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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미 Oct 29. 2021

출판의 역사, 거절의 역사

<살아보니, 대만> 출간을 알려 드리며,

 프리챌(freechal)이라는 포털사이트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 커뮤니티를 개설하고 오랫동안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외국인들과의 경험, 외국 생활, 한국어 교육이 핵심이었던 이 글은 비슷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어느 날, 한 남성으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자신은 유명 출판사의 편집인이고 내 글을 책으로 출판했으면 한다고 만나자고 했다. 나는 그를 만났다. 광화문 교보빌딩에 위치한 커피숍에서였을 것이다.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그를, 커피숍에서 찾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그는 교육 관련 도서 몇 권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있었고, 그보다 책을 먼저 알아본 나는 그의 앞에 앉았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고, 그는 내가 쓴 글에 대한 관심을 피력했다. 국내외에서의 한국어 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가 신기했고, 고마웠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해 구체적으로 파악하고 관심을 보인 사람을 그 이전까지 만나지 못해 그랬을 것이다.


 “한 꼭지를 써 주세요.”

 나는 그가 몇 차례 말한 ‘꼭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가 설명을 해주었지만 감이 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내가 써온 글을 한 데 묶으면 되는 게 아닐까, 생각했다. 나는 당시 서울시내 모 대학 부설기관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수업은 오전 9시에 시작되었지만 7시 전에 출근했다. 빈 교실에서 ‘집필’을 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아이는 어렸고, 내가 추가 업무를 할 시간은 이른 시간뿐이었다. 나는 그렇게 ‘미라클 모닝’을 실천하고 있었다. 혹시라도 늦잠을 자게 될까 두려워 자기 전에 물을 한 컵 가득 마셨다. 요의가 느껴져도 참고 잤다. 참지 못해 일어나면 새벽이었고, 나는 자연스럽게 화장실에서 출근 준비를 할 수 있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있다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나는 그렇게 글의 초고를 완성했고, 그 남자에게 연락했다.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메일도 읽지 않았다. 그렇게 한동안 기다리다가 출판사로 직접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은 직원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분, 퇴사하셨는데요.”

 나에게 한 꼭지를 써오라고 요청한 그가 회사를 나갔단다. 믿기지가 않았다. 그래서 내가 갔다. 그의 회사로. 담당자에게 그간의 일들을 말했고, 무엇보다도 내 책을 내야겠다고 했다. 그들은 내게 조용히 말했다. 내 글을 출판해 줄 수 없다고. 그리고 출판사를 떠나기를 종용하며 내게 책 두 권을 건넸다. 책 한 권에서는 해외 견문록을 썼다는 어느 여성이 환하게 웃고 있었고, 다른 한 권에는 유명 소설가의 이름이 또렷하게 박혀 있었다. 어느 쪽에도 나는 없었다.




 2004년에 겪은 이 일은 내가 출판이 무엇인지 알게 된 가장 첫 번째 경험이었다.

 황당했고, 아팠고, 무엇보다도 자신이 비굴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출판이란 거절과 비굴과 동일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인생에 포기란 없다며, 자기 개발서에서 배운 대로 하루 일과를 쪼개가며 아주 충실하게 내 글을 출판할 곳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정말 한 곳도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알아보기도 어려웠다. 나는 얼마 후, 방광염을 앓았기 때문이었다. 미라클 모닝을 실천한다며 매일 밤 터질 듯한 오줌보를 틀어막았던 결과였다.


 내 인생에 진짜 포기란 없다며 내 자신을, 자신이 쓴 글을 다시 보았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보니 그 글은 출판하기에 부족함이 차고도 넘쳤다. 결국 그 해 가을, 동네 글쓰기 교실에 등록했다.


 내 인생에 또 다른 포기가 있어서는 안 된다며 다시 출판을 알아보았다. 내 글쓰기 능력이 부족하니 온전히 내 글만으로 출판을 하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한국어 교재를 집필하기로 했다. 2006년에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한국어 교재를 냈다.


 그 이후로도 몇 해 동안 내 경험을 기반으로 한 책을 내려고 꾸준히 이곳저곳을 두드려 봤으나 허사였고, 그 사이 한국어 교재를 몇 권 더 출판할 수 있었다. 번역서 한 권과 내 정면 사진이 박힌 이론서 한 권을 냈다. 뿌듯했다. 그러나 온전히 ‘나의 언어’로 된 책을 내고 싶은 마음은 줄어들지 않았다.


 안 되는 건, 안되나 보다,라고 ‘인정’이라 포장된 포기를 했다.

 책이 아니어도 관심 있는 사람들이 내 글을 보면 되겠지, 라며 자기 위안을 하며 글을 썼다.

 그렇게 브런치 글쓰기가 시작됐다.

 (심지어 브런치에서도 한 차례 거절당했다! 나는 브런치 재수생이다.)

 

 브런치는 글쓰기뿐만 아니라 책 쓰기까지 이어지게끔 작가들을 독려했다. 자기 이야기로 책을 낸 다른 작가들의 경험담도 나를 자극하기 시작했다. 내 글을 읽고 책을 내보면 어떻겠느냐는 독려도 있었다. 하지만 내 안의 불안과 두려움은 너무 컸다.


 출판은 자신이 비굴해지며 거절당하는 과정이 아닌가. 그 아픈 경험을 또 해야 속이 후련하겠냐, 라며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어느새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내가 쓴 글과 출판사는 결이 맞아야 한다는 생각을 먼저 했다.

 나는 대만에 관한 글을 썼다. 그러나 이는 여행 목적이 아닌 '해외에서 살아남기'였다.

 낯선 이들을 만났고, 그들과 하루를 살았다.

 나는 그들의 언어를 배웠고, 그들은 나에게서 한국어를 배웠다.

 나는 가오슝에서의 경험을 썼다. 부산이 맺은 최초의 해외 자매 도시가 가오슝이며, 가오슝과 부산이 서로 활발하게 교류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 서울이 아닌 부산 지역 출판사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산지니

 이 출판사를 어렵지 않게 찾았다.

 부산에서 지역 관련 도서를 다수 출판한 곳이었다.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출판사 측에서 관심이 있다며 연락이 왔다. 작년 12월이었다.

 “어? 내 글에 관심을 갖는 출판사가 있네?”

 난생처음 겪은 이 기이한 감정을 품고 출판사 측에서 요청한 틀에 맞게 다시 글 전체를 재편집했다. 그러면서 필요한 ‘꼭지’들이 보였고, 글 몇 편을 다시 썼다. 그중 한 편이 다음 DAUM 메인에 노출돼 조회수가 폭발됐다.  

[DAY 1 신기한 대만 문화 TOP 5]는 그렇게 탄생했다.

 

 <살아보니, 대만>

 2021년 1월 출간 결정

 2021년 2월 계약서 작성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산지니 출판사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 종합 출판사였고, 편집자들은 내 글을 하나하나 찬찬히 읽어주었다. 이 또한 기이한 경험이었다. 진지하게 내 이야기에 애정을 쏟는 ‘또 다른 독자’의 존재를 발견한 순간이었으니.


 총 4번에 걸쳐 오고 간 교정지, 표지 확인에 이어 지난주에는 출판사에서 문서 하나를 보내며 확인 요청을 했다.

 언론 보도 자료였다.

 대한민국 언론사에 내 책을 소개하기 위해 출판사에서 자료를 만들어 주었다. 글에 대한 온전한 이해, 작가와의 공감대 형성이 없다면 쓸 수 없는 글이었다. 나는 그 자료를 확인했다기보다 벅차오르는 마음을 누르고는 정신을 차리려 애쓰며 읽었다고 하는 편이 나았다.


<표지: 산지니 제공>


 2021년 10월 <살아보니, 대만> 출간

 책은 현재 배송 중이라 나는 아직 책을 받아보지 못했다. 하지만 온라인 서점에서 내 책을 멀고도 가깝게 볼 수 있다.


 출간이 확정되었을 때, 사실 제일 고마운 분들은 브런치 작가분들을 포함한 독자분들이었다. 내 글을 읽고 응원해주고, 공감해주고, 관심을 표해준 분들이 없었다면 ‘출판이란 거절의 역사’를 떠올리는 내가, 글쓰기를 지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어딘가에는 내 글을 진지하게 읽어주는 분들, 혹은 내가 쓴 글을 필요로 하고 있는 분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는 브런치를 통해 알게 되었다.


 여전히 내게 출판이라는 그 이름 자체에, 그리고 그 과정에는 거절과 비굴이 군데군데 뭉쳐올 것이다. 그만큼 나는 작가로서 역량을 더 키워가야 하기 때문이고, 더 배워야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출판에 대한 두려움을 너무나도 큰 성취감으로 이끌어준 브런치, 독자들, 그리고 산지니 출판사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또 전해야겠다.




p. 14 그래서 나는 대만을 만났고, 대만도 나를 만났다. 어찌 되었든 간에, 우리는 함께 살았다. 진심을 다해.


p. 99 대만의 좁은 골목길에서 휴대폰을 쥐고 두리번거리는 외국인을 누군가가 돕지 않았다면, 나는 정말 우주 외톨이가 된 기분을 영영 기억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지도는 우리에

게 모든 방향을 알려주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지도보다 사람을 믿는다.


p. 176 대만 학생들이 교육에 직접 목소리를 내는 현장을 보며, 할 말을 다 하는 건 고사하고 ‘걸리면 죽는다’의 막대기가 두려워 그의 눈에 띄지 않으려 했던 나의 ‘그 시절’이 떠올랐다. 동시에 나는, 학생들의 크고 작은 목소리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해야 하는 선생이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


p. 194 지속은 힘이 된다. 그래서 나는, 대만 학생들에게 한국어 학습 기회를 충분히 보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온전한 학습 기회란, 보다 전문화된 교과과정과 숙련된 교사 확보, 즉 학

과 설치를 의미하는데, 그것은 일개 교사의 힘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학교 계획과 정책, 동시에 한국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뒷받침되어야 할 것이다.


p. 237 일상에서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을 그곳의 상황과 통념이나 습관에 맞춰 하나씩 해나가는 것이 보다 인간답게 사는 과정임을, 그렇게 천천히 알아나갔다.


<출판사 책 소개 – 산지니 제공>

앞서 설명했듯 저자는 이십여 년의 두터운 경력을 자랑하는 한국어 교수다. 한국어 교원 1급 자격증을 갖고 있으며 외국인들을 상대로 ‘한국어’를 ‘한국어’로 가르치는 전문가! 한국어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외국의 한국어 교실에서는 어떻게 수업을 진행하고, 한국어 교육의 현장은 또 어떨까. 듣고 싶어도 쉽게 들을 수 없고 알고 싶어도 쉽게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살아보니, 대만』에서 들을 수 있다. 또한 K-열풍으로 해외시장에서도 한국에 대한 관심이 부쩍 치솟고 있는 요즘, 대만도 다르지 않음을 여러 예시로 설명하며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 한국과 한국어에 관심을 기울이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지부터 한국어를 배운 제자들이 사회로 나가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까지 엿볼 수 있다. 거기에 대만인들이 느끼는 한국은 어떨지 알아가게 되는 것도 덤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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