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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하루 Aug 04. 2023

덕질은 유전이다

말 많은 말띠 아이의 말말말

 

엄마를 보면 대단하단 생각을 해. 진짜로 좋아하면 저렇게까지 할 수 있구나. 난 덕질도 그렇게 까지는 안 해봤는데 대단해 진짜. 어쨌든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떤 건지는 나도 알고 있으니까 충분히 이해는 돼.”

                                      [2023년 봄] 

 

 

덕질을 그렇게까지 안해봤다고는 하지만 녀석의 덕질의 역사도 꽤 길다. 아가때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으니까 초등학교부터 시작했던 나와는 비교가 되질 않는다. 

 

돌 무렵부터 기차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아빠 엄마 물 등의 기본단어 빼고 가장 빨리 익힌 단어가 기차, 가장 빨리 쓰고 읽은 글자도 기차. 그림은 거의 다 기차 그림이었고, 책 역시 손톱만한 기차가 있어도 발견하고 그 책을 사야만 했던 시절이 있었다. 

 

토마스 같은 캐릭터 기차는 절대 불가! 실제로 존재하는 기차들만 좋아했던 아이. 지하철 노선도를 전부 외웠고, 1호선부터 그 당시 운행하던 모든 지하철을 다 타봐야 했다. 새롭게 운행을 시작한 열차가 있으면 역시 타러 가야 했다. 자다가도 ‘기차’ 라는 소리가 들리면 벌떡 일어났고, 하다못해 뉴스에서 열차사고 소식이 나와도 기차라며 좋아했다.  모든 나라의 기차를 구분할줄 알고, 특징을 살려 그릴 줄 알았다. 아무도 못 듣는 기차소리를 듣고, 소리의 방향을 따라가 한참을 서있기도 했다. 장래희망도 철도원이었던 아이. 

 

아이가 ‘기차’ 라는 소리만 들리면 벌떡 일어난 것과 반대로 난 ‘기차’ 라는 단어가 들리면 한숨부터 나왔지만, 한편으로는 아이 덕분에 5년이라는 시간동안 나 역시 기차에 대해 많이 알게 되었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 어떤건지 알기에 아이가 원하는대로 빠져 있을 수 있도록 나 역시 최선을 다했다. 전시, 박물관 등 기차를 볼 수 있는 곳들을 찾아서 데리고 다녔고, 기차관련 체험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체험할 수 있게 해줬다. 

 

녀석은 그렇게 5년을 기차에 푹 빠져 지냈다. 일곱살이 되자 조금씩 기차에 대한 흥미가 식어가기 시작했다. 책도 장난감도 동생들 줘도 된다고 하고, 다른 곳으로 관심사가 조금씩 옮겨가기 시작했다. 유치원, 초등저학년까지는 공룡에 심취해서 모든 공룡의 이름과 특징을 외우고 다녔고 중학생이 되면서부터는 일본 애니메이션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으나, 성인이 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역시나 한번 빠지면 심하게 빠지는 녀석답게 일본어 급수 시험을 보고, 좋아하는 OST는 피아노로 연습해서 연주하고, 피규어 샵에 가기 위해 일본 여행을 간다. 

 

오늘 오후 산책을 하며 내가 물었다.

 

덕질은 유전일까 아닐까?” 

백퍼센트 유전이야. 그건 과학이라니까.” 

 

유전. 전해져 내려 오는 것. 어쩌면 DNA에 새겨져 있을까 싶기도 한 것.  나 역시 어린시절부터 끊임없이 무언가, 또는 누군가에게 빠져 지냈다. 대부분이 가수였고, 어떨때는 배우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덕질은 쭉 이어지고 있다. 아이돌, 배우, 가수에게 주로 빠져지내지만 그 중간중간 좋아하는 작가를 깊이 파기도 하고,  다이어리와 만년필에 심취하기도 한다. 주 장르는 있지만 어느 한 장르에 머무르지 않고 계속 좋아하고 사랑하고 푹 빠져있다. 아마 앞으로도 크게 변하진 않을것 같다. 그로 인해 얻는 행복과 기쁨이 정말 큰 삶의 활력소라는 것을 나도, 그리고 아이도 알고 있으니까. 


무언가를, 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것을 잘 알고 그것에 푹 빠질 수 있다는 것. 그러한 경험이 많이 있다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한다. 그로 인해 내 삶이 더 풍요로워질 수 있음을 경험했기에 아이 역시 그렇게 자랐으면 했다. 그리고 바람대로, 녀석은 지금도 좋아하는 것을 하며 지내고 있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더불어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하고싶지 않지만 해야 하는 아르바이트도 성실하게 해내면서. 

 

아이에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말하는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음을 요즘에야 더 느끼고 있다. 내가 먼저 움직이면, 내가 먼저 행동하면 그걸 보고 자란 아이는 그대로 한다는 것을 이제야 제대로 깨닫는 중이다. 

 

그래서, 아이가 더 행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마음으로, 아이에게 행복한 나의 모습을 더 많이 보여주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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