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아이를 품에 안고 손으로 머리를 쓸어 정돈해 준다. 여자의 눈길이 사랑스러워 죽겠다는 표정이다. 그렇게 예쁜 아이를 두고 죽으려 했다니 조원구는 여자를 이해할 수가 없다.
“도대체 이런 아이를 놔두고 목을 매려 하다니 이 무슨 독한 짓이오. 여기서 자네가 정말 목을 매고 죽었으면 아이 또한 산짐승의 밥이 될 일인데 어찌 그리 무서운 짓을 하려 했소?”
“아이가 살 복이었으면 어르신 같은 분이 지나가다 거두어 주시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그 복도 없는 년이라면 죽어야지 별수 있겠습니까? 못난 어미 만나 그리된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어차피 저랑 같이 있어도 당장 오갈 데 없는 모녀 굶어 죽게 된 것을요.”
여자가 다시 눈물을 흘린다. 여자의 눈물이 뺨을 타고 흘러내려 아이의 머리카락을 적신다. 조원구는 보다 못해 아이를 받아 안았다. 아이는 사탕을 입에 넣어 준 사람이 좋은지 그의 품에서도 얌전하다.
“네가 윤이냐? 그럼 너도 우리 아이처럼 예쁘게 크겠구나. 어이쿠, 이 녀석 웃는 게 아주 춘향이 저리 가라인데!”
여자가 손등으로 눈물을 쓱쓱 닦더니 그를 보고 싱긋 웃는다.
“어르신 따님은 몇 살이나 되었습니까?”
순간 그는 말을 잇지 못하고 아내와 아이들이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우리 아이는 열 살이었지. 그런데 지금은 저기 있소.”
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을 본 여자가 흑 소리를 내면서 손바닥으로 제 얼굴을 가린다. 조원구는 차마 여자의 사연을 묻지 못한다.
“윤이야, 너 아저씨랑 같이 갈까? 우리 집에는 우리 윤이가 있을 만한 방이 많이 있는데? 어이쿠 이 녀석 또 웃네.”
조원구가 아이를 안고 앞장섰다. 여자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를 따라나섰다. 그는 자기가 집어던진 진달래 가지를 미처 피하지 못하고 걸어 나갔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진달래꽃이 발에 밟혀 으깨어졌지만 아이를 안고 있느라 미처 살필 겨를이 없었다. 모퉁이 하나만 넘으면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지만 여자와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갈 수는 없었다. 그는 오늘은 이만 돌아가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색동옷을 입고 붉은 댕기를 맨 윤이가 나부죽이 절을 한다.
“아버지, 안녕히 주무셨어요.”
조원구의 입이 연신 벌어진다. 부옇게 핀 조원구의 얼굴을 본 사람들은 늦장가 들어 아들을 낳더니 열 살은 젊어 보인다고 덕담이다. 겉보기만 젊어진 것이 아니라 그를 치료하던 평양 제일의 양의사는 망가졌던 그의 간이 다시 젊은이처럼 좋아졌다며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었다.
조원구는 의사의 얼굴을 보면서 다시금 아내가 자신을 위해 기울인 노력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조원구의 품에 안긴 아이가 누나를 보더니 그리로 가겠다고 발버둥을 친다. 이제 다섯 살이 된 윤이는 돌 지난 동생에게 제법 누나 노릇을 잘한다.
조원구는 남자로서도 이미 다 되었다고 여기고 있었다. 아내가 죽고 술만 마신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고 여자가 옆에 있어도 별다른 마음의 동요가 일지 않았다. 젊은 여자를 집에 데려다 놓고도 그는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저 아이를 데리고 있는 여자가 험한 짓을 하지 못하게 도와주고 싶었을 뿐이었다.
여자는 밥값을 하겠다며 나서서 그의 밥상을 들이고, 그의 방을 치우며 옷을 챙겼다. 전에 그 일을 하던 행랑어멈은 여간해서 다른 사람에게 그 일을 내줄 사람이 아니었는데 어쩐 일인지 여자에게는 선선히 일을 맡겼다. 조원구는 그 일을 누가 하건 상관없었지만 여자가 들락거릴 때마다 방에 남는 젊은 여자의 낯선 살 내음에 잠깐씩 손끝이 저릿했다.
여자가 온 지 한 달쯤 되었을까 달도 숨어 버린 그믐 밤, 그녀가 슬그머니 조원구의 방문을 열었다. 그는 놀라서 내치려 했지만 여자는 말없이 절을 하고 다소곳이 앉은 채 굵은 눈물을 뚝뚝 흘렸다.
“남편 죽고 목을 매려 했던 년을 구해주신 분께 저도 모르게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감히 저 같은 년이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더는 견디기 어려워 이렇게 방문을 열었습니다. 내치신다면 당장 내일 윤이와 함께 떠나겠습니다. 부디 오늘 밤 제 마음만 알아주신다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어르신 밥상을 들고 다니는 것만으로도 기껍게 생각하며 아이 키우고 살겠습니다.”
조원구는 자신도 모르게 들썩이는 여자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어쩌면 아내의 무덤을 찾아가다 딸아이와 이름이 똑같은 아이와 여자를 만난 것은 운명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에 있는 윤이 엄마가 망가진 자신을 구하기 위해 또 다른 윤이 엄마를 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조원구의 품에서 한참을 흐느꼈다. 조원구는 그녀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어서야 겨우 그 울음을 그치게 할 수 있었다.
여자의 옷고름을 풀고 품에 안았지만 술과 상심으로 망가질 대로 망가졌던 그의 몸은 좀처럼 사내구실을 할 만하지 못했다. 민망해진 그가 중단하려 했을 때 여자가 그의 몸을 뉘이고 올라왔다. 조원구는 그날 밤 자신이 다시 태어났다고 생각했다.
아내가 보내준 선물은 그가 살아온 사십 평생을 뒤흔들 만한 것이었다. 여자는 죽음 목적까지 가 있던 그를 살려내 아들까지 낳아주었다. 지금도 그 생각을 하면 아내 앞에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다. 절을 하고 싶은 대상이 윤이 엄마를 보내준 죽은 아내인지 아니면 지금의 아내인지 좀 헷갈렸다. 이왕 하는 거 두 여자 모두에게 절을 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