정당에 불과했지만 뮌헨 폭동으로 전국구 스타 정당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Aware). 특히나 그럴 것이나 독일인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을 콕콕 찝어서 '우리 우월한 독일인들의 탓이 아니다!'를 외치니 호감(Appeal)으로 이어질 것이며, 실제로 혼란스러운 독일 사회를 바꾸고자 하는 '나치'의 행동은 많은 독일 국민들에게 호기심(Ask)을 이끌기 충분했다. 그리고 이들의 호기심은 44% 나치당 득표율을 통해 국민들의 행동(Action)으로 이어지게 된다.


게다가 정말 입빨만 있던게 아니라 국력, 경제력 살리기도 했으니..

하지만 단순히 인기를 끌기위해 독일 국민들을 속이는 말빨만 있었다면 지속적인 인기를 유지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실제로 나치당 집권 이후, 베르사유 조약은 철폐하고 10만명으로 제한 된 병력을 확장하였으며, 뉴딜정책과 유사하게 대규모 공공시설(군수산업, 아우토반등) 사업을 계획하며 그 많던 독일 실업자가 확 줄었으니 나치당을 옹호(ADVOCATE) 할 수 밖에 없었다.


더하여, 독일은 오스트리아를 점령하고 체코슬로바키아 수데텐 지방을 요구하며 영토까지 확장했다. 이러한 독일의 성장세에 영국, 프랑스는 "더 이상 영토는 요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협상을 마무리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길고 긴 히틀러의 집권을 간단하게 요약하다 보니 생략하고 지나간 부분도 많습니다. 하지만 핵심은 실패한 화가지망생이 독일이라는 거대 국가를 집권하게 된 과정에서 국민들이 왜 나치당을 선택했는지 5A와 충분히 연결된다는 점이였습니다. 고객들이 브랜드를 고르는 이유와 국민이 정당을 고르는 이유가 비슷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역사와 마케팅을 엮은 주관적인 포스팅이므로 모든 이는 독자의 판단에 맡깁니다.
즐겁고 유쾌한 말동무는 환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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