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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 연애 세포

by 은예진 Feb 17. 2025

논현동 JK401 사옥에서 은평구 진관동에 있는 카페는 너무 멀었다. 민석은 약속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부랴부랴 자리에서 일어섰다. 구 작가는 무슨 차를 북한산 아래까지 가서 마시자고 하는 건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우혁의 결혼식에서 엉뚱하게 부케를 받은 구 작가는 그 부케를 돌려준다며 JK401까지 찾아왔었다. 


"대표님, 부케 때문에 그날 제가 얼마나 민망했는지 몰라요. 이거 채영 씨한테 돌려주든지 아니면 서아 씨한테 전해 주세요."     


구 작가가 내민 은방울꽃 부케가 결혼식 때와 똑같이 싱싱한 모습 그대로여서 민석이 이건 뭔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민석의 표정을 본 구 작가가 웃으며 설명했다.


"의미 있는 부케를 그냥 말려 버릴 수 없어서 프리저브드 처리했어요. 생화를 영원히 보관할 수 있는 처리 기법이에요."

"아하."


민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하얗고 작은 은방울꽃이 조롱조롱 매달린 꽃가지를 바라보았다. 구 작가가 꽃다발을 민석의 앞으로 쓱 밀어 놓았다. 민석은 자신의 앞에 놓인 은방울꽃을 다시 밀어 구 작가 쪽으로 보냈다. 


"내가 아무리 여자들의 일에 문외한이라고 하지만 받은 부케를 돌려준다는 건 처음 듣는 말입니다. 저한테 이걸 주시는 건 곤란한데요."

"채영 씨 그날 많이 불쾌한 것 같던데……."

"채영이는 자기감정을 그대로 다 노출시키고 사는 애예요. 자기가 받으려고 했던 부케가 엉뚱한 사람한테 갔으니 당황한 거고 당황한 감정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을 뿐이에요. 아마 지금은 다 잊어버렸을 겁니다."

"그럼 정말 이거 제가 가져도 되는 건가요?"

"바닥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보신 분이 별것도 아닌 일에 되게 예민하시네요."


구 작가가 자기 앞에 놓인 은방울꽃 부케를 조심스럽게 집어 들고 어울리지 않게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현장에서 워낙 악바리로 소문나 있던 터라 그런 모습이 어색해서 낯설게 느껴졌다.    


차현준 스캔들이 터지고 제일 미안해한 사람도 구 작가였다. 모르고 섭외했던 거니 부담 가질 필요 없다며 몇 번이나 말했지만 결국 차현준 때문에 우혁과 서아가 이혼한 거 아니냐며 울먹거렸다. 그러고 한동안 연락이 뜸하던 구 작가가 갑자기 뜬금없이 전화해 밥을 사달라고 했다.


뭔가 있는 것 같았지만 밥을 먹으며 해야 할 이야기라고 고집을 피우는 탓에 약속을 잡았다. 약속 장소가 북한산 자락이라니 업무상 만나는 것도 아닌데 너무 멀리 가야 해서 살짝 짜증이 났다. 


은평 한옥마을 초입에 있는 건물이었다. 건물 자체는 한옥 마을의 분위기와 다르게 평범했다. 막상 오 층에 있는 카페 문을 열자 깜짝 놀랄 만큼 아기자기한 한옥 내부 풍경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커다란 통창으로 북한산과 한옥 마을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평일 오후 시간의 데이트를 즐기는 몇몇의 커플이 나란히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연애를 언제 해 봤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카페 안에 있는 커플들을 보자 손발이 오그라드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연애를 너무 오래 안 해서 연애 세포가 모두 죽어버린 모양이었다.  


커플 사이에 혼자 앉아 책을 보고 있던 구 작가가 민석을 보더니 반가운 표정으로 손을 흔든다. 민석은 이런 곳에서 구 작가를 보자 조금은 어색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멀리 오시라고 해서 죄송해요. 저는 요즘 핫하다는 데이트 장소는 일부러 찾아다녀야 해서 여기까지 왔어요.”

“아하, 그렇군요.”


민석은 그제야 조금은 이해가 돼서 구 작가 앞에 마주 앉았다. 평일 오후인지라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고 그나마 있는 손님들은 모두 커플이었다. 나란히 앉아 애정행각을 일삼는 커플 사이에 끼어 마주 보고 앉은 두 사람은 심하게 어색했다.


민석이 주변을 둘러보고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여기는 왜 다들 마주 보지 않고 나란히 앉아있는 거죠?”

“장 대표님 연애해 본 지 오래되셨구나?”


에두르지 않고 치고 들어오는 구 작가의 질문에 민석이 당황해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너무 긴장하지 마세요. 저도 마지막 연애가 너무 오래돼서 기억도 안 나요. 차현준 같은 애나 좋아서 어쩔 줄 몰라했으니 한심하지요.”

“너무 자학하지 말아요. 누군들 그 선하고 착해 보이는 얼굴 속에 숨겨진 악마 같은 본성을 알았겠어요.”

“그래도 이 바닥에서 이 정도 굴렀으면 알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구 작가가 앙금 절편을 포크로 찍어 먹으며 말했다. 구 작가는 절편의 맛이 괜찮은지 민석에게도 먹어 보라며 

포크에 찍어 내밀었다. 민석은 그런 구 작가의 모습이 낯설어 민망했다.


“글쎄요. 아무리 연예인을 많이 상대해 봤어도 작정하고 숨기는 모습을 어떻게 보겠어요. 그건 어려울걸요.”


민석의 말에 위로받은 듯 배시시 웃던 구 작가가 갑자기 생각난 듯 손바닥으로 허벅지를 쳤다.


“참, 저 아주 이상한 소문을 들었어요?”

“무슨 소문요?”

“이혼한 강우혁과 은서아가 파리에서 동거하고 있다는 소문요.”

“그래요? 나는 금시초문인데.”


민석이 시치미를 떼자 구 작가가 빙글빙글 웃으며 갑자기 얼굴을 민석의 턱밑으로 바짝 들이댔다.


“제가 차현준한테는 속았지만 장 대표님한테는 안 속아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지금 장 대표님 얼굴에 쓰여 있어요. 구 작가가 이걸 어떻게 알았지? 망했다.”


민석이 웃음을 터트렸다. 너무 정확해서 뭐라고 핑계 댈 말이 없을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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