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따스하고 말캉한 입술이 서아의 입술에 와서 닿았다. 서아는 놀라서 눈을 번쩍 떴지만 우혁이 손바닥으로 그녀의 눈꺼풀을 다시 내렸다. 거부해야 한다는 걸 알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우혁의 입술은 꽃잎 위에 살포시 내려앉은 나비처럼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익숙하면서도 낯설고 낯설면서도 또 익숙한 그의 입술이 서아의 입술 사이를 파고들었다. 서아는 입술을 굳게 다물어 거부 의사를 밝히려 애썼지만 소용없는 노릇이었다. 부드러우면서도 집요한 그의 입술이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서아의 입술을 열리게 만들었다.
서아의 손이 우혁의 어깨를 움켜쥐고 무릎을 세웠다. 우혁은 강하게 밀어붙였다 느슨하게 풀어주고 끝난 듯하다 다시 빠르게 몰아쳤다.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던 우혁이 마침내 서아를 놓아주고 물러섰다. 서아는 혼미해진 정신을 추스르지 못하고 숨을 헐떡이며 우혁을 바라보았다.
“우린 아직 끝나지 않았어.”
“그건 우혁 씨 생각이지.”
서아는 여전히 들썩이는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말했다.
“방금 그건 뭔데. 내가 중단하지 않았으면 우리는 키스로 끝나지 않았을걸.”
“난 우혁 씨랑 결혼 생활 기간 동안 어른이 되었고 당신과 누리는 시간이 즐거웠어. 지금 내가 반응한 건 그저 몸의 반응일 뿐이야.”
“잘도 둘러대는구나.”
우혁은 서아를 와락 끌어안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서아는 엉겁결에 그의 겨드랑이 사이에 안겨 눕게 되었다.
“자자. 네가 첸한테 나를 재워준다고 했으니까 여기서 잘게. 우리 같이 자자.”
서아가 몸을 일으키려고 했지만 우혁이 강한 완력으로 그녀를 놓아주지 않았다. 몇 번이고 벗어나려 애를 썼지만 그럴 때마다 더 강한 힘으로 그녀를 옭아맸다. 결국 포기한 서아가 그의 품에 얼굴을 묻고 한숨을 쉬었다.
손이 우혁의 가슴 위로 올라가 끌어안은 채 잠을 청했다. 절대 잠이 올 것 같지 않은 상황이었음에도 우혁의 숨소리를 자장가 삼아 잠이 들었다. 생각지도 못한 편안한 잠이었다.
아침에 눈을 뜬 서아는 침대에 혼자 누워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꿈을 꾼 게 아닌가 싶었다. 지난밤 우혁과의 키스도 그의 팔을 베고 가슴에 손을 얹은 채 잠든 게 모두 꿈인 것만 같아 갑자기 울음이 터지려고 했다. 뭔가 알 수 없는 허전함에 울상이 되어 입술을 실룩거렸다.
“뭐야, 꿈이었던 거야? 이럴 줄 알았으면 거기서 멈추지 말고 더 가야 하는 건데 억울해.”
서아가 씩씩대며 일어서다 책상 의자에 걸쳐 있는 우혁의 재킷을 발견했다. 서아는 두근대는 심장을 주체하지 못하고 방문 손잡이를 잡았다.
나가려다 생각하니 그냥 나가면 안 될 것 같아 거울을 봤다. 어제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자는 바람에 얼굴이 엉망이었다. 거울을 보며 대충 머리를 정리해서 묶고 눈가를 닦았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자 우혁이 첸과 함께 식탁에 마주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두 사람에게 다가가자 첸이 먼저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일어났네. 늦은 거 같은데. 어서 학교 가야지.”
“그런데 두 분이 뭘 하시는 거예요?”
“아, 몰랐구나. 여기 이분은 이제 앞으로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될 새 세입자야. 알렉스가 쓰던 방을 쓰게 될 거야.”
“뭐 뭐라고?”
서아가 말을 잇지 못하고 버벅대자 우혁이 서아의 뺨에 가볍게 키스를 했다.
“잘 부탁해.”
“첸, 지금 장난해? 어떻게 내 전 남편을 세입자로 받을 수 있어?”
첸은 난감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
“월세를 서아보다 세배를 준다기에 어쩔 수 없었어. 나는 서아를 참 좋아하지만 방을 세놔서 먹고사는 처지라 어쩔 수가 없네.”
집주인이 세를 놓겠다는데 서아가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이런 식으로 우혁과 같이 살게 되다니 어이가 없었다.
“오빠, 이 집 엄청 불편해. 오빠한테 전혀 맞는 집이 아니야. 수준이 있지 강우혁이 어떻게 이런 집에서 살아!”
“서아,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가만히 듣고 있던 첸이 그렇게 말하면 섭섭하다며 항의했다.
“섭섭해도 어쩔 수 없어. 첸. 나도 첸한테 섭섭하니까.”
서아가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쏘아붙이자 첸이 목을 감춘 거북이처럼 어깨를 움츠렸다.
“애꿎은 첸한테 화내지만. 내가 부탁한 거니까. 그러게 네가 나를 받아주겠다고 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했잖아.”
“됐거든. 저 방에서 우혁 오빠가 살든지 말든지 내가 알 게 뭐야.”
서아는 소리를 버럭 지르고 방으로 들어가 문을 쾅 소리 나게 닫았다. 서아가 방으로 들어간 것을 확인한 우혁이 거듭 첸에게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당신 설득에 넘어가기는 했지만 이게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네.”
첸의 말에 우혁이 입을 꽉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월세를 세배로 주는 것뿐만 아니라 우혁이 왜 서아를 떠나보낼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했다.
첸은 우혁이 로맨티시스트인지 스토커인지 구분하기가 애매하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우혁을 받아 준 것은 서아가 그를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떠난 세입자 알렉스와 같이 가볍게 와인을 마시며 저녁 시간을 보낼 때면 그리움을 토로하고는 했었다.
‘이혼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직 전 남편에 대한 사랑 때문에 괴로워.’
서아는 자신이 그런 말을 했다는 것도 잊어버렸을지 모르지만 첸은 기억하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서아가 화를 내는 게 진심만은 아니라는 것 또한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