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의심이 다분한 나였다만 분명 당신이 보인 행동은 사랑의 증명임이 틀림없었거든요. ‘이게 사랑이 아니라면 더 이상 사랑을 믿지 않겠어’ 수차례 고개를 주억거릴 만큼 확신했거든요. 당신은 항상 농담스러운 표정으로 날 대했고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지하철역 앞에서 하염없이 나를 기다렸어요. 그래서 어느 날은 당신이 없을 경우 괜스레 뾰로통해지기도 하는 못난 마음이었답니다.
당신은 체온이 잘 오르락내리락하는 나에게 안성맞춤이었어요. 부채질로 식혀줬고요. 따뜻한 포옹으로 데워줬어요. 하루도 거르지 않고서 셀 수 없을 지경으로 사랑을 말했어요. 사랑의 무게가 두렵다며 회피하던 나인데도, 지치지 않고서 꾸준히 잠들기 전 사랑을 얘기했어요. 솔직히 난 사랑하기 싫었거든요. 그런 건 눈에 보이지도 않고 ‘혹시나’는 늘 ‘역시나’가 되어 마무리 짓곤 했으니까요.
당신이 술잔을 기울이며 발그레해진 볼로 고백했을 때도 내가 그랬잖아요. 연애 같은 건 똑같기만 하다고. 그리 여러 번 거절했음에도 질리지 않는 모양인지, 내일은 새롭게 고백할 거라던 당신이 유별나긴 했지요. 나는 잘 도망 다녔어요. 마음이 커질수록 더 그랬어요. 작은 오해에도 굴속으로 들어가려 했고요. 다툼이 일어날 적에는 묵묵부답으로 사람을 답답하게 만들곤 했어요.
그리고 그토록 자주 숨던 나를 끄집어 냈던 건, 다름없이 당신의 역할이었지요. 본인도 씩씩거리고 울면서 나를 챙겼어요. 내 성격을 아니까요. 혼자 두면 더 깊어지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나를 너무도 잘 파악하고 있었으니까요. 거리 위에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이별이 얼마나 힘든 줄 알아?’ 묻던 당신이 여태 저릿해요. 내가 미울 법도 한데 절대 손은 놓지 않더라고요. 난 당신이 모든 방면에 있어 단 한 번도 이유를 침묵한 적 없는 면이 좋았어요. 되려 안심이었던 것도 같아요. 내가 잘못된 점은 그러면 안 된다며 꾸짖던 것도 좋았고요. 배웠어요, 많이.
또한 함박눈이 내리던 날 모자를 뒤집어쓴 채 웃었던 기억. 비 오는 날 우산이 당신 쪽으로만 기울어져 있어 투닥투닥 했던 기억. 아직도 마르지 않는 추억들이 이따금 눅눅해요. 지금은 나와 만나느라 끊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었나요. 우리의 사랑이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즈음 도로 피웠던가요. 끝내 서로에게 좋은 사람일 수 없었던 건 굉장히 안타까운 일이에요.
당신이 가르쳐 준 사랑은 끈질기게 남아 내 안에 기록되어 있고요. 다만 건네받은 모든 말과 행동들이 결국 사랑이 아닐 경우, 난 더는 사랑이란 건 없는 걸로 치겠단 다짐 그대로 살아요. 사랑을 알려준 당신이었으나 더 이상 당신으로 인해 사랑은 미심쩍어요. 모든 건 잠깐일 뿐이잖아요. 그렇죠? 우리가 자주 가던 가게가 어느 순간 공지도 없이 사라진 것처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