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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살 도쿄워홀,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

도망쳐서 도착한 곳에, 낙원이란 있을 수 없는 거야.

by 밝을 명 가르칠 훈 Feb 0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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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나는 많이 지쳐있었다.

매일 아침 출근길, 막무가내로 끼어드는 차들 사이에서 느끼는 불쾌한 압박감이 괴로웠다. 시간에 쫓기듯 서두르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 사람들의 이기심이 버거웠다. 불법 주차된 차들 사이로 운전할 때면 누군가 갑자기 튀어나올까 늘 긴장해야 했고, 차량이 밀집한 도로를 피해 신호등 많은 좁은 골목으로 돌아가곤 했다. 운전하는 매 순간이 스트레스였지만, 직업 특성상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에 좋아하는 음악과 영상으로나마 위안을 찾으려 했다. '나만 힘든 게 아니야', '오늘은 그저 피곤해서 예민한 거야'라고 자신을 다독이며 견뎌냈다. 그러다 가끔은 나도 모르게 욱하며 내가 그토록 싫어하던 행동을 하곤 했다. 그럴 때면 자책감에 빠져 방 안에서 홀로 우울해했다. 스스로에 대한 배신감인지 혐오감인지 모를 감정에 사로잡히는 일이 잦아졌다. 걸어다닐 때조차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기가 두려워 누군가와 함께 건너기를 기다리곤 했다. 도로를 바라보는 것조차 공포스러운 순간이 많아졌다.

목수가 되고 싶어 시작한 공사현장 일은, 비록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었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임했다. 천식으로 사회복무요원을 했음에도 꿈이라 믿을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안전에 대한 불안감은 커져만 갔고, 일에 집중하기가 점점 더 어려워졌다. 미등록 외국인 노동자들이 관행처럼 투입되는 현장에서의 위험한 작업들이 두려웠다. 고소작업이나 중장비 사이를 오가는 일은 물론, 그저 현장을 걸어다닐 때조차 늘 주변을 경계해야 했다. 그럼에도 예고 없이 찾아오는 아찔한 순간들을 피할 수는 없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쇳덩이는 흔한 일이었고, 크고 작은 상처들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게다가 다치더라도 제대로 된 보상을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는 나에겐 너무나 버거웠다. 안전 규정과 지침은 있으나 마나 한 장식품에 불과했고, 현장에서는 인간의 존엄성마저 무시되는 듯했다.

안전장비를 착용하고 주의를 기울여도 예기치 못한 사고는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 시작했지만, 그런 각오만으로는 현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일을 그만두기로 결심했다. 끊임없는 불확실성과 위험 속에서 일하는 것에 지쳐버린 것일까.

한국에서의 일상은 불안과 긴장의 연속이었다.

이 모든 것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도망치듯 찾아온 일본에서, 나는 아직 길을 찾는 중이다.

낯선 언어, 낯선 거리, 낯선 사람들. 한국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마음이 앞서 선택한 이곳에서, 나는 예상보다 더 큰 혼란을 마주하고 있다. 지하철 노선도를 볼 때마다 눈앞이 어지럽고, 편의점에서 물건 하나를 사더라도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특히 일본어를 모르는 것이 큰 벽으로 다가온다. 간단한 인사말조차 어색하게 느껴지고, 주변의 모든 간판과 안내문이 수수께끼처럼 다가온다. 때로는 이런 무력감이 한국에서 느꼈던 불안보다 더 크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이 모든 혼란과 불편함이 한국에서 느끼던 그 압박감보다는 견딜 만하다. 적어도 여기서는 내가 서툴러도 된다는 핑계가 있다. 완벽하지 않아도 된다는 위안이 있다.

아직은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지 못했고,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 하지만 이것이 도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이 되기를, 그리고 언젠가는 이 낯섦이 편안함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었다.

오늘은 이러한 것들을 알고 있음에도 한국을 떠난 이유를 다시 떠올려 봐야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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