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당신이 아끼는 것들 사이에 나도 있었다고 믿을래요

이젠 상관없긴 해요.

by 주또

몇 년 지난 얘기이죠.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이었는데, 정말 좋아했어요. 당신이 입은 옷차림새를 기억하고 습관과 버릇을 익힐 만큼. 그림자라도 되고픈 심정으로 동선을 줄곧 좇았어요. 당신이 자주 가는 가게에 일부러 발을 옮긴 적도 있고요. 당신 마음에 한번 걸려라, 주문을 외우며 온갖 신경 쓰일 법한 짓을 저지른 적도 있어요. 당신을 본받고 싶기도 했어요. 당신을 닮은 멋진 사람이 되면 영원토록 상대해 주지 않을까, 해서요.


당신이 커피를 줄인다기에 나도 카페인을 끊었던 날들이 있고요. 당신이 운동을 한다길래 나도 얼른 헬스장을 등록했던 때가 있어요. 당신이 그 시기에 관심 있어 하던 분야를 일부러 밤새워가며 공부한 일화도 있고요. 당신이 요즘 듣는다는 음악을 찾아 들어 가사까지 외운 기억이 있어요.


당신의 의연함도 부러워했어요. 이미 이룬 것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면도 대단했어요. 당신이 읽는 책들이 궁금했어요. 당신의 손끝이 오래 머물렀던 페이지를 알고 싶었고요. 당신이 마시는, 당신의 입술이 닿았다가 떨어진 머그컵 한 귀퉁이를 들여다보고 싶었어요. 당신은 이런 나를 훤히 다 꿰뚫어 가지고 놀았지요. 살짝 갸우뚱하기만 해도 곧장 스무 가지 이상 갖다 바치는 나였으니까요.


당신이 부르면 한달음에 달려갔어요. 당신이 기다리라면 기다렸고 당신이 울지 말라면 울다가도 급히 입술을 깨물었어요. 꾸역꾸역 목울대를 치고 올라오는 울음을 삼켜낸 게 한두 번이 아녜요.


당신이 진짜로 좋았어요. 나와는 다른 당신이 좋았고요. 감정의 동요조차 흔하지 않은 당신을 존경했어요. 존경은 사랑 아니지 않냐는 미소에 대놓고 말대꾸를 한 적도 있는데요. 사랑을 넘어선 마음이 바로 존경이라고. 그날의 장면이 수시로 너울거려요.


비록 지금은 당신이 무엇을 즐기고 어떠한 것에 격하게 반응했는지 가물가물하지만요. 흐릿한 기억들 틈 사이로 내가 당신을 아주 많이 사랑했다는 사실 하나만이 또렷해요. 백 미터 달리기를 하고 온 사람 마냥 날뛰던 심장박동이 잊히질 않아요.


단지 한 가지 묻고픈 게 있어요.

당신도 내가 슬퍼할 때마다 위로한 건,

나를 어느 정도는 아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이젠 상관없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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