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언어의 끝>
<<베를린 근교 옛 신학 도서관의 버려진 서고에서 한국어와 독일어가 혼용된 논문 및 책 이 발견되었다. ‘O Jäbohn/1927, Heidelberg’라는 서명이 적힌 논문에는 언어를 통한 정신의 독립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알려졌다. 비교적 온전한 상태로 보존된 것으로 알려진 두 자료는 즉시 베를린 대학 도서관으로 옮겨졌으며, 그곳에서 연구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베를린 대학의 언어학자들은 “이 원고는 비트겐슈타인 사상의 동양적 변주로 볼 수 있다”라고 평하며, “1920년대 당시 조선과 일본의 관계를 함께 연구해야만 진정한 의미를 평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 한국과 일본 연구진이 참여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 Tagesspiegel Bezirksausgabe, 20XX 년 11월 07일 기사 중 일부 >>
억울할 정도로 맑은 날씨다. 멍한 표정으로 입을 벌린 채 창 밖을 바라보며 지현은 생각했다.
어젯밤엔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옅은 잠이 들었나 싶을 때면 여지없이 먼 곳에서 천둥이 쳤고, 뒤척이며 애써 눈을 감는 순간이면 내리치는 번개로 창밖이 번쩍거렸다. ‘이 집에 들어온 것이 하늘을 노하게 한 것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렀을 때쯤 잠들었던 것 같다. 종일 이삿짐을 정리하느라 무거워진 몸은 두 시간 남짓한 수면으로는 풀리지 않았다.
카운터에 선 채 설탕을 듬뿍 넣은 에스프레소를 세 모금에 넘기자 직원이 흘끔 지현을 바라보았다. 빈 에스프레소 잔을 버려두고 함께 주문한 카푸치노와 물 잔을 들고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카페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은 없었다. 아직은 이른 것 같은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오는 가게 안에는 헤드폰을 낀 채 노트북으로 작업을 하는 여자가 하나, 외투도 벗지 않고 잔뜩 웅크린 채 책을 읽고 있는 남자가 한 명 있었지만 지현과 약속이 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언어의 뿌리에서.”
지현은 흐릿하게 인쇄된 종이 속 독일어를 우리말로 옮겨 중얼거렸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 베를린 대학의 문서고에서 일부를 복사해 가져온 것이었다. 엉성한 표지 뒷 장에는 <Aus der Wurzel der Sprache>라고 적혀 있다. <O Jäbohn>이라는 저자의 이름도 낯설었다.
지현에게 이 문서를 부탁한 것은 C출판사에서 인문학 파트를 맡고 있는 편집자였다. 3년 전부터 지현은 C출판사와 ‘위르겐 하버마스’ 전집을 번역, 출판하는 작업을 진행했다. 총 10권으로 기획됐던 전집을 2권까지 발행한 후 반응이 좋지 않아 다음 작업이 연기된 상태였다.
이달 초, 1920년대 독일에서 활동하던 한국인들이 펴 낸 잡지가 문서고에서 발견되었다는 단신이 지역 신문에 실린 적이 있었다. 어떻게 그 작은 기사가 한국에까지 알려졌는지는 모르겠지만 편집자는 지현에게 그 잡지를 알아봐 줄 수 없겠냐고 연락을 해왔다. 원본을 볼 수 있다면 좋겠지만 복사본만이라도 가능하겠냐는 것이 편집자의 요청이었다.
“그 옛날 잡지의 편집자는 오재봉이라는 사람이에요. 그 사람의 논문도 아마 이번에 같이 발견된 것 같아요. 함께 찾아봐 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이유는 설명하지 않았지만 꽤나 간절한 어투로 편집장은 지현에게 부탁했다. 지현이 베를린 도서관의 서고 담당자를 메일로, 전화로 결국 찾아가서 설득한 결과물이 지금 테이블 위에 놓여 있었다. 부탁을 한 편집자는 자신의 동료가 직접 사본을 받으러 갈 것이라고 말했다. 잡지의 표지와 석 장정도의 내용, ‘O Jäbohn’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는 논문 표지와 머리말이 편집자의 동료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라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슬림 핏의 청바지에 짙은 회색 터틀넥 스웨터, 회색 캐시미어 코트를 입고 갈색 가죽 가방을 멘 남자가 문 앞에서 안 쪽을 훑고 있었다. 얇은 금테 안경 뒤의 눈이 지현과 마주치자 남자의 표정이 환해졌다.
“윤지현 씨 맞으시죠?”
성큼성큼 다가온 남자를 멍한 표정으로 바라보다 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출판사 편집자보다는 잡지 속 등장인물과 더 가까울 것 같은 남자가 손을 내밀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곱슬머리를 찰랑이는 남자의 손은 따뜻했다.
“오경혁이라고 합니다.”
악수를 한 경혁이 코트 안쪽에서 명함을 꺼내 내밀었다. 명함을 받는 지현의 손이 떨렸다. 지현이 명함을 보는 동안 경혁은 외투를 벗어 나란히 놓인 의자에 걸친 후 카운터로 걸어갔다.
‘C출판사 편집장 오경혁’이라는 이름이 쓰여 있기도 했지만, 명함을 뒤집자 ‘작가, 역사 스토리텔러 오경혁’이라는 또 다른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아마 오경혁은 몇 가지 얼굴을 가지고 살고 있는 사람인 듯했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얼음이 담긴 물 잔이 든 쟁반을 내려놓는 경혁에게서 옅은 우디향이 났다. 지현은 보고 있던 복사본을 경혁에게 내밀며 물었다.
“독일어를 아세요?”
경혁은 복사본에 눈을 고정한 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전혀요. 하지만 이 이름은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오재봉이라고 쓰여 있는 것이 맞죠?”
O Jäbohn’이라고 적힌 부분을 손으로 집으며 경혁이 물었다. 지현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 가져올 수 있는 방법을 지현 씨가 알려주실 거라고 믿고 싶어요. 어때요?”
“쉽진 않을 것 같아요. 하지만 가져오고 싶어 한다면, 독일 사람들은 이렇게 묻기 시작할 거예요. 왜 이걸 가져오고 싶은 거죠?”
“좋습니다. 1919년 조선에서는 3.1 운동이 있었어요. 3.1 운동이라고 하지만 3월 1일 하루만 일어난 것은 아니죠. 3월 1일 전부터 꿈틀대던 어떤 기운이 3월 1일에 화산처럼 터진 후 그 거대하고 담대한 움직임은 한동안 멈추지 않았죠. 조선도 독립할 수 있다는 막연한 느낌이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 사이에 자리 잡았다고 할까요?”
“역사에 대해 잘 아시네요?”
“그런가요? 그러고 보니 윤지현 씨는 독일에서 태어나서 계속 살았다고 하시던데 맞습니까? 3.1 운동에 대해서는 알고 계시죠?”
“몰라요. 한국에 대해 아는 것은 거의 없어요. 한국말을 할 줄 알뿐.”
내내 웃는 얼굴이던 경혁의 표정이 순간 굳어졌다. 커피를 한 모금 마신 뒤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말을 시작했다.
“정해원 선생님의 따님이시라고 들었습니다. 맞죠?”
“맞아요. 엄마를 아시나요?”
“아는 것은 아닙니다. 선생님이 번역하신 책을 읽었고, 번역 작업하시는 동안 주고받은 편지들을 읽은 정도입니다. 선생님이 한독문화언어진흥회를 통하긴 했지만 결국 저희 출판사와 계속 일을 하신 것이기 때문에 일에 관련된 편지들은 회사에 아직 남아 있어요. 길지 않은 편지지만 굉장한 문장가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엄마는 번역일을 좋아하시면서 동시에 괴로워하셨어요. 거짓말 보태지 않고 말씀드리는 거지만 정말 단어 하나하나를 수십 번 썼다 고쳤다 반복했죠. 아마 그 문장에 어울리는 가장 적확한 단어를 찾고 싶으셨던 것이겠죠. 인간은 모두 언어를 사용한다고 할 수 있지만 또한 개별적인 인간은 어떤 구체적인 언어 체계 안에서만 생각하고 느낄 수 있는 존재니까요. 독일말을 한국말로 등치 할 단어가 있다면 행운이지만 그렇지 못한 단어가 무궁무진해요. 엄마는 가장 비슷하게, 근접하게 그 말을 전달해주고 싶어 했어요.”
“알아요. 선생님의 책을 읽다 보면 느낄 수 있어요. 그래서 전 역사에 관해서도 충분히 비슷한 관점을 가지고 계셨을 것이라고 짐작했어요.”
“엄마가 한국어를 사랑한 것에 비하면 한국은 그렇지 않았어요. 한국에서 생활한 이야기를 해 주신 적도 없어요. 역사에 대해서는 더더욱 모르고요. 독일 수업 시간에 배운 것이 전부예요. 한국은 일본의 식민지가 되었던 적이 있다, 이 정도?”
“저 논문을 쓴 사람은 오재봉이라는 분입니다. 1902년생입니다. 1922년 일본 경성제국대학교 영문과를 다녔어요. 1919년의 거대한 물결을 오재봉도 경험했으니, 일본에서 있는 시간이 그리 즐겁지는 않았을 겁니다.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가 독립의 염원을 품은 채 일본에 있는 것이 쉽지 않았겠죠. 오재봉은 1924년 대학을 중퇴하고 독일로 유학을 떠납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1920년대에 독일에 있는 한인이 몇 명이나 됐겠습니까. 하이델베르크에 있던 베를린에 있던 어찌어찌 얼굴을 알고 지냈겠죠. 오재봉은 1927년 베를린의 한인 유학생들과 함께 ‘자유언문회(自由諺文會)’라는 것을 조직했어요. 자유롭게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니, 멋지지 않습니까? 당시 일본말을 사용해야만 했던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 입장에서는 말이에요. 자유언문회는 한글과 독일어 두 개의 언어로 된 책을 만들었습니다. <언어와 해방>이라는 책입니다. 독일어로는 이렇게 쓰더군요.”
경혁이 갈색 가방 속에서 베이지색 가죽으로 만들어진 다이어리를 꺼내 포스트잇으로 고정되어 있는 페이지를 펼쳤다. ‘Sprache und Befreiung’라는 글자를 보고 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자유언문회는 식민지가 된 조국의 현실을 유럽에 알리고 싶어 했어요. 그러자면 언어 그 자체의 이야기로 시작해야 했죠. 일본어를 사용하도록 강제되는 조선인들의 현실을 말하자면 그 방법이 좋겠다고 생각했던 겁니다. 그들은 조선어 그리고 조선어를 사용하는 것이 단순히 언어를 사용하는 것 이상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조선인에게 일본어를 강제하는 것은 일본어로 된 사유체계를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것과 같죠. 즉 조선어를 쓰는 것은 사유의 독립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