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박사가 많다.
당연히 인증받은 교육 기관에서 일정 기간의 학문을 닦고 논문을 검증받아 박사 학위를 수여받은 사람들을 박사라 일컫지만, 우리는 삶 속에서 상식에 능하고 별 걸 다 해결하는 ‘척척박사’ 라거나, 전통과 유행의 맛집 그리고 맛있게 먹는 방법과 요리법 등 먹는 것에 관해서라면 만능인 ‘쩝쩝 박사’, ‘뭐 그런 것까지 다 알아’라는 생각이 들 정도의 ‘잡학박사’ 등등 살아가다 보면 수많은 박사들을 만나게 된다.
한 분야에 그렇게 파고들기 시작한 사람들은 보통 순식간에 빠반인의 경지를 지나 덕후가 된다. 그리고 덕후가 되고 나면 대개 욕심이 생긴다.
‘이 분야에서 공인된 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학위를 따거나 책을 내야겠다!’
만약 그 분야가 ‘괴물 또는 공룡, 곤충’ 등 일반적인 분야가 아닌 특수 취향 분야이고 그와 관련된 학습서와 정보가 충분한 것도 아니라면 조금만 더 파고들면 전문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그게 어떤 분야이든 한 분야에 대한 데이터와 경험이 쌓이면 이제 덕후의 꿈을 펼칠 수 있게 된다.
이런 지식의 정수에는 놀랍도록 깊거나 방대한 지식이 건네주는 신뢰와 호감이 있으며, 퍼즐을 맞추듯 정교하고 개안이라도 한 듯 밝고 맑아지는 지혜의 샘 덕분에 빠져들고야 마는 날카로운 지성이 있다.
바로 다음과 같은 사람들처럼 말이다.
괴물 박사 곽재식 (https://namu.wiki/w/곽재식)
곤충&공룡 박사 김도윤 (http://webzine-ssp.kr/science_people/14)
이들의 시작도 처음엔 호기심과 관심이었다. 그리고 그 장대한 시간의 관심은 오늘날 이들을 전문가로 만든 것이다.
2018년, 나는 아이유 연대기를 시작했다. 빠반인으로써 가장 애정하는 가수인데 어느 날 문득 아이유를 위해 무언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그래서 어차피 난 글을 쓰는 사람이니 그럼 아이유에 대한 ‘연대기’를 써보자라고 결심했다.
그렇게 꾸준히 연재를 하다 보니 어느새 20편의 ‘아이유 연대기’가 쌓였다. 그리고 이는 현재 진행형이다. 어찌어찌하다 보니 ‘아이유 나무위키’에도 등재되었고 아이유 팬들 사이에서는 이래저래 ‘아, 그 나무위키에 아이유 연대기 쓴 사람?’ 정도의 인지도도 생겼다.
앞서 여러 회차에서 밝혔듯 빠반인은 덕후들만큼의 시간과 비용을 들이지 않는다. 물론, 꼭 사야 하는 건 사고 콘서트를 가기도 하지만, 완전히 올인하지는 않는다, 아니, 못한다. 그래서 빠반인인 거다.
대신, 스타나 캐릭터 등을 애정하는 마음은 한결같기에 오히려 다른 방식으로 이를 드러낼 때가 있다. 바로 아이유 연대기처럼. 어쩌면 나도 이를 통해 '아이유 박사’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조금 다른 박사가 되고 싶었다.
‘그 싱글은 몇 월 며칠에 나와서 몇십만 장이 팔렸구요. 그 해 콘서트는 총 00회인데 관객이 총 50만이 넘게 왔구요.’와 같은 박사가 아니라 ‘이 노래는 이런 의미와 상징을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 이런 에피소드가 어울릴 것 같아. 이 가사는 마치 우리의 ㅇㅇ시절을 상징하니까 우리도 더 이 시간을 추억하며 에너지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와 같은 박사 말이다.
콘텐츠의 바다에는 글도 많고 제법 재미있는 글을 쓰는 작가들의 작품들도 많이 매장되어 있다. 그들은 마치 석유처럼, 보석의 원석처럼 해저 2만 리 아래, 아니 10만 리 아래에 묻혀있다. 그중에 내 글도 상당히 많다.
그리고 전국, 전 세계에 점조직처럼 퍼져있는 소수의 원정대는 오늘도 그런 원석을 찾아 잠수정을 타고 작은 불빛에 의지해 깊고 깊은 콘텐츠 심해로의 탐험을 떠난다.
그중 몇몇은 운 좋게 발굴되어 빠반인과 덕후들을 양산하기도 하지만, 대다수는 여전히 심해에 묻혀 다음 차례를 기다리거나 혹은 그렇게 지층에 누적되어 화석이 되어간다.
스타, 콘텐츠, 캐릭터, 기업가, 식품, 현상, 브랜드, 옷, 지역 등등
이 세상에는 자신의 팬들이 되어주길 바라는 것들이 너무나도 많다. 한 사람의 빠반인은 평생을 살아가며 수백, 수천 가지의 물건과 다양한 스타들을 거쳐가며 기꺼이 그들의 빠반인이 되어주고 시간과 적절한 비용을 쓰며 또 그들에게서 에너지를 얻는다.
결국, 공생 관계다.
덕후든 빠반인이든, 무조건 우리가 사랑을 내어주는 것 같지만, 우리 역시 그들의 직간접적인 사랑을 받는다. 정확히는 ‘에너지와 동기 부여’다.
내가 빠반인으로 살아가는 이유는 어쩌면 막연히 평생 기다려야만 할지도 모를 ‘행복’이라는 구름을 뜬구름이 아닌 ‘일상의 행복’으로 누리기 위함이다. 그래서 빠반인은 오늘도 마음이 들뜬다.
오늘 나의 최애는 어떤 퍼포먼스로 눈을 호강시켜 줄까?
최애 캐릭터의 새로운 립글로스가 나왔던데 사봐야지!
ㅇㅇ 나쵸칩의 새 플레이버가 나왔어! 당장 맛보자!
이토록 사소하고, 적당한 시간과 비용만 들여도 행복은 눈앞에, 아니, 당장 내 손안에 있다. 과하지 않아 전문가는 되기 힘들지만, 덕분에 일상은 ‘내 취향과 가족과의 시간’으로 꽉꽉 채울 수 있다.
빠반인의 삶, 어떤가? 사실 한 번 맛보면 빠져나갈 수 없다. 그러니 만약 빠반인이 되어보겠다는 생각이 든다면 이제 ‘사소하게 행복해질 준비’를 하시길. 그럼 내가 곧 달려가 인사하겠다.
빠반인의 세계로 오신 걸 환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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