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나를 달래주는 것이라면 그게 무엇이든

by Rooney Kim




지난 2~3년 간은 가족들의 크고 작은 건강 문제로 온 가족이 나서서 서로 케어하며 따뜻한 가족애를 느낀 기간이었다. 다행히 모두 건강을 회복하셨고 다시 건강한 일상을 부지런히 살아가고 계신다.


건강에 관련해서는 그게 심각한 질병이든 시간이 조금 걸리면 해결되는 것이든 신경을 쓰며 시간과 에너지를 투여해야 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는 당연히 가치 있는 일이며 가족이라면 해내야 할 도리다.


하지만 그럼에도 몸과 마음이 힘들 때가 있다. 이 기간에는 빠반인도 애정하던 ‘스타, 콘텐츠’에 대해서는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나와 가족의 건강이 우선이고 건강해야 그것을 기반으로 삶이 나아가고 취향과 취미를 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에너지를 채워주는 향


이년 반 전이었다. 며칠 째 병원에서 아빠를 간호하던 시기였다. 힘들진 않았다. 살아오면서 아빠와 단둘이 이렇게까지 오래 같이 있었던 적이 있나 싶을 정도였다. 함께 있는 시간이 많다 보니 이런저런 살아온, 살아가시는 이야기를 두런두런 많이 나눴다.


아빠와 엄마는 내가 중3 때 이혼하시고 지금까지 평생을 각자 홀로 살아오셨다. 엄마야 나와 형이랑 같이 오래 살았으니 좀 덜하셨겠지만, 아빠는 정말 이후로 25년 이상을 혼자 지내셨을걸 생각하니 그 외로움과 공허함이 얼마나 컸을까 하는 생각에 새삼 울컥해졌다.


가족의 건강에 문제가 생기는 건 힘든 일이다. 이를 간호하느라 몸도 지치겠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마음도 아프고 지칠 수 있다. 그렇게 병원에서 아빠를 간호하던 어느 날, 병실 내에 있는 샤워실에서 몸을 씻으려고 바디 워시를 꺼냈다.


안타까운건 내게 힘을 준 이 브랜드가 한국에서도 철수했고 어쩌면 브랜드의 향방도 불투명해졌다고..


예전에 호텔에 갔을 때 어매니티로 나왔던 바디워시 (아뜰리에 코롱의 뽀멜로 빠라디)였다. 뚜껑을 열고 샤워 브러시에 짜냈다. 그리고 곧 거품을 내는 순간 자몽 특유의 시원한 시트러스 향이 코를 통해 뇌에 강하게 반응하며 뇌리에 꽂혔다. 산뜻하고 신선한 향이 측두엽(후각, 청각 담당)을 지나 전두엽(기억, 창의력 등 종합 판단)으로 옮겨가는 순간, 울적하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기분이 들더니 갑자기 정신이 맑아졌다. (광고 아님. 아무튼 아님)


뭐랄까, 스트레스가 풀리는 느낌이랄까? 그렇게 리프레시한 기분으로 샤워를 하고 나오니 세상이 달리 보였다. 힘이 났다. 에너지를 얻은 것 같았다. 여자들이 왜 이렇게 향수를 좋아하나 했더니 향을 맡을 때마다 이런 기분이라면 100ml에 20만 원을 주고도 향수를 사는 게 충분히 이해된다.


가족들을 케어하느라 잠자고 있던 나의 빠반인 본능은 또 이렇게 ‘제품’ 분야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당장 휴대폰의 메모앱에 해당 제품을 적어뒀다. 나의 연말 쇼핑 목록에는 아뜰리에 코롱의 뽀멜로 빠라디 향수 100ml가 기록되었다. 이후로 이 향수를 약 2년 가까이 쓰는 중이다. 여전히 이 향은 질리지 않고 내게 힘을 준다. 빠반인으로써 애정하는 향이 생긴다는 건 참 좋은 일이다.


마음을 달래는 음악


엄마의 건강 문제로 엄마가 잠시 우리 동네 오피스텔에 머무실 때가 있었다. 매일 퇴근하고 엄마 오피스텔에 먹을 것과 입을 것 등등 필요한 것을 나르던 일상이 계속됐다. 사실, 그런 육체적인 힘듦은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그저 엄마의 건강과 마음이 우려되어 나 역시 정신적으로 스트레스를 받던 시기였는데 그런데 나도 그게 스트레스인지는 몰랐던 거다. 돌이켜보면 그 시기가 심적으로 가장 가슴 아프던 시기였다. H&M 매장에 엄마가 간단히 입으실 만한 실내용 겉옷을 사러 갔었는데 매장에서 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아련한 음색을 가진 경쾌하지만 슬픈듯한 단조의 멜로디컬 한 보컬라인과 음악. 내 귀는 당장 이 노래에 끌렸다. 측두엽(청각, 후각 담당)이 또 발동하며 당장 이 노래를 찾아보도록 전두엽에 신호를 보냈다. 나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네이버의 사운드로 음악 찾기 기능을 켰다. 과연 누구의 어떤 노래일까. 음악이 검색되는 동안 H&M 매장에서 울려 퍼지는 이 노래는 구석에 우겨진 내 마음의 주름을 쫙쫙 펴주기에 충분했다.


검색 결과: Todo Lamento (모든 슬픔), Natalia Lacunza

https://www.youtube.com/watch?v=29OGXBPBj5k


스페인어로 된 이 노래는 나딸리아 라쿤사라는 여 가수의 노래였다. 당장 내 음악 앱에서 해당 가수를 찾아 ‘하트’를 누르고 그녀의 모든 노래를 들었다. 꽤 괜찮은 노래가 많았다.


특히, Todo Lamento는 한국인이라면 대부분이 좋아할 만한 리드미컬한 단조의 노래라 내 정서에도 딱 맞았고 무엇보다 울적했던 나의 기분을 달래고 계속해서 힘을 낼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노래를 검색하자마자 엄마의 오피스텔로 가는 내내 ‘Todo Lamento’를 들었다. 그리고 집에서 샤워를 할 때에도 듣고 쉬는 동안에는 오디오에 연결해서 들었다.


그 노래를 들으면 마음에 위로가 되었다. 우연이지만 마치, 그 노래는 제목처럼 세상의 모든 슬픔을 이 노래에 담아 녹여 없애줄 것만 같았다. 때문에 아렸던 가슴도 조금씩 나아졌다. 그렇게 한 달 내내 나딸리아 라쿤사의 노래를 듣다 보니 그 달, 나는 해당 음악 앱 내 ‘남미 음악 리스너 상위 1%’의 배지를 받았다.


빠반인은 한 번 빠지면 멈추지 않는다. 이후 또 2년에 가까운 시간이 흐르고 있지만 그녀의 노래는 여전히 내 음악 리스트에 있다.


오늘은 아르헨티나에서 사 온 현지 인스턴트커피 중 하나인 'La Virginia'를 꺼냈다. 몇 가지 종류를 사 왔는데 그곳이 커피로 유명한 곳은 아니다 보니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런데 향이 꽤나 진하다. 뜨거운 물에 탔더니 특유의 쓴맛이 딱 라떼로 적합했다. 그래서 얼른 커피에 우유를 넣어 ‘Cafe con leche’(카페라떼)를 만들었다.


왼쪽 '모레니따'는 은은한 향과 쓴 맛이 전혀 없어 물처럼 즐기기 좋고, 오른쪽 '라 버지니아'는 향이 강하고 쓴맛도 괜찮아 라떼로 즐기기에 좋다.


‘어, 이 커피도 괜찮네?’


훌륭했다. 마음에 들었다. 덕분에 아르헨티나에서 공수해 온 알파호르(남미 초코파이)와 함께 ‘내가 잘 산 물건 리스트’가 두터워졌다.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빠반인의 삶은 경제성과 충족성을 동시에 갖춘 나름 합리적이면서도 열광적인 삶이다.


빠반인은 그렇게 여기저기 또 두리번거리며 세상을 탐방한다.
나를 기쁘게 하고 위로하며 달래주는 스타, 콘텐츠, 물건이 또 어디 없나.
있다면 당장 내 삶에 투여된다. 왜냐하면 빠반인은 일단 참지 않으니까.
"




[이미지 출처]

https://www.croket.co.kr/seller/product/6051cc3fbf91134d01be2a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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