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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떤하루 Sep 03. 2023

안하는 것 VS 못하는 것

말 많은 말띠 아이의 말말말

-우연히 지나가다가 유리창 너머로 어떤 가족이 식사하는 장면을 봤는데 내가 마치 성냥팔이 소녀가 된 기분이었어. 

-왜?

-나는 이제 가질 수 없는 장면이니까.

-이제 그런걸 아쉬워 할 나이는 지나지 않았어? 

-엄마.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거야. 


                                                [2023년 6월 어느 날의 대화] 



남들 앞에서 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어 병원에서도, 장례식장에서도 아무도 없을 때 혼자 눈물을 닦아내던 16살의 소년은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어 가장 노릇을 제대로 하고 있다. 


2017년 가을, 아이는 아빠와 이별했다. 이별 전 마지막 2-3일은 학교도 가지 않고, 병원에서 먹고 자고 했다. 의식 조차 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아빠를 보며 아이는 어떤 생각들을 했을까? 병실을 오가며 한마디씩 보태는 사람들을 아이는 또 얼마나 힘들게 견뎌냈을까. 보통의 10대들처럼 한동안 아빠와의 시간을 서먹해 하고 서로 대화도 없었다. 지나가버린, 이제는 다시 올 수 없는 그 시간들을 아이는 후회했을까? 어떤 마음이었을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도통 표현을 하지 않았으니까. 난 왜 이걸 지금에야 생각하고 있는걸까. 


시간이 흐르고, 우리의 대화 안에서 자연스럽게 아빠 이야기가 오가고, 그것에 대해 아무런 거리낌이 없기에 괜찮은가 보다 했다. 좋았던 시간들이 더 많았기에 그 추억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고 되새길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힘들었던 시간들을 나름대로 잘 이겨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지나가듯 자신이 본 장면에 대해 이야기 하길래 대수롭지 않게 듣다가 심장이 쿵 했다. 마냥 괜찮은 것은 아니었구나. 이제 본인이 가질 수 없는 시간들에 대해 생각하고 아쉬워 하고 있었구나. 그리워 하고 있었구나. 말을 하지 않았을 뿐 마냥 괜찮았던 것은 아니었나보다. 


아이의 말처럼 할 수 있는 상황에서 내키지 않아서 안 하는 것과, 하고 싶지만 할 수 없는 것은 다르다. 함께 했던 시간이 많았으니까, 그런 장면들이 기억속에 많이 남아 있으니까 괜찮은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런 기억들이 많기 때문에 앞으로 다시는 가질 수 없는 시간, 장면들이 더 안타깝고 아쉽고 그리울 수도 있겠단 생각이 그제서야 들었다. 무심했다. 아이가 괜찮아서 다행이란 생각만 했다. 그 깊은 곳에 다른 마음들이 있을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어쩌면 괜찮을거라고 믿고 싶었던 것이었을 수도. 그래야 내가 괜찮을 수 있으니까.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이제 담아두지 않고,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그만큼 편해졌구나, 속 이야기를 할 만큼 우리가 다시 가까워졌구나 싶어서. 이 또한 나 편한대로 해석하는걸 수도 있겠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나도 같이 큰다는 이야기, 많이 들었었는데 요즘 더 느끼는 것 같다. 가끔은 너무도 어른스러운 아이를 보면서 안쓰럽기도 하지만 덕분에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들이 있어서 좋기도 하다. 너무 빨리 어른이 되어버렸다. 자라면서도 주변아이들 통털어 쭉 맏형이었어서 어릴때부터 큰아이노릇을 해야했고, 사춘기가 시작되고 어리광, 반항이 시작될 무렵 아빠와의 이별로 다시 어른스러워져야 했다. ‘이제 니가 가장이다’ 소리를 중학교때부터 듣고 자란 아이. 그리고 이른 사회생활로 역시 너무도 빨리 어른이 되어버린 아이. 안쓰러우면서도 고맙다. 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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