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여름쯤이었나요. 슬슬 벌레들이 사방을 지배하려 시동을 거는 모양이었어요. 친한 사람 넷이서 건너편에 있는 이마트 24 편의점으로 향하던 참이었죠. 한데 불쑥 엄지손톱만 한 크기의 까만 벌레가 내 쪽으로 붕 날아온 거예요. 어럽쇼? 각도상으로 보니 신발에 내려앉을 태세를 갖추고 있었어요.
어림없지. 마침 온종일 신경이 날카로웠던 탓인 가요. 평소라면 질색하고 피했을 거, 도전장으로 받아들이겠다며 덩달아 점프를 뛰었어요. 몸이 위로 올랐다가 떨어졌죠. 녀석의 바로 코앞에서 착지했답니다. 아니,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이람. 벌레가 죽은 거예요. 죽었는지, 기절한 건지. 아무튼 배를 보이며 뒤집어졌어요. 황당 그 자체였죠. 진짜로 밟은 건 아니었거든요. 결백해요. 연이어 식겁한 H의 음성이 들려왔어요.
“헉 설마 죽인 거야?”
저… 그러려던 건 아녔는데요(진짜). 당황해서 얼굴이 붉어졌습니다. 두 눈 동그란 H를 응시하니 불현듯 드라마 <나의 아저씨> 속 한 장면이 떠올랐어요. 바로, 극중 박동훈이 사무실 내로 들어온 무당벌레 한 마리를 잡지 못하고서 내뱉은 대사였죠.
“마음에 걸리는 게 없으면 무얼 죽여도 문제없어. 그런데 마음에 걸리면 벌레만 죽여도 탈 나.”
사이좋게 핫바를 하나씩 손에 쥐었습니다. 전부 천사 H가 결제한 거였어요. 전자레인지에 돌린 뒤 오물거리며 바깥으로 나왔어요. 그리고 그 순간, 다시금 벌레가 다가왔답니다. 반사적으로 다리를 휘두르려다 흠칫했죠. 내 시선은 H에게 닿았어요. 빙그레 웃더군요. 왜 눈치를 보느냐며.
대꾸하지 못했죠.
마음에 걸리는 게 수두룩하다고 솔직하게 말하지 못했어요.
항상 과거를 되돌아보며, 내가 했던 선택을 몽땅 반대로 했을 경우 좀 더 나았을까? 생각해요. 부질없는 짓이지만요.
종종 비밀이 많은 사람이라는 소리를 듣거든요. 후회되는 것들이 한가득인지라, 더는 그럴 일들을 만들고 싶지 않아서 조심하게 되는 듯합니다.
간혹 처음부터 다시 살고 싶어져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