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못 봐도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널 떠올리는 일은 늘 설레었다. 그 해 좋아한다는 말을 겨우겨우 내뱉었으나 돌아오는 대답은 침묵이었다. 넌 그저 빙그레 웃었다. 날 항상 맘 놓도록 만드는 미소를 날리고 끝이었다. 차라리 ‘싫어’ 같은 단호한 거절이었더라면 그리 오래도록 널 열병처럼 앓진 않았을 텐데,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보기 좋게 차인 후로도 줄곧 널 만났다. 여느 때와 동일하게 우린 심심하면 얼굴을 봤고 귀가길이 지루하거나 으스스하면 통화를 했다.
자석처럼 잘 붙어 다녔다. 그 바람에 친구들은 여전히 입을 모아 무슨 사이냐 물었고, 넌 ‘친구’라 답했으며 난 귀 끝을 붉혔다. 여름엔 근처 슈퍼마켓에서 슬러시를 사 먹었다. 겨울엔 호떡을 나란히 입에 물었다. 눈사람도 자주 만들었는데. 하루는 눈싸움을 하다가 네 하얀 장갑이 눈에 파묻히는 탓에 한참을 찾았더란다. 우리는 이런저런 일들을 함께 했고 자주 웃음을 나눴으며, 심지어는 울게 되는 상황에서도 버선발로 뛰쳐나가 서로를 달랬으나 결코 완전히 우리가 될 수 없었다.
난 여태 이 점을 아이러니하게 여기고 있긴 하다. 남녀 사이에 이토록 애틋한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우정이 될 수 있는 것인가. 어린 마음에 이 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적엔 한동안 너를 피하기도 했다. 하지만 넌 그럴수록 끈질기게 내게 붙어 ‘삐쳤냐’물었다. 가로등 아래에서 내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이유도 모르면서 대뜸 사과하기도 했다. 난 그런 얼토당토않는 이유로 너와 멀어지지도 못했다. 비련의 주인공인 양 굴기에도 곤란해져 속없이 이전과 똑같이 지냈다.
너를 못 봐도 살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렇다’라는 답변이 놓아질 즘엔 꼭 미련 없이 떠나야지, 다짐했고. 그 다짐을 이루기까진 꽤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마침내 너한테서 등 돌리기를 결심한 시기는, 네가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였다. 넌 왜 내가 널 좋아하는 걸 뻔히 알면서도 곁에 두려 했고 맘대로 멀어질 수도 없게 굴었을까. 결국엔 내가 네 옆에 설 수 없음에도 말이다.
애당초 이럴 거였으면 그러지를 말지. 너의 수줍은 고백은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 향했고 난 그 뒤로 널 마주하지 않았다. 무슨 일 있냐는 연락에도 묵묵부답으로 대했었다. 어려서 그랬다. 그 시절엔 그게 그렇게나 중요했다. 짝사랑이든 외사랑이든 한 끗 차이 아니겠냐고.
너를 잃는 데에는 별다른 용기가 필요한 게 아녔는데, 당시엔 고백보다도 엄청나게 두려웠다. 나의 세상이었다는 표현이 걸맞겠다. 너를 미워하는 일은 불가능했기에 나를 미워하곤 했다.
미성숙한 사랑에 여운이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