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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언어의 끝 02화

2. 돌아오다

소설 <언어의 끝>

by 지안

지현은 컴퓨터를 켜고 [윤지현 님께]라는 한국어 제목의 메일을 클릭했다. 법무법인 [마음으로]라는 곳에서 보낸 메일의 첫 문장은 이랬다.


“예상치 못하셨을 것이라고 짐작합니다.”


[마음으로]의 변호사라고 자신을 소개한 사람은 ‘윤세원’이라는 사람이 죽으며 지현에게 유산을 남겼다고 적었다.


“메일로 모든 것을 설명드릴 수는 없습니다. 시간을 가지고 생각해 보신 후 연락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한국으로 돌아오실 수 있다면 가장 좋은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지현은 의자에서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11월의 차고 매서운 바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방안에 남아 있던 얼마 안 되는 온기를 밖으로 몰아낸 후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검색창에 ‘윤세원’이라는 글자를 치자마자 기사들이 줄줄이 달려 나왔다. 가장 최근 기사는 사망 소식이었다.


“원로 정치계의 거두, 전직 문화부장관 윤세원 92세로 별세”


1970년대부터 활동한 기자 출신의 정치가인 윤세원은 보수 정치인이었던 듯했다. 기사로 파악할 수 있는 내용은 그랬다. 가족관계나 부채 규모 같은 것은 알 수 없었다.


“윤세원, 윤세원…….”


몇 번이고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지만 낯설었다.


“윤세원. 아빠 이름이 윤도현이라고 했으니까 그럼 할아버지인가? 엄마는 왜 한마디도 안 해주고 가버린 거야.”


지원은 엄마가 살아 계실 때 몇 번이고 가족이나 아버지에 대해 물었지만 제대로 된 대답은 듣지 못했다. 사진 한 장 본 적이 없었다.


“널 위해서야. 모든 걸 알아야 세상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지현이 가족이나 한국에 대해 물을 때마다 엄마는 이렇게 대답했다. 작은 아시아인이라고, 가난한 이민자라고 비난받고 좌절할 때도 한숨을 쉴 뿐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연락 오는 친척도,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가끔은 이렇게 중얼거렸다.


“난 한국이 무서워. 누가 우릴 찾을까 봐 두려워.”




아무도 오지 않는 집에 딱 한번, 나이 든 남자가 찾아왔던 적이 있다. 60대 정도로 보이던 남자는 지현에게도 말을 걸었다.


“안녕.”


엄마의 눈치를 본 후 지현이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남자는 감탄하는 표정이 되어 물었다.


“우리말을 잘하는구나. 학교는 어때? 공부는 할 만하니?”


엄마는 불안한 눈초리로 바라봤지만 지현을 말리지는 않았다.


“재미없어요. 한국은 어때요? 난 그게 궁금한데.”


남자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엄마를 바라보며 웃었다. 엄마는 고개를 흔들었다.


“조금 더 안전해지면요. 아직은 무서워요.”


엄마가 이렇게 말하자 실망과 체념이 섞인 눈빛으로 남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의 소식을 무시하고 살던 엄마는 나이 든 남자가 찾아왔을 무렵, 그러니까 지현이 15살 됐을 때부터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한국 신문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고, 한국어로 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다.


한국을 싫어하는 것처럼 보이던 엄마가 유일하게 그리워한 것은 [성화몽기]라는 책이었다. 엄마는 그 책을 어릴 때 다락방에서 발견했다고 했다.


“아마 엄마의 엄마의 엄마의 저 위 엄마가 쓴 책이 아닌가 싶어. 정 씨 부인이라는 분이 쓴 일기인데 남편이 세종대왕 때 집현전에서 한글 만드는 일을 했던 것 같아. 부인은 남편이 퇴근하고 난 후 이야기를 나누고 그 느낌을 적었어. 어때, 굉장하지 않아? 이름도 없는 여성이 문자에 대해 얼마나 근사한 생각을 적어 놨던지. 난 그 책을 꼭 번역하고 싶었는데…. 절반 밖에 못한 책을 한국에 두고 왔어. 내 소원은 [성화몽기]를 번역하고 해제를 달아 출판하는 거야.”


엄마의 자랑과 달리 [성화몽기]는 전혀 유명하지 않아서, 모임에서 만난 어떤 한국 출신 유학생들도 그 책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다.




아빠의 이름을 알게 된 것도 그즈음이었다. 윤도현. 아빠는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다. 한국에서 언어학을 전공했었다는 이야기는 스무 살이 넘어서 들었다. 지현이 태어났을 때는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이유는 모른다. 엄마는 끝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았다. 엄마도 뷔르츠부르크 대학에서 독일 문학을 전공했다. 두 사람은 학교에서 만난 것일까? 그것도 모르겠다. 엄마는 그것도 알려주지 않았다.


엄마의 공식적인 직업은 번역가였다. 독일어로 된 책을 한국 C출판사를 통해 소개했다. 겉표지에 번역자로 올린 이름은 ‘정해원’이 아닌 ‘해원’이었지만. 번역료로 생활이 가능했던 것은 지금 생각하면 기적 같은 일이었다. 어쨌든 두 사람은 정원이 딸린 미테 지구의 15평 주택에서 걱정 없이 살았고, 작년에 돌아가신 엄마의 계좌에는 예상보다 큰돈이 남아 있었다. 컴퓨터를 끄고 침대에 누워 중얼거렸다.


“전직 장관이라면 유산이 많으려나?”


변호사는 상속받을 규모는 메일로 알려주지 않았다. 내용을 알고 싶다면 연락을 하라는 것 같았다. 넷플릭스에서 본 한국드라마 주인공들은 저마다 ‘출생의 비밀’을 안고 있었다.


“출생의 비밀이라……”


그런 것이 현실에서 있을 리는 없지만, 꽉 막힌 직장과 도망가고 싶은 전 약혼자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친구가 있는 나라라면 잠시 떠나는 것도 좋은 선택 같았다. 지현은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에 앉았다.


“답장이 늦었습니다. 변호사 님의 메일에 대해 생각할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지현은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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