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쩍 마른 몸에 누렇게 뜬 얼굴의 조원구가 헐렁해진 양복을 입고 비척비척 산길을 올라간다. 그의 손에는 이제 막 피기 시작한 진달래가 한 아름 안겨있다. 올라오는 길에 꽃 핀 것이 반가워 한두 가지 꺾다 보니 어느 사이 한 아름이 되었다.
아내는 진달래 피는 계절이면 조원구 손을 이끌고 이 산으로 올라와 진달래를 따 모으고는 했었다. 봄 냄새 물씬 풍기는 산길 오르며 따 모은 진달래는 두견주가 되고 화전이 되어 그들의 봄밤 운우지락의 벗이 되고는 했다.
검은 나비는 새로운 이야기의 주인이 되라고 충고했지만 이야깃거리는 생기지 않았다. 자기가 죽으면 평양의 노른자위 땅을 차지하게 될 형제들이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꼴이 보기 싫어 살고 싶었지만 분노만으로는 삶의 의미를 찾기 어려웠다.
거울 앞에 서면 자기가 봐도 산송장이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움푹 들어간 눈자위와 생기 없는 표정은 그대로 관에 집어넣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그는 어지간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지 않지만 어쩌다 실수로라도 보게 되면 윤이 엄마 나를 이런 꼴로 놔두지 말고 그냥 데려가시게 라는 말이 저절로 나왔다.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비탈진 산길을 오르자 이마에 땀이 맺히기 시작한다. 윗옷을 벗어 들고 숨을 고른 차에 어디선가 아이 울음이 들렸다. 조원구는 자신이 환청을 듣는 줄 알았다. 이제 하다 하다 별짓을 다하는구나!
이런 산길에서 아이 울음이 들릴 턱이 없으니 이건 틀림없는 환청이다. 귀신에게 씐 것이 아니면 죽을 때가 된 모양이라고 중얼거렸다.
이왕 죽는다면 아내와 아이들 무덤 앞에서 죽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점점 더 가까이 크게 들리는 아이 울음은 무언가 이상했다. 그건 환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리듬감 있고 변화무쌍하게 자지러지는 울음이었다.
조원구는 손에 들고 있던 진달래와 윗옷을 바닥에 떨어트리고 무조건 달렸다. 생각을 하고 자시고 할 틈이 없었다. 소나무 아래 아이가 악을 쓰며 울고 있었다. 아이가 우는 것은 문제가 아니었다. 그 옆에 아이 엄마로 보이는 젊은 아낙이 소나무 가지에 흰색 무명천 그러니까 아이 기저귀 같은 천을 둘러 자신의 목을 걸고 있었다.
“이보시오. 이보시오. 당장 멈추시오.”
조원구는 작은 개울물을 미처 피하지도 못하고 텀벙텀벙 빠져가면서 달렸다. 구두 안에 물이 들어가 찌걱거리는 소리를 냈다. 젖은 바짓단이 다리에 휘감겨 들었지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여자의 몸이 허공에 뜨기 시작했다. 그는 제 몸을 날리다시피 해서 여자의 허리를 잡았다. 여자가 그의 품으로 담쏙 안겨들었다. 그걸 본 아이가 더 악을 쓰며 울었다.
“이보시오, 정신 차리시오. 이보시오!”
조원구가 여자의 뺨을 두드렸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마음이 급해진 조원구는 그녀의 목에 걸려있던 천을 개울로 가져가 물에 적셔 들고뛰었다. 얼굴 위로 차가운 면포가 떨어지자 여자가 가느다란 신음을 뱉었다. 조원구의 입에서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아이를 옆에 두고 도대체 이게 무슨 짓이요?”
여자가 눈도 뜨지 못한 상황에서 조원구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버럭 질렀다. 여자는 겨우 숨을 토해내는 듯하다가 그의 호통에 움찔했다.
아이는 아직도 악을 쓰며 울고 있다. 여자는 눈을 뜨자마자 조원구의 품에서 벗어나 아이를 향해 기어가기 시작했다.
“윤이야, 윤이야!”
여자가 아이를 품에 끌어안고 손을 옷 속으로 집어넣었다 꺼내자 거짓말처럼 울음이 뚝 그쳤다. 아이가 울음을 그치자 이번에는 여자가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 시작했다.
“뉘신지 모르오나 저는 그냥 죽게 놔두시고 아이나 거두어 주시지 그러셨어요. 저 같은 년 살아서 무엇하라고 우리 윤이나 거두어 주시지.”
여자가 윤이라는 말을 하자 조원구가 화들짝 놀라 아이를 다시 한번 쳐다보았다. 얼마나 울었는지 얼굴이 퉁퉁 붓고 코가 흥건하게 나와 입술로 흘러내렸다. 아이는 혀를 날름거리며 콧물을 빨아먹는다. 여자가 제 얼굴을 덮었던 흰 천을 손으로 돌려 짜더니 아이의 얼굴을 훔쳤다. 아이가 그게 싫은지 몸을 빼며 비튼다.
조원구는 그때 자기 주머니에 박하사탕이 하나 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가끔 입이 너무 말라서 사탕을 볼 때마다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아이 입에 사탕을 넣어 주자 방끗거리고 웃는다.
“아이 이름이 윤이요?”
“예, 이윤이라고 합니다.”
“어허, 내 여식 이름과 똑같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