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현준이 핸드폰을 도둑맞았다. 그리고 그 핸드폰에 있는 몰카와 사진을 본 소매치기가 놀라서 경찰에 신고해 버렸다. 경찰은 차현준의 집을 압수수색했고 거기서 다량의 USB를 발견했다. 물론 유영하와 강우혁이 등장하는 USB는 제일 먼저 파기되었다.
차현준의 이중생활은 낱낱이 까발려졌고 그동안 숨어있던 피해자들이 증언을 시작했다. 그중에는 이가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당시 미성년자였던 이가영이 어떻게 당했는지 그리고 그녀를 구해주었던 강우혁에 대해서도 모두 알려졌다.
“네가 이렇게 해결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역시 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차현준이 마스크를 쓴 채 경찰차에 오르는 장면이 하루 종일 방송되고 있었다. 우혁은 뉴스에서 보는 차현준도 꼴 보기 싫어 리모컨 전원 버튼을 눌러버렸다.
“유영하를 움직이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대단해.”
우혁이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않고 자꾸 시계만 보던 민석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얼른 일어서. 비행기 출발한다고.”
“차현준이 저 자식 나한테 찾아왔던 거 알아? 누구냐고. 누가 자기를 치고 있는 거냐고 소리 지르더라.”
“강우혁!”
민석이 언성을 높이며 차 키를 집어던졌다.
“빨리 가! 가서 서아 씨 잡아.”
우혁은 키를 집어 들어 테이블에 올려놓고 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아 그냥 가게 내버려 두자. 더 이상 걔 인생에 끼어들어서 복잡하게 만들기 싫어.”
“아, 진짜. 이제 다 해결됐는데 서아 씨를 저렇게 그냥 보내겠다고? 네가 그러고도 잘 살 수 있을 것 같아?”
“맞아. 자신 없어. 자신은 없는데 그래도 서아를 위해서는 그냥 보내주는 게 맞는 거 같다.”
“어우 답답해. 미치겠다. 알았으니 이거나 봐라.”
민석이 자리에서 일어서며 대본을 내밀었다.
“이건 뭐야?”
“집행자 시즌 투야. 인기가 너무 좋아서 시즌 투 제작한다고 했었잖아. 대략 나온 시놉인데 네가 당연히 하는 걸로 나와 있더라. 어쩔 거야?”
“해야지. 서아도 없는데 일이라도 해야지. 아무거나 다 할 거니까 일이란 일은 죄다 가져와. 당분간 잠잘 시간도 없이 살고 싶다.”
민석은 뭔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듯 입술을 달싹거리더니 주먹으로 가슴만 치고 나가버렸다. 민석의 차가 집을 떠나는 소리를 들은 우혁이 불안한 듯 거실을 서성거렸다. 아직 두 시간 남았다. 서아의 비행기 출발 시간이 여섯 시니까 다섯 시까지만 가면 서아가 들어가는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세 시니까 시간은 충분하다. 서아를 붙잡지는 않을 테지만 가는 모습은 볼 수 있을 것이다. 주먹을 움켜쥐고 발에 힘을 주던 우혁이 결국 차 키를 집어 들고 뛰쳐나갔다. 속도 내기 제일 좋은 차에 시동을 걸고 내 달렸다.
출국장을 향해 뛰어 들어가는 순간 자신이 마스크는커녕 모자조차 쓰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금 공항에 서아가 있다면 그녀 혼자만으로도 사람들의 시선을 끌 것이다. 서아는 더 이상 일반인이 아닌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우혁은 설명할 필요 없는 강우혁이다.
강우혁과 은서아의 이혼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아무리 서아의 엄마가 사고를 쳤다고 하지만 그것 때문에 이혼이라니 강우혁이 너무 치사하다는 의견이 많았다. 하지만 돈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문제로 이혼한다는 우혁의 입장을 믿어주는 팬들이 더 많았다.
두 사람의 이혼에 대한 관심은 이주를 넘기면서 시들해졌고 한 달을 넘기자 연예인의 이혼은 그 또한 스펙이라는 식으로 넘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부인이 출국하는 공항에 헐떡이며 나타난 강우혁을 보면 네티즌들이 어지간히 입방아를 찧을 것이다.
우혁은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이 없었다. 그저 떠나는 서아의 뒷모습을 한 번만이라도 훔쳐보고 싶을 뿐이었다. 쓸쓸하게 떠날 서아를 생각하자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공항에는 서아를 배웅하러 나온 사람들이 한가득이었다.
결혼식에서 서아의 도우미를 했던 세진과 채영, 민석과 달콤한 너의 맛 시절에 생긴 팬클럽 회장까지 한 무리의 사람들이 서아를 배웅하기 위해 모여 있었다. 서아는 그 사람들을 일일이 안아주며 작별 인사 중이었다.
우혁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가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렸다. 그리고 서아를 배웅하던 사람들도 주변의 술렁거림을 느끼고 우혁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제기랄.”
우혁은 자기도 모르게 욕설을 내뱉었다. 얼굴을 가리고 올 정신도 없었으면서 서아를 보내겠다고 너 지금 뭐 하는 거니?
배웅 나온 사람들의 시선이 모두 우혁에게 쏠리고 나서야 서아가 고개를 돌렸다. 서아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서아가 조그맣게 입을 벌려 혼잣말처럼 우혁 오빠라고 중얼거렸다. 우혁은 들리지 않았지만 입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우혁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였다. 성큼 걸어가 서아 앞에 서든지 아니면 뒤돌아서서 도망가든지. 두 가지 중 무엇을 선택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는 사이 서아가 먼저 움직였다. 서아는 우혁을 아주 잠깐 바라보았을 뿐 곧바로 몸을 돌려 출국 게이트를 향해 걸어 들어갔다.
당황한 민석이 서아의 곁으로 다가가 팔을 잡았지만 서아는 부드럽게 그 팔을 뿌리치고 민석의 손을 움켜잡았다. 민석은 서아에게 무슨 말인가를 듣더니 그녀를 잡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췄다. 민석이 아쉬운 눈빛으로 굳은 듯 서 있는 우혁을 바라보았다. 여기저기서 카메라 셔터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서아가 그렇게 떠났다.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한 채 민석과 채영이 다가와 우혁의 양옆에 서서 그를 잡아끌었다. 우혁은 그들이 이끄는 대로 허우적거리며 공항을 빠져나갔다.
민석도 채영도 우혁에게 말을 시키지 못했다. 우혁은 마치 껍데기만 남은 사람처럼 흔들흔들 걸어 차에 올라탔다. 보다 못한 민석이 자신이 타고 왔던 차 키를 채영에게 넘기고 우혁을 운전석에서 끌어내렸다.
“정신 차려. 네가 선택한 일이야. 네가 서아 씨를 버려도 서아 씨는 언제까지 너를 기다려줄 줄 알았냐?”
민석은 그 말을 해놓고 아차 싶었다. 불난 집에 기름을 들이부은 꼴이었다. 우혁이 주먹질이라도 하면 달게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우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민석이 시키는 대로 조수석에 앉아 눈을 감았다.
‘차라리 화를 내지.’
민석은 우혁이 화를 내지 않는 게 더 불안해서 집으로 돌아가는 동안 내내 흘끔거리며 그의 표정을 살폈다. 우혁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표정한 얼굴로 눈을 감은 채 가만히 있었다. 잠이 든 것도 아니고 깨어 있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한 시간여를 그렇게 있던 우혁이 눈을 뜨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정말 끝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