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가 어디에?”
서아가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묻자 직원이 곁에 딸린 문을 열고 아기 침대가 몇 개 나란히 있는 작은방으로 안내했다. 침대는 몇 개 있었지만 아기는 한 명뿐이었다.
서아는 어둑한 방을 환하게 빛내는 것만큼 뽀얀 아기의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랐다. 곤히 잠든 아기의 이마와 앙다문 입술, 발그레한 뺨에서 우혁의 이미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세상에…….”
“저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닌 모양이에요. 정말 아빠 닮았지요?”
“그러게 말이에요. 세상에 어쩌면 이렇게 아빠를 닮을 수 있지요?”
아기를 본 서아가 신기한 듯 고개를 들어 우혁을 바라보았다. 우혁은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세 사람이 아기를 들여다보는 것을 느꼈는지 아기가 미간을 찡그리더니 눈을 반짝 떴다. 순간 우혁은 숨이 멎는 것만 같은 느낌에 아기의 눈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진짜 닮았네.”
“그렇지? 진짜라니까. 세상에 이 아기는 원래 오빠 아기인가 봐.”
아기는 사람들이 자기를 들여다보고 있는 걸 보더니 울지도 않고 생긋 웃었다. 담당 직원은 손을 아기 허리 밑으로 집어넣어 안아 올렸다.
“자, 엄마가 먼저 안아보는 게 좋겠지요.”
아기를 직원에게 넘겨받아 가슴에 안자 들큼한 젖 냄새가 났다. 아기는 엄마랑 눈을 마주치려 애를 쓰는 것 마냥 서아를 빤히 바라보았다.
“아기야, 고마워. 내 아이로 와줘서 정말 고마워.”
서아가 아기를 품에 안은 채 뺨을 아기에게 대며 속삭였다. 우혁은 그런 서아의 어깨를 감싸 안으며 그녀와 아기가 같이 품에 들어오도록 했다.
세 사람의 모습을 본 담당 직원이 흐뭇한 듯 미소를 지으며 바라보았다. 부모의 탄생이었다.
서아는 지우를 흔들 침대에 뉘어 놓은 채 꾸벅꾸벅 졸았다. 민석이 말하기를 백일 전까지는 아기들이 밤낮이 바뀌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했다. 다행히도 쌍둥이들은 한 달 만에 수면리듬을 찾아 재우는 거 가지고는 그렇게 고생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지우는 백일이 가까워져 오는데도 새벽 네 시가 넘도록 잠을 자지 못하고 보챈다. 저도 잠들지 못하는 게 힘든지 밤새 안아달라고 칭얼거린다. 처음에는 안아주다 지치면 이렇게 흔들 침대에 뉘어 놓는다.
“지우야, 너 시차 적응되지 않아서 힘든 거 알겠는데. 이쯤 되면 이 세상에 적응할 때도 되지 않았니? 다음 주면 백일이야!”
서아가 하소연하듯 중얼거리며 소파에서 잠든 우혁을 바라보았다. 서아와 우혁은 격일로 지우를 보는데 오늘은 서아 차례였다. 자기 당번 아닐 때는 편하게 자라고 서아가 들여보냈지만 우혁은 말을 듣지 않고 기어코 모자 옆에서 잠을 청했다.
“저기 아빠 자는 거 보이지? 우리 지우도 아빠 따라서 코 자자.”
지우가 갑자기 딸꾹질을 했다. 도우미 아주머니가 아기가 추우면 딸꾹질을 한다고 했던 게 생각나 기저귀를 들춰보았다. 언제 오줌을 쌌는지 기저귀가 흠뻑 젖어 있었다.
“어이쿠, 우리 지우 오줌 싸서 추웠어요? 엄마가 기저귀 갈아줄게요.”
지우의 기저귀를 갈아주고 등이며 배를 한 번씩 쓰다듬어주었다. 아기와의 스킨십은 아무리 많이 해도 과하지 않은 일이었다. 기저귀를 갈자 기분이 좋은지 아기가 입을 벌리고 해죽 웃는다.
“이 녀석, 엄마 혼을 쏙 빼놓는 백만 불짜리 미소를 짓네.”
지우를 다시 흔들 침대에 올려놓자 아기가 살포시 눈을 감았다. 서아는 떨리는 심장을 움켜쥐고 ‘제발, 제발’이라고 중얼거렸다. 매일 네 시는 되어야 잠이 들던 지우가 오늘 처음 한 시에 눈을 감았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잠이 든 게 틀림없었다.
잠든 아기의 모습은 언제나 천사 같지만 오늘처럼 예뻐 보이는 날은 없었다. 서아는 재빨리 몸을 돌려 소파에 누워서 자고 있는 우혁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여보, 지우가 잠들었어.”
“으응?”
놀란 우혁이 눈을 부스스 뜨며 서아를 끌어안았다.
“아직 한 시밖에 되지 않았는데 지우가 잠들었어.”
서아는 우혁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소곤거렸다. 갑자기 눈을 번쩍 뜬 우혁이 고개를 숙여 서아를 향해 물었다.
“정말? 정말 지우가 잠들었어?”
서아가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속삭였다.
“정말이라니까. 조용히 해.”
“와, 대박이네. 이게 얼마 만이냐.”
“지우 우리 집에서 이렇게 일찍 잠든 거 처음이야. 이제 시차 적응하는 모양인데.”
우혁이 서아를 와락 껴안고 힘을 주며 말했다.
“다행이다. 우리 이제 밤에 같이 잘 수 있게 되는 거야?”
“글쎄요. 내일 되어 봐야 알겠지?”
“그동안 지우 보살피느라 우리가 서로를 너무 보살피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서아가 입을 다문 채 키득키득 웃었다. 우혁은 그렇게 웃는 서아의 입술을 자신의 입술로 덮으며 허리를 껴안았다. 서아의 고개가 뒤로 젖혀지며 몸에 힘이 빠졌다. 아기를 깨우지 않기 위해 조심스럽게 움직일수록 심장은 더 빠르게 뛰었다.
아기도 자고 아기 엄마 아빠도 모두 잠든 밤이었다. 그 밤 서아는 꿈에 치마를 넓게 펼쳐 잡은 채 물속에 들어가 있었다. 어디선가 분홍빛 커다란 연꽃이 두둥실 떠내려 와 그녀의 치마폭을 향했다. 서아는 치마폭 안으로 들어온 연꽃을 재빨리 감싸 안고 꼭꼭 여몄다. 갑자기 가슴 가득 향긋한 냄새가 차오르며 행복감이 밀려들었다.
서아는 잠결에도 좋다는 말을 반복하며 우혁의 목을 감싸 안고 매달렸다. 새벽녘에 혼자 깬 서아는 꿈의 여운에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참을 그렇게 있던 서아는 흔들 침대로 다가가 잠든 지우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꿈이 너무 선명해서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지우야, 설마 이게 우리 지우 동생 생기는 꿈은 아니겠지.”
만약에 이 꿈이 태몽이라면 그 아이는 지우가 보내준 선물이겠구나 싶었다. 아기는 자면서도 기분이 좋은지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끝
그동안 부족한 이야기를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합니다. 출간되지 못한 아픈 손가락이지만 쓰는 동안 유난히 열심히 살았던 기억이 겹치는 소설입니다. 처음부터 이 소설은 출간이 어렵겠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끝을 보겠다는 마음으로 밀고 나갔고 그 과정이 행복했습니다. 열심히 한다고 결과가 좋은 게 아니라는 걸 그때 알았습니다. 열심히 하는 게 아니라 잘해야 하는 걸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비록 완성도는 떨어지지만 여기서 읽어주시는 몇몇 분들과 소통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다시 한번 고개 숙여 감사 인사드립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